[신진상의 입시 속 의미 찾기] 서울대생들은 조지 오웰을 자소서에 왜 쓰는가?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6.06.20 10:48
  • 조지 오웰
    ▲ 조지 오웰
    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오늘은 2016학년도 서울대 지원자가 10번째로 많이 읽은 책 1984의 저자인 조지 오웰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자소서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조지 오웰은 학생들 자소서에서도 자주 발견되지요. 2000년대 논술 붐일 때부터 논술 강사들이 조지 오웰을 읽힌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1984 아니면 동물농장이지만. ‘카탈로니아 찬가’와 ‘나는 왜 쓰는가’도 외고생 최상위권 학생 생기부에서 가끔씩 발견됩니다.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국의 가장 위대한 전후 작가로 불리는 조지 오웰(1903~1950)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작가가 글을 쓰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이기적인 이유라고 했습니다. 사후에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똑똑해지겠다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고 고백한 바 있지요. 이기적 욕망을 부정하는 작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오웰이 지적한 나머지 동기는 미학적 열정, 단어의 배열을 통한 아름다움의 자각, 역사적 동기 그리고 정치적 목적입니다.

    ‘1984’를 생각하면 그 중에서 정치적 목적이 가장 클 것 같은데, 의외로 이기적 동기를 1순위로 꼽았네요. 조지 오웰을 글에서 인용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그와 비슷한 목적에서 그의 작품들을 언급했을까요?

    지난 해 교대에 입학한 한 학생은 자소서 의미 있는 활동 3가지 중에 하나로 독서 토론 동아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 조지 오웰을 썼을까요?   

    사례 1) 독서 토론 동아리 
    (상략)일례로 소설 ‘1984’를 읽고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사회와 북한 사회 중 어느 쪽이 더 비인간적인 삶인가를 주제로 토론했습니다. 저는 빅 브라더의 사회가 전반적인 통제는 더 삼엄하지만 프롤들의 삶은 북한주민보다 나은 것 같아 빅 브라더의 사회가 덜 비인간적인 사회라고 생각했습니다.(하략)

    좋은 자소서는 동기-목표-어려움-극복과정-결과-반성-변화(반성과 변화를 함쳐서 깨달음)로 이어지는 일련의 구조랄까, 패턴이 있습니다. 이 학생도 편독 습관을 고치려고(동기이자 목표), 여러 분야의 책을 읽는 재미와 다양성 존중의 깨달음(결과), 토론 과정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만나 반론하기(어려움과 극복과정), 다양성을 존중하는 토론 교육의 실현(반성과 변화이지 깨달음)이라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 자소서를 보실까요? 역시 자소서의 백미는 서울대 그것도 4번 독서 활동이지요.

    사례 2) 동물 농장
    독재 혁명에 대해 좀 더 생생하게 알고 싶어서 읽게 된 책입니다. 책을 읽은 뒤 ~저자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작가의 관점에 따라 시대의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중략)

    사례 3) 1984
    (상략) 분명 조지 오웰은 1984년의 모습을 노래하였지만, 그의 노래가 현재까지 꾸준히 들여온다는 점에서 이 책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사례 2의 학생은 철저하게 앎과 지식, 즉 머리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읽게 된 계기도 읽은 뒤 활동도 다 ‘알고 싶어서’였죠. 그리고 자신의 전공과 자신의 앎을 연결시켰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대학가서 공부하고 싶은 또 하나의 앎을 들려줍니다.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하는가?를 역사를 통해서 신중히 고찰하고 싶다는 앎에 대한 의지죠. 이 친구 자소서는 앎으로 시작해서 앎으로 끝나는 지적 호기심이 인상적인 자소서로 특히 인문대 지원자에게 어울리는 전개 방식입니다.

    사례 3의 학생은 1984년을 노래했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처음에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후 가슴에서 머리로 이동하여 디스토피아나 빅 브라더 전체주의, 인간성 파괴를 책에서 찾고 한국 사회와 유사하다고 지적한 뒤 다시 가슴으로 내려 와 자유로의 갈망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짓고 있습니다. 이 학생은 책에서 주로 비판적인 사회 메시지를 읽어냈습니다. 사과대 지원자라면 이런 접근 방식이 유효할 수 있습니다.

    ‘1984’를 읽고 나서 영국 출신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 ‘브라질’(국내 극장 개봉은 되지 않았고 비디오 출시 명이 ‘여인의 음모’입니다)과 같이 보고 사고를 심화하고 확장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통제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가 위협받는 현실과 그 현실로부터 일탈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비슷하지요.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나 브라질의 주인공 샘 라우리나 편집증적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말은 완전히 다릅니다.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에 대해 최종적인 태도는 투항과 저항으로 극명하게 대비되거든요. 1984는 이렇게 끝납니다. “그는 마침내 배신을 선택했다. 자신의 영혼을 버린 것이다.” 반면 브라질에서는 샘 라우리가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대신 미치는 것, 사실상 죽음의 선택으로 결말이 납니다. 줄리아를 자기 삶의 일부분으로 생각할 만큼 사랑했지만 마침내 빅 브라더를 사랑하면서 목숨을 부지하게 된 윈스턴 스미스와 현실에서는 식물인간이 되지만 꿈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 질 레이튼과의 탈주에 성공하는 샘 라우리, 과연 누가 더 행복한 존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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