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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3년 연속 지원자들이 '영향을 준 책'으로 가장 많이 거론
지난해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서적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저)’였다. 총 427명이 자기소개서에서 ‘고등학교 재학기간 읽은 책 중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거론했다.
최근 발간된 서울대 입학본부 웹진 아로리 4호에 따르면, 지난해 지원자들이 읽은 서적 목록 상위권에는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성들의 인문·사회학 서적이 다수 포진했다. 지난해 수시모집 지원자 중 자연계열 학생이 1500명 이상 많았음에도 자연과학 분야 도서가 인문·사회 분야보다 4500권가량 적었고, 상위 스무 권 가운데 저자가 한국인인 경우는 20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스님 저)’이 유일했다.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목록이 공개된 것은 지난 2014년 아로리 2호 발간 이후 두 번째다.
서울대 입시에서 ‘독서’는 기본이다. 자기소개서에 지원자가 읽은 서적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는 자율문항(고등학교 재학 기간 또는 최근 3년간 읽었던 책 중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을 3권 이내로 선정하고 그 이유를 기술하시오)이 있고, 수시모집 면접에서도 독서활동에 대한 질문이 자주 나온다. 실제 면접 기출문항을 보면 △(학생부 질문) 독서활동을 많이 했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읽었는가? △(자기소개서 질문)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를 읽었다고 기술했는데, 그렇다면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학생이 읽었던 책 중에 정말 상식을 뒤집어 놓을 정도로 신선한 충격을 준 책이 있다면 간단하게 소개해 보시오(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같은 질문이 등장한다. 서울대 입학본부 관계자는 “자기주도적으로 독서한 학생 등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학업능력과 잠재력을 길러온 학생이 서울대가 원하는 인재상”이라고 했다.
2016학년도 수시모집에 지원해 처음부터 자기소개서를 제출한 학생은 모두 1만8950명이다. 집계에는 2단계에서 자기소개서를 제출한 인원을 모두 포함해 합산한 결과가 적용됐다. 1명이 최대 3권을 작성할 수 있는 자기소개서 항목 4번에 적힌 내용은 총 4만4048건이며, 이 중 서로 다른 제목을 지닌 책의 종류는 1만4041권이다. 지원자 간 중복되지 않은 책은 9471권이었다. 입학본부 관게자는 “중복되지 않은 책은 2015학년도 9011건, 2014년 8700건 정도였다”며 “서울대 지원자의 독서 폭이 넓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3년 연속 지원자들이 읽은 도서 1위
지난해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열 권은 다음과 같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427명)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327명)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253명) ▲데미안(헤르만 헤세·213명)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204명)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200명) ▲미움 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197명)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191명)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사이먼 싱·179명) ▲1984(조지 오웰·171명) 등이다.
11위부터는 ▲죽은 시인의 사회(N. H. 클라인바움·159명 ▲이중나선(제임스 왓슨·150명) ▲변신(프란츠 카프카·144명)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142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마이클 샌델·141명)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140명) ▲총균쇠(제레드 다이아몬드·134명) ▲학문의 즐거움(히로나카 헤이스케·132명) ▲수레바퀴 아래서(헤르만 헤세·130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123명) 순이었다.
이 가운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3년 연속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1위로 꼽혔다. 국제적 기아 문제를 들여다보고, 빈곤과 불평등이 어떻게 구조화하고 지속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다. 서울대뿐 아니라 국내 대학 새내기들이 가장 많이 읽는 서적의 하나로, 스위스 사회학자인 저자 장 지글러는 UN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상위 스무 권의 책은 모두 널리 알려진 서적들이다. 분야도 인문,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학문적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들부터 에세이, 소설 등 문학 작품까지 다양하다. 긴 시간을 공들여 읽어야 할 책들과 짬을 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책까지 저마다의 목록들로 채워져 있다. 서울대 입학본부 관계자는 “단순히 분량만으로 책 내용의 깊이와 무게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책장에 꽂아두고 몇 번씩 다시 읽을 만한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 목록 안에 함께 자리한 것은 조금 안타깝다”고 했다.
책의 저자들을 보면, 혜민 스님을 제외하면 모두 외국인이며 대다수가 해당 분야에서 잘 알려진 지성들이다. 서울대 입학본부 집계 결과 2016학년도 수시모집 지원자 수 가운데 자연계열 학생이 1500명 이상 많았던 점을 감안할 때, 상위권에 자연과학 분야 도서가 적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입학본부에 따르면 자연과학 서적은 인문·사회 분야 서적에 비해 목록이 4500권가량 적다.
2014학년도와 2015학년도에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역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다. △이기적 유전자 △정의란 무엇인가 △연금술사 등은 3년 연속 10위 권 내에 머물렀고, ‘이기적 유전자’의 경우 2년 연속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2위에 랭크됐다.
3년간 서울대 지원자들의 독서 활동에는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입학본부 관계자는 “매년 서울대에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책이 정해져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최근 3년 동안 10위권 내에 한번 씩만 오른 책은 2014학년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꿈꾸는 다락방(이지성)’, ‘오래된 미래’, 2015학년도 ‘죽은 시인의 사회(N.H.클라인바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마이클 샌델)’, 2016학년도 ‘미움 받을 용기’, ‘1984’ 등이며, 모두 7위 이하에 랭크됐다. 2016학년도 도서 목록에서 다른 지원자들이 읽지 않은 자신만의 책을 읽은 경우가 늘고 있긴 하나 가장 많이 읽은 책 순위는 3년째 그대로다.
왜 서울대 지원자들이 읽은 책의 상위 목록은 변함이 없을까? 지원자 다수가 읽은 책이 모두 세계적 지성이 쓴 명저이기 때문이다. 입학본부 관계자는 “책을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이미 그 다음 수준의 책을 통해 자기소개서에 풀어내고 싶은 말을 적고 있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세계의 절반이 왜 굶주리는지’를 알고 ‘어떻게 모두를 굶주리지 않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은 더욱 많다는 얘기다.
입학본부 관계자는 또 “책은 필요에 의해 읽힌다. 이런 과정에서 책을 좋아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독서의 폭이 넓어진다. 책이 말하는 깊은 이야기를 충분히 녹여낼 수 있는 역량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쌓은 역량은 ‘창의적 지식공동체’를 지향점으로 삼는 서울대가 원하는 인재상의 밑바탕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책이 잘 읽히지 않는다는 수험생들도 있다. 이런 이들에게는 최근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개그맨 출신 작가 마타요시 나오키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을 정답처럼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마타요시 나오키가 한 말은 “100권의 책을 읽으면 무조건 책을 좋아하게 된다”다.
[조선에듀] 2016학년도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