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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전 아침부터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 한통에 여유롭던 아침을 날려버린 일이 있었다. 내용은 중학교2학년인 아들이 등교거부를 한다는 것 이였다.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닌듯하여 간단한 전화상담 후 상담예약을 잡았다. 그러나 그 후로 진료를 받으러 오질 않았고 쉽게 잊혀졌다.
몇 개월이 지나서 40대중반의 어머니 한분이 내원하시면서 이야기를 듣고, 그때의 그 아침전화였음을 알았다. 현재 아들은 가출한 상태이며 실종신고를 냈다는 것 이였다. 어머니는 몹시 피곤해 보였고 초췌했다. 어떤 일이 벌어져 아이가 가출했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지만 시퍼렇게 그늘진 눈 그림자의 모습으로 충분히 짐작은 갔다.
이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대부분의 내용은 어머니 자신의 질책과 한탄, 그리고 가출한 아들의 자랑을 빼 놓지 않았다. 결국 가출사건의 이야기는 듣질 못했고 어머니는 그렇게 울다가 쓴웃음을 짓다가 상담은 끝이 났다. 나또한 그렇게 사건을 들춰보지 않으려 했기에 상담은 그렇게 어머니의 위안만을 담고 지나갔다.
어머니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듯 했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꼭 잡고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는 또다시 내원하지는 않았다. 그 이후 상황이 궁금하여 연락을 해 보았지만 연락이 닿질 않았다. 아이가 돌아왔는지 아닌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내심 돌아왔을 것 이라는 마음을 열어두고 기원했다.
아이의 가출은 그저 사춘기에 겪는 홍역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학교든 친구문제든 정말 힘들어 집을 나가고 싶었을 줄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과 부모의 마음은 감성부터 다르다. 아이는 자신의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판단하고 생각하지만 부모는 다르다. 불덩어리 홍역의 아이를 안고 맨발로 뛰어 발끝마다 피가 다 터져도 본인의 고통보다는 아이의 고통에 더욱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을 것이다. 가출 한 아들을 기다리고 찾아보기를 몇 개월 동안 한 어머니의 마음이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아이야 너희들이 힘든 만큼 부모도 힘들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너희들만큼은 아니라고 얘기해도 좋겠지만, 결코 쉽게 보아서는 안 될 것 같구나. 내가 본 어머니의 모습은 고통을 넘어 죽음의 문턱에 온 듯한 좌절과 패배감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야 부모도 너희들만큼 아프니 제발 조금이라도 생각해 다오.’
[심리학자 김동철 박사의 ‘잠재력을 깨우는 심리 교육’] 아이야 부모도 너희들이 모르게 아프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