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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경쟁은 극심하다. 특히 교육 부문에서의 경쟁은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할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우리의 교육경쟁은 가파르게 전개되고 있다. 거의 모든 교육 주체들이 아이들에게 가혹한 경쟁적 관점을 투영하고 있다. 치열해지는 생존경제의 현실이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에까지 ‘생존’의 원리를 관철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미국인의 점증한 위기의식은 그들의 교육을 좀 더 성과주의적인 것으로 변질시켰다. 미국에서는 최근 경쟁과 성과 중심의 아시아적 교육모델이 역수출되며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당연히 이런 추세에 우려를 표하는 여론 역시 비등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가 기고한 ‘이과ㆍ실용학문에 집착하는 미국 교육의 위험성’이라는 기사를 둘러싸고 이미 열띤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자카리아는 “미국 교육이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의 실용위주ㆍ주입식 교육을 모방하려 한다”며 “이는 창의적 사고와 혁신을 기반으로 성장한 미국의 경쟁력을 갉아 먹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전 세계가 지금 다음세대들에게 가혹한 교육경쟁을 독려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이는 경쟁적인 성과 중심의 교육의 진원지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도 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학습경쟁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런 지독한 학습경쟁 아래 놓인 우리 아이들의 정서적 건강은 당연히 위태롭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산적한 문제 가운데서도 자라나는 세대들이 겪는 학업스트레스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자타공인,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 교육의 틈바구니에 낀 우리 아이들의 마음과 정서는 과연 어떠할까?
여러 통계와 조사들이 아이들의 몹시 불편하고 위태로운 마음을 대변해준다. 그 중 가장 적나라한 조사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초중고 학생들에게 공부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물어본 한 설문조사(부산 시내 초등학교 6학년 37개교 969명, 중학교 2학년 30개교 964명, 고등학교 2학년 30개교 980명(전체 초·중·고 97개교 2천913명), 부산교육연구소)에서는 역시나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가장 심각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나는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문항에 ‘자주 혹은 언제나 그렇다’라고 답한 비율이 초등학생 5.2%, 중학생 19.4%, 고등학생 13.0%이나 되었다. 학년이 지나갈수록 공부에 대해 느끼는 무기력감이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고등학생들 10명 가운데 한 명은 공부에 대해 이미 절망적인 기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파악할 수 있다. 또 ‘나는 공부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라는 문항에는 초등학생 9.9%, 중학생 32.5%, 고등학생 43.6%가 ‘자주 혹은 언제나 그렇다’라고 답해 이미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 스트레스가 만성화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은 수업태도로 이어진다. 초등학생은 가운데 학교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은 초등학생은 2명 중 1명, 중고등학생은 3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했다. ‘평소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와 ‘매우 그렇다’에 답변한 비율은 초등학생의 47.0%, 중학생의 32.8%, 고등학생의 32.4%에 지나지 않았다.
내 개인적으로도 학업스트레스와 관련된 많은 문제들, 이를 겪고 있는 많은 아이들을 몸소 접했다. 내가 만났던 학업스트레스로 인해 폭식증이 생기고 고도 소아비만을 앓는 아이들, 역시 시험과 성적(成績) 고민으로 생긴 성조숙증 때문에 신체적, 정서적 고통을 겪는 여자 아이들, 과도한 공부강요 때문에 집중력 장애가 생긴 아이들, 성인들에게는 생길 법한 번아웃증후군으로 피폐해진 아동들, 등교거부와 학습공포증이 심한 불안장애 아동과 같은 상처 받은 아이들은 모두 과도한 학업스트레스가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 생긴 결과들이었다.
또 한 가지, 한국 아동의 정서적 건강을 족히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아이들의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를 조사한 ‘한국 아동종합실태조사’라고 할 것이다.
2013년에 조사된 한국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들의 ‘삶의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60.3점으로 OECD 회원국(34개국) 가운데 최하위였다. 1위는 네덜란드로 94.2점이었고, 우리 바로 위인 루마니아도 76.6점으로 우리보다 16점 이상 높았다. 또 같은 시기 조사된 ‘아동 결핍지수(Child deprivation index)’ 역시 OECD 국가 가운데서는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 결핍지수는 유엔 산하 유니세프(UNICEF)에서 개발된 측정 도구로, 기존 상대적 빈곤률과 아동결핍지수를 결합해 아동의 빈곤도를 측정한다.
‘아동 결핍지수’ 역시 54.8%로 우리나라 아이들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았다. 결핍지수는 아동의 ‘하루 세끼 섭취’, ‘교과서 이외 도서 보유’ 같은 14개 항목 가운데 2개 이상, ‘아니요’라고 답한 아이들을 수치화한 것이다. 이 역시 두 번째로 높은 헝가리(31.9%)보다 한참 높은 수치였다. 우리 아이들은 여가생활 부문에서 가장 심한 결핍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아이들은 충분히, 아니 제대로 놀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물론 공부가 아닌 다른 이유들로 인해 아동의 정서는 얼마든지 나빠질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공부스트레스와 아동의 심리문제의 연관성은 매우 깊다. 내가 경험했던, 상담센터를 찾는 아이들을 얼추 가늠해보아도, 거의 대부분이 학습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경우들이다. 다른 문제 요인이 있더라도 학업스트레스가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아이들의 심리문제 역시 그만큼 깊지 않았다.
과도한 공부 강요는 한국 아동의 심성을 파괴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부스트레스가 아이들의 자존감을 훼손하고, 낙관성을 떨어뜨리고, 회복탄력성을 망가뜨리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나는 공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경험한 많은 아이들을 상담했다. 그리고 그들이 겪는 공부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공부 상처’라고 이름 짓고, 그 치유법을 모색해왔다. 우리 아이들이 경험하는 공부 상처는 지속적이면서도 다양한 원인들로 인해 서서히 깊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공부 좌절과 걱정이 합쳐져 공부 상처를 만든다. 그래서 한두 번의 심각한 사건으로 발병하는 심리질환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간혹 공부와 관련된 한두 번의 역경을 겪으며 공부공포증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몇 년에 걸쳐 이루어진, 하기 싫고, 스트레스가 심한 공부로 인해 생기는, 누적된 심리문제라고 할 수 있다. 수년에 걸친 부모와 세상의 공부 강요가 아이들의 마음을 훼손시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지독한 학습경쟁은 우리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또 필연적으로 공부 상처를 안기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사회가 아이들에게 가하는 공부스트레스가 학습 측면에서 학생 개인에게 결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존감, 낙관성, 회복탄령성, 효능감이 떨어진 아이들은 공부 역시 하기 힘들다. 아이들의 마음근력의 수준과 학업성취 사이에는 높은 연관성이 존재한다. 마음이 아픈 아이가 공부라고 제대로 할 리 없는 이치이다.
반대로 자기 공부를 책임지고 스스로 해나가며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아이들이란 대개 타고난 공부 재능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음근력을 잘 유지하고 신장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만났던 대학생이나 20대들 가운데, 자신의 학과나 일에서 최선의 결과들을 이뤄내는 이들 역시 마음근력을 잘 지켜내며, 공부가 노역이 아닌 향유와 호기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던 친구들이었다.
정작 우리들은 공부를 아이들에게 그토록 강요하면서도 아이들의 공부 의욕과 능력은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과도한 학습을 해낼 것을 강요하는 일이 오히려 아이들의 공부 의욕과 능력은 점점 더 작아지고 소멸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이 세상이 저마다 소중한 재능과 소망을 가진 아이들을 단지 공부 못하는 아이, 무능력한 아이로 만들고 마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모든 주체들이 좀 더 관심과 대안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시급하고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것이다. 아이들의 어깨에 지워진 짐들을 내려놓자면 모두가 이 일에 뜻을 같이하고 동참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스트레스로 공부가 싫은 아이들, 구성원들이 많아지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에도 결코 유익하지 않다.
교육선진국들은 아이들이 공부에 덜 스트레스를 갖게 하면서도 공부 능력은 극대화하는 긍정적인 교육모델을 확립해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교육선진국 아이들보다 공부를 더 하면서도, 공부 성과는 그만치 얻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공부를 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쉴 수 있게, 공부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하면서도, 전보다 더 공부에 대한 효율과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이는 분명 우리 모두 함께 뜻을 모으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일일 것이다.
[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우리 아이들의 학습 경쟁과 공부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