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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근 진로상담만큼 많이, 자주 하는 것이 학업상담이다. 가장 많이 상담하러 오는 내담자들은 공부에 대한 열의와 관심을 잃어버린 고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이다.
벌써 10년 가까이 공교육에서 공부란 것을 한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도대체 “공부를 왜 하는 거죠?”, “공부가 내 인생에서 무슨 의미인데요?”,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나요?”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럴 때마다 내가 느끼는 안타까움은 말할 수 없이 깊고 무겁다. ‘이런 것은 벌써 알았어야 하는데’, ‘이쯤은 누군가 꼭 가르쳤어야 하는 것인데’ 하는 아쉬움과 반성의 감정이다. 이는 세상과 사회, 부모와 어른, 선생과 제도 모두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다음 세대의 교육만큼 모두가 책임져야 하고,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안타까운 그들의 공부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최근 나는 스스로에게, 세상에 이런 질문을 던질 때가 많다. 누가 지금 자라나는 십대와 청춘들에게 ‘바른 공부’를 가르치고 있는가? 온전한 공부의 의미와 생의 큰 부분으로서의 학습이 가진 가치, 세계와의 실용적 연관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가?
지희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도록 공부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들어온 후부터 성적은 계속 하향곡선을 그려, 당시는 반에서도 하위권에 속했다.
공부 걱정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 지희는 급기야 우울증과 시험공포증 증상까지 보였다. 한두 시간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지희는 부모에게 너무나 소중한 딸이며, 세상의 선량이 될 만한 좋은 심성을 가진 친구였다. 다만 지희에게 유치원 시절부터 시작된, 그 어마어마한 학습시간에 반비례하는 ‘온전한 공부의미의 결핍’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내재해 있었다.
지희는 공부에 관한 한, 우리 청소년과 청년들이 흔히 갖기 쉬운 거의 모든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쉬지 않고 공부한다며 책상에만, 학원에만, 학교에만 앉아있지만 공부 효율은 심각할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잃은 공부는 공부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3을 만날 때마다 많은 비율을 차지하긴 어렵겠지만, 운동과 취미활동, 친구와의 교류를 반드시 주간 일정표에 반영하라고 조언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내 조언이 비현실적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 충분한 근거를 들어, 삶이 충만하고 온전할 때, 본인의 공부도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당부하곤 한다. 그때 그들에게 던지는 화두 같은 질문은 이것이다.
“공부 하루 이틀 하고 말 거예요?”
원대하게 보길 바란다. 인생이 공부이고, 공부가 바로 인생이다. 평생 해야 할 일이 공부이다. 공부는 당장 현실 문제라는 불만 끄는 소화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한 쉬지 않고 즐기며 실행해야 할 평생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필시 우리 교육의 여러 모순과 부조리 때문이겠지만, 나는 죽도록 공부만 하던 친구들이 대학교에 가서 좌표를 잃은 배처럼 정처 없이 표류하는 모습들을 자주 목격한다. 공부에서 어떤 의미나 좋은 감정도 갖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가 허다하다.
그것은 모두 공부의 의미, 가치를 모를 뿐더러, 공부의 진정한 재미와 생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한국 교육가 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란 바로 다음 세대들에게 공부를 지독히 강요하면서, 그들의 지적 호기심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생에 대한 깊은 호기심은 공부가 식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활활 타오르게, 학습의욕의 장작이 되는 요소이다.
지희에게 없는 것도 바로 이 호기심이었다. 지희는 모든 것에 시큰둥했다. 세상과 사회, 타인들,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관심이 거의 없었다. 공부는 늘 해왔으니 하는 것이고, 또 공부하지 않으면 모두들 큰일이 난다고들 하니 하는 것인데(도대체 뭐가 큰일인지 도대체 제대로 알려준 적도 없다고 했다), 도축장에 끌려가는 불쌍한 가축마냥 공부를 하고 있으니,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임에도 지희 안에는 티끌만한 진짜 ‘공부’가 존재하지 않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희에게는 자신을 되돌아볼, 공부의 의미를 되새겨볼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다. 나는 지희 부모를 앉혀놓고 “나도 재수를 했는데, 그게 인생에 그리 큰 데미지는 아니더군요. 되레 세상을 조금 더 힘차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하며 지희의 다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줄 그 ‘시간적 여유’를 한 번 주면 어떨까 하고 제안했다.
이미 여름 방학을 지날 즈음이던 지희는 그날부터 몇 달간 공부를 완전히 놓아버렸다. 대신 내가 권하는 철학책이나 소설, 공부에 관한 조언이 담긴 책들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일 년 후 지희의 공부는 전에 없이 단단하고, 또 효율적인 것이 되었다.
물론 이는 이례적인 사례이다. 그런 ‘공부의 위기’가 닥치기 전에 공부의 의미를 깨닫고, 온전한 공부의 실천과 수행이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공부의 위기가 찾아왔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실망할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공부의 위기가 서른이 넘어 찾아왔었다. 공부가 내 몸에서 유체 이탈하는 것 같은 체험도 해보았다. 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다시 질문하고, 한 번 더 생각하고, 마음의 정돈에 힘써보길 바란다.
도대체 이 공부는 내게 무엇인가? 그 온전한 답을 얻을 수만 있다면, 당신의 공부도 어느 순간 자신의 생을 비상하게 해줄 튼튼한 날개가 되어 있을 것이다.
[박민근의 힐링스토리] 공부의 의미부터 찾아야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