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인가 아닌가에 대한 구분은 글을 이해하는 세 번째 단계에서 판가름납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을 심리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글로부터 응집성(coherent)있는 상(image-situation model)을 구성(construct)하는 것’입니다. 글에 써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글에 써 있는 내용이 연상하게 한 것과 추론하게 한 생각을 통합하면 마음속에 하나의 상이 그려집니다. ‘상을 구성’하는 능력3이 완성하는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 독해의 마지막입니다.
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글의 난이도에 따라 쉬운 글은 ‘상’을 구성하지만 어려운 글은 ‘상’을 구성하지 못합니다. 상을 구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능력1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단어 때문일 수도 있고, 능력2에서 글 단위로 이해하지 못해서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능력1, 2를 발휘한 다음에도 어떻게 상을 구성하는지 몰라서, 즉 능력3을 습득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능력3을 실행하는 읽기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해란 글의 정보를 자신이 갖고 있던 지식체계에 편입시키는 것’입니다. 상당히 말이 어렵지요? 이미 알고 있는 것(지식)은 어떤 식으로든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 체계가 정확하기도 하고 엉성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글에서 어떤 정보를 보면 독자는 자신의 기억을 뒤져서 그 정보와 연관된 지식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 지식과 결합하고 있는 다른 지식들도 불러냅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지요.
<글> <기억>
짜장면 1. 초등학교 졸업식 ~ 평소에도 먹고 특별한 날에도 먹는다
2. 수영 후 ~ 싸게 많이 먹을 수 있다
저는 짜장면에 대한 많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초등학교 졸업식 후에 어머니와 함께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게 그 기억이 아주 강렬해서 짜장면을 보거나 이야기를 하면 그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영장에서 일행 중 누군가가 ‘아 배고프다’라고 한다면 초등학교 졸업식 후에 먹은 짜장면이 아니라 수영 후에 먹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짜장면 먹으러 가자”고 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수영장에 있다는 것을 되뇌이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분명히 수영장에 있음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짜장면이라는 정보가 들어와서 동시에 떠오르는 기억 1과 2 중에서 수영장과 연관된 기억2의 경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글을 읽는 상황은 단어 하나를 보고 하나의 경험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많은 단어의 연속과 여러 문장을 통해 특정 상황의 다양한 측면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떠올리는 기억은 상당히 다듬어진 것이 됩니다. 아래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 우리의 저작권에 관한 인식 수준을 확인시켜 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독립 영화 ‘워낭소리’의 성공으로 영화계가 즐거워한 지 얼마 안 돼서이다.‘ 워낭소리’의 불법 파일이 인터넷상에 올라 불법 복제가 자행되고 이 파일이 미국과 일본에도 흘러 들어가 수출마저 못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누리꾼은 “그만큼 영화관에서 봤으면 이제 내려 받아도 되는 것 아니냐.”,“관객이 많이 들었으니, 그냥 풀어라.”라는 말로 제작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돈을 많이 벌어들인 영화는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는 누리꾼의 논리대로라면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휴대 전화나 자동차도 그냥 마음대로 가져다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위의 글을 읽고 아래와 같이 1차, 2차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정보> <1차 반응> <2차 반응>
워낭소리 영화 본 기억
+
불법파일 불법파일이 있는 것을 본 적 있음 사람들이 그럴 수 있지
+
수출마저 못하게 되었다 물적 피해 인식 미안함/준법정신
+
누리꾼의 주장 누리꾼 주장에 대한 준법적, 이성적 판단 <<글 전체에 대한 반응>>
누가 워낭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면 사람들은 보통 그 영화를 본 기억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위 글에서는 그 영화를 말한 다음 불법 다운로드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갑니다. 그래서 이전에 불법 파일을 발견했던 기억도 떠올립니다. 유명한 영화지만 소규모 개봉을 한 다큐멘터리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이런 생각(순간적이라 생각이라 하기 힘든)을 하면서 글을 읽습니다. 하지만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물적 피해를 입기까지 했다는 말을 듣고 불법파일에 대한 태도가 바뀝니다. 그리고는 누리꾼의 공공연한 불법행위에 대해 ‘처음과 달리’ 법적으로 엄격히 대하게 됩니다.
이때 누리꾼의 주장에 대한 독자의 태도는 이전 내용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까? 아니면 위 글 마지막 한 문장에 대한 독립적인 반응입니까?
반응은 지식과 감정, 즉 이성적인 반응과 정서적인 반응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 어떤 정보에 대한 반응이 독자의 기억으로부터 왔습니다. 워낭소리를 본 경험, 불법파일로 영화를 본 경험, 타인에게 경제적 피해를 입히는 것에 대한 경험 또는 판단 등 여러 가지 생각이 조금은 우왕좌왕하듯 떠오릅니다. 하지만 문장과 문장이 생각을 이끌어가는 방향에 따라 가지런하게 통합을 하면 일목요연하게 주제가 하나의 상으로 정리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글을 단서로 우리 마음에 정리한 이해의 결과입니다.
“좋은 영화가 쉽고 공짜로 보고자 하는 마음과 행동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
[조창훈의 독서 컨설팅 ‘심리학이 밝혀주는 독해력의 비밀’] 글 이해의 최종 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