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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분이 있는, 한 미술치료사와 상담 비용에 대한 조금 불편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국내의 한 명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술치료를 10년 이상 한 실력이 좋은 치료사였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두 군데의 심리센터에서 일했었다. 한 군데는 한 대형 심리센터의 지점이었고, 하나는 집 근처의 작은 심리상담센터였다. 그녀는 두 군데에서 모두 회기 당 3만원씩의 치료 수당을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형 심리센터는 고객에게서 치료비용을 10만원을 받았고, 집 근처 작은 심리상담센터는 6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녀는 잠깐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일하며 적잖은 고민에 빠졌었다고 했다. 4만원이나 더 내는 내담자가 이런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다는 것이 양심을 괴롭혔다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1년도 채우지 않고 그 대형 심리센터를 그만두었다.
심리상담을 하며 굴곡을 겪었지만, 최근 변화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그리고 근래에는 상업적 심리센터 운영에 환멸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10년 전 만해도 정신과의 위세에 눌려 기도 펴지 못하던 심리상담이 지금은 온당한 심리치료의 대안으로 떠올랐고, 대중들 역시 마음이 아플 때 심리센터를 찾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다른 치료기관에서 행하지 않는 1시간 정도의 풍부한 상담이 이뤄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는 여러 변화 속에서 심리상담의 생태계가 온전하게 유지, 형성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심리상담은 심리적 회복을 원하는 사람과 심리치료에 대한 기술과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이 만나는 극히 인간적인 대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심리치료 고객과 심리치료 업체가 판촉과 상담료를 매개로, 심리상담 서비스를 서로 주고받는 경제활동이다.
대형 심리상담센터는 대부분 매 회기 1시간 상담치료에 대략 10만 원선의 상담료를 책정하고 있고, 이는 기정사실화되었다. 하지만 심리상담 고객이 지불하는 이 10만원의 상담료에는 불온한 비밀이 숨어있다. 몇 년 전 대형 심리상담센터가 존재하지 않던 때에는 대략 6-8만 원 정도의 상담료를 받는 중소 상담센터가 대다수였고, 그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큰 시설을 갖추지 않은 채, 또 별다른 마케팅 비용을 쓰지 않은 채 상담소를 운영해왔다. 지금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렇게 운영하는 센터가 많다.
하지만 최근 대형 심리상담센터들이 우후죽순 난립하고 있다. 강남에 몇 백 평짜리 상담소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대형 센터들은 중소 상담센터에서 받던 상담료보다 3-4만 원 더 많은 상담료를 책정하고 이를 고급 인테리어 비용이나 시설유지비, 인건비나 운영자의 이윤, 마케팅 비용에 쓴다.
문제는 이 3-4만 원의 상담료 상승이 심리상담 고객에게 실질적 혜택으로 돌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조금 넓은 시설, 코디네이터가 커피를 권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정도가 상담료 상승으로 심리치료 고객이 얻는 편익의 전부다. 정말 비용 상승으로 편해진 하나를 꼽으라면 스마트폰을 열어 심리상담 관련 정보를 검색할 때 그들의 광고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 정도이다. 그런데 이는 심리상담에 관한 한 껍데기일 뿐이다. 슬픈 일이지만, 더 질 높고 깊이 있는 상담에 당신의 상담료가 쓰이지 않는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내 경험으로는 치료의 질이나 상담가의 역량 증대에 그 돈이 쓰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규모가 커지며 상담센터가 닭장차처럼 획일화되고, ‘부스’화 되어 상담의 질은 훼손되었다. 예전 다녔던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나는 운영자들로부터 다음 회기 진행에 차질이 있으니 상담을 1시간 이상 하지 말라는 권고를 여러 차례 받았다. 이는 그날의 상담내용이 소진되어야 상담을 종료하는 내 상담 스타일과 적잖은 마찰을 일으키던 부분이기도 하다.
대형 상담센터에서 상담가에게 지급하는 회기 당 인건비는 3만 원 정도다. 참으로 박하다. 어떤 곳은 이마저도 지불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상담가들 중에는 3만원을 받고 상담할 바에는 차라리 상담을 않겠다고 손사래를 치는 이도 있다. 굶어 죽어도 그렇게까지 자존심을 구기기는 싫다는 이유에서이다.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일하는 치료사들을 폄하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정 역시 대개는 박리다매, 싼 상담료지만 많은 내담자를 만나 경제적 이득을 얻겠다는 입에 담기 불편한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형 심리상담센터에는 하루에 다섯 명 이상 내담자를 만나는 치료사들이 많다. 이러해서는 매 회기마다 정성과 열의를 품을 여건이 못 된다. 하지만 이것이 최근 시류다. 15년 전 대학원 시절 받던 과외비만큼도 안 되는 상담료를 받고 일하는 치료사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러니 이런 속사정을 다 아는 입장에서 훈수를 두자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대형 심리상담센터를 찾기보다는, 요모조모 비교하고 따져, 집 근처 7-8만원의 상담료만 내면 만날 수 있는, 그러나 더 많은 경력과 좋은 실력을 가진 상담가를 찾는 것이 현명하다.
대형 심리상담센터의 홈페이지는 자기네 치료사들의 경력을 한껏 부풀려 적어놓지만, 사실 그게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집 근처에서 오랜 기간 상담소를 차려놓고 묵묵히 상담을 하는 상담가들의 역량을 따라잡지 못할 때가 많다. 명심하라, 비록 어떤 상담소에 단 한 명 상담가만 있고, 넓은 로비나 상냥한 여직원이 없을지라도, 1대1 직면과 내밀함이 생명인 심리상담의 특성상 이는 더 쾌적한 조건일 수 있음을.
날이 갈수록 껍데기만 쌓이고 느는 세상이다. 존경하는 신동엽 시인의 말처럼 여기에서도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오롯이 남기를 고대해마지 않는다.
[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심리상담의 불온한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