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독신으로 살아가는 용기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5.04.20 11:15
  • 우리 사회에도 독신이 번지고 있다. 먼저 결혼거부 사회로 돌입한, 이웃 일본에서는 20-30대 가운데 단지 33%만이 기혼이다. 우리의 미래도 일본을 닮을 것이다. 이쯤 되면 기혼보다는 미혼이 더 보편적이다. 하지만 사회에는 여전히 늦게까지 독신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향한 싸늘한 시선이 존재한다. 또 나이가 차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결함이라도 있는 듯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심한 우울증으로 상담했던 민지씨도 그랬다. 민지씨는 올해 40세지만 독신이었다. 결혼한 적도 없었다. 서른셋쯤 오랜 연애 끝에 한 사람과 헤어진 후 몇 년간 일에 몰두했다. 일이라도 성공하자는 심산이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도심 가운데 운영하는 의류매장이 성업 중이다. 이제 여유로운 생활도 하게 되었지만, 40이 될 때까지 혼자 지내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처량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남녀가 짝을 이뤄 사는 것은 실은 더 이상 보편적인 서사가 아니다. 현대인은 인생 대부분을 홀로 산다. 긴 결혼생활은 단지 이상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0세에 육박하지만, 결혼한 부부가 함께 사는 기간은 35년 정도다. 불의의 사고나 이혼, 죽음 등이 결혼생활을 끝내는 일은 이제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갈수록 이혼에 대한 편견과 장벽도 사라지고, 결혼지속 기간 역시 줄고 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은 미혼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결혼이나 가족의 관점에서만 삶을 바라보는 것은 편파적이다. 삶의 기준을 기혼에 한정하는 것은 그렇지 못한 이를 소외시키는 일이다.

    행복한 결혼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겠지만, 당당한 독신을 주장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제 더는 사회도, 본인도 미혼을 삶에 부과된 책임을 회피하고 개인주의적 근성을 드러내는 태도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현대인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는 많고 다양하다. 결혼이나 양육 역시 그 한 가지 선택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소명이나 일 때문에, 다른 목적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거나, 못했다면 그것은 존중받아야 할 일이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독신은 때로 용기 있는 선택일 수 있다. 의료제도를 개혁하고 간호 사업을 선구적으로 정립시킨 역사적 인물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당당히 독신을 택했다. 엘리자베스 애보트의《독신의 탄생》에 따르면 그녀가 독신을 택한 것은 자기 일에 대한 확고한 소명의식 때문이었다. 물론 나이팅게일도 한때 결혼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미 봉사활동을 향한 갈망과 결의가 차있던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플로렌스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플로렌스는 결혼을 포기하고 간호사의 길을 선택한 결정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다른 여성에게도 값진 충고를 해주었다. “남자가 하는 일이니까 무조건 여자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여성의 권익’을 들먹이는 상투어도 믿지 말고, 남자가 하는 일이니까 여자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상투어도 믿지 마라” 죽는 날까지 잠시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분석적이었던 플로렌스의 사고는 이념과 인습을 모두 혐오했다. 인습에 도전하다가 가족과 불화를 겪기도 했지만, 아흔 살로 눈을 감은 플로렌스가 이루어놓은 업적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결혼 역시 다양한 가치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일에 몰입하다 독신으로 사는 것도 가치 있는 선택이다. 민지씨와 나는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돈이나 버는 별것 아닌 일이라고 여겼던 자기비하를 벗어던지면서 어느새 일에 대한 사명감이나 책임의식이 되살아났다. 최근 들어 자신이 골라준 옷을 입고 밝은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보며 민지씨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반드시 인생의 동반자가 사람일 필요는 없다. 그녀는 최근 예쁜 강아지를 한 마리 분양 받았고, 그 꼬맹이와 ‘살림’을 살기로 했다. 한 사내를, 한 아이를 살리지 않더라도 절대 모자란 삶은 아니다. 굳이 억지로 독신을 택할 필요도 없지만, 독신인 자신을 미워할 이유 역시 더더욱 없는 일이다. 강아지를 안고 함빡 웃는 사진을 내게 보이는 그녀에게 어느새 멋진 솔로의 미래가 차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