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훈의 독서 컨설팅 ‘심리학이 밝혀주는 독해력의 비밀’] 비문학 글의 상 만들기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5.03.24 09:40
  • 이제 독해의 목표를 마음에 상(상황모델 situation model)을 그리는 것으로 하고 이 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 상은 글의 모든 부분이 참여하여 구성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시가 어떻게 일관적인 정서적 상을 구성하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비문학 글에서 상을 그려보겠습니다. 

    아래 글은 작년 수능(2015학년도 수학능력시험 국어) 지문의 첫 단락입니다. 잠시 아래 글을 이해하는 법을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설명하는 글은 서두-본문-결론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형식은 ‘이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심리적인 순차적 단계에 차례대로 도달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마치 계단을 오르려면 하나씩 올라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서두를 잘 이해하면 본론을 정확하게 정교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두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마치 도미노처럼 본론의 단락들과 결론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본인은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정교하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를 만듭니다. 보통 서두는 글에서 다룰 화제를 제시한다, 화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알려준다고 말합니다. 마음의 상에 대해 말하자면, 마음에 그릴 상의 스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 신채호는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과정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가 무장 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이러한 생각은 그를 투쟁만을 강조한 강경론자처럼 비춰지게 하곤 한다. 하지만 그는 식민지 민중과 제국주의 국가에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민중 간의 연대를 지향하기도 했다. 그의 사상에서 투쟁과 연대는 모순되지 않는 요소였던 것이다. 이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의 핵심 개념인 ‘아’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 문장에서 신채호, 아와 비아의 투쟁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문장에서 다시 투쟁을 언급하면서 신채호가 그것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합니다. 즉, 마음속에 A를 떠올리게 하는 첫째 문장, A와는 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둘째 문장 다음에 비로소 연대를 지향한다는 B를 마음에 두게 하는 셋째 문장이 나옵니다. 이로써 독자는 신채호에 대해 A(투쟁)와 더불어 B(연대)를 마음에 두게 됩니다. 여기에 글의 흐름을 참고해서 글쓴이가 이 글에서 A보다는 B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수동적으로 A와 B가 마음에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내용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A와 B의 내용, 즉 투쟁과 연대가 보통으로 공존하기 어려운 것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 두 가지 요소가 신채호에게 공존할 수 있었음을 독자가 납득할수 있도록 ‘모순되지 않는 요소’였다고 밝혀 줍니다. 이점은 독자에게 궁금증을 유발할 수도 있고 이런 말로는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문장에서 본론에서는 ‘아’를 설명하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의 개념이 투쟁과 연대를 조화할 수 있게 해주는 사상을 드러내 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단순히 글에 어떤 내용이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서두를 읽고 어떻게 심리적으로 준비해 가는가가 글의 전반적인 이해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왜냐하면 아주 미세한 차이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지만 마음에 상을 스케치함으로써 다음 내용을 준비하는 과정이 있었는가에 따라 글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가 달라집니다. 다음주에는 이같이 서두를 이해하는 것이 본론의 이해에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가를 설명하겠습니다.

    조창훈 | 서울대 인문대학원 협동과정 인지과학전공 이학석사/리딩 &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전 을지대학교 외래교수 egane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