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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 유치환 시인의 <깃발>을 예로 들어 단어의 의미, 지식이나 경험을 통합하는 것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오늘부터는 통합한 결과물, 즉 글을 다 읽고 이해했을 때 머릿속에 남아야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전 글을 읽지 않은 분이라면 반드시 이전 글을 그리고 가급적이면 처음 글부터 읽으시고 난 후에 이 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역설적인 표현 때문에 ‘아우성’의 원인에 더 집중하고 그것이 무엇인가를 향한(‘흔드는’) ‘영원한’ 향수임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은 상이 마음속에 맺힙니다.
속으로는 맹렬하면서도 겉으로는 잠잠하며
무엇인가를 향하되 그 목표점은 넓고 아름다우면서 멀리 있어서
지향하기를 영원하게...
마음속에 이런 해설이 타이핑하듯 새겨지지는 않습니다. 느낌을 언어로 풀어 설명한 것이지요. 하지만 느낌도 한 가지 색으로 칠한 단색의 면이 아니라 형태와 몇 가지 색으로 구성된 그림과 같습니다. 형태나 구조가 있습니다. 위의 시 한 연은 우리 마음에 지향점, 향하는 주체, 지향하는 모양새라는 구조를 지닌 상을 마음에 맺게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을 심성표상(mental representation) 또는 상황모델(situation model)이라고 합니다. 비단 시 뿐만 아니라 설득하는 글, 설명하는 글을 읽은 후에도 이같은 심리적 결과물이 마음속에 생성됩니다. 설득하는 글에서 근거와 주장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이 마음에 잘 표상된다면 말입니다.
사실은 어떤 글이든지 제대로 읽는다면 이런 상황모델을 구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글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을 심리학적으로 바꾸면 ‘글로부터 응집성있는 상황모델을 구성하는 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설명하는 ‘글을 이해하는 심리적 과정’이란 상황모델을 구성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올바른 절차를 밟아 나가는데 필요한 선언적, 절차적 지식입니다. 먼저 절차적 지식에 관해 말씀드린 후에 다음 글에서 설득하는 글이나 설명하는 글로부터 어떻게 상황모델을 구성하는가를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제 글을 읽는 목적은 독해력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관심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독해력을 향상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서 독해력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 글은 이 두 가지를 이해하도록 돕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만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서툴게나마 전달할 수만 있을 뿐 올바르게 전달하거나 본인이 독해를 잘 할 수 있게 되지는 않습니다.
보통 지식이라고 하면 ‘무엇은 무엇이다’라고 하는 선언적 지식(knowing that)을 말합니다. 사용 설명서를 외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절차적 지식은 ‘어떻게 하는 지 익힌’(knowing how) 것으로서 도구를 다룰 줄 하는 것입니다. 독해력은 하는 방법을 단지 선언적으로 아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즉 절차적 지식을 습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선언적 지식부터 알고 가는 것이지요. 따라서 제 설명이 조금 생소하고 어려울 수 있지만 끝까지 읽어 나아가시되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반드시 이해하려고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실습을 해 보면서 깨닫고 더 잘 이해하실 수 있게 되실 것입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조창훈 | 서울대 인문대학원 협동과정 인지과학전공 이학석사/리딩 &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전 을지대학교 외래교수 eganet@naver.com
[조창훈의 독서 컨설팅 ‘심리학이 밝혀주는 독해력의 비밀’] 독해의 목표는 심리적 상(像, mental representation)을 만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