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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시학》에서 문학이나 예술작품의 향유가 의학적 치료와 같은 효험이 있다고 했다. 우리의 퇴계 선생 역시 고유한 문학 장르인 시조가 마음을 융통하게 하여 감성의 평정을 가져온다고 했다.
일찍이 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은 독서, 혹은 문학이 가진 치유 효과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고, 그 효과를 활용한 저술과 치유 행위를 실천해왔다. 중세 최고의 극작가이자 동시에 의사이기도 했던 라블레는 약 대신 책을 처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처럼 나 역시 독서를 상담에 활용한다. 최근 내담자들에게 자주 권하는 책이 몇 권 있다. 하나는 엘라 베르투와 수잔 엘더킨이 지은《소설이 필요할 때The Novel Cure(소설 치료)》이다. 문학 전공자인 두 사람은 알랭 드 보통과 철학자 로먼 크르즈나릭이 세운 영국 인생학교에서 활동하는 현역 독서치료사들이다. 이 책에서 그녀들은 오랜 임상에서 경험한 소설의 치유적 힘에 대해 말한다. 또 이 책은 개별 심리 증상에 적합한 소설 목록도 제공한다.
또 하나는 역시 영국의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 운영진이 낸《인생 학교》시리즈이다. 우리말로도 번역된 이 시리즈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돈, 일, 섹스, 시간, 세상, 정신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들을 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책들이 독서치료에 가장 근접한 방법론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사실 독서치료는 문학과 철학, 심리학이 절묘하게 융합된 학문이다.
국내는 아직 독서치료 연구가 미진하다. 몇몇 심리상담 관계자들이 미술치료나 음악치료처럼 또 하나의 매체 치료로 소개하고 있지만, 내가 선진국의 사례와 연구들을 확인한 바로는 독서치료의 외연은 그보다 훨씬 넓다. 그래서 한국에서 논의되는 독서치료에 대한 담론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폭이 몹시 협소함을 절감한다. 사실 독서치료는 심리상담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문학이나 철학 같은 좀 더 큰 범주의 학문이다.
일단 독서치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자면, 문학 전반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심리상담의 한 도구로만 봐서는 헤아리기 힘든 독서치료가 가진 효용과 문학이 선사하는 치유능력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가령 독서치료를 위해서는 수용미학이나 독자반응비평 같은 현상학이나 해석학적 문학이론에 대한 이론적 검토가 꼭 이루어져야 한다. 독서행위가 어떻게 독자에게 정신적 지평을 열어주고, 독자의 이해 증진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연구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독서치료를 위해서는 독서행위 자체에 대한 성찰 또한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이는 ‘독서학’이라는 독자적인 학문에 의해 규명된다. 가령 영문학자인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의《리리딩》같은 책은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독서학의 모범 사례이다. 스팩스는 이 책에서 깊이 읽기가 가진 효능과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독서치료가 치료라는 꼬리표가 붙은 탓에 심리상담과 가까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생기나, 실상은 철학상담에 더 가깝다. 우리 학계에서는 아직 심리상담과 철학상담 간의 위상 정립이나 그 융합에 대한 초보적인 논의도 이루지지 않은 형편이지만, 만약 수직선을 그려놓고 독서치료가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에 더 가까울지를 가늠한다면, 아무래도 철학상담에 가깝다.
철학상담은 철학적 대화이다. 철학상담은 철학이 삶에서 실제 적용되는 모든 이야기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심리상담은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답하기를 꺼리지만, 철학상담은 내담자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얻을 수 있도록 철학적 대화를 진행한다.
그러니 독서치료를 제대로 알자면, 이렇게 철학, 독서학, 문학(수용론), 심리학에 대한 통합적 이해가 필요하다. 독서치료는 이 다양한 학문들을 모두 아우르는 융합지대이다. 만만하게 책을 읽으면 마음이 자연스레 낫는다는 식으로 접근할 대상은 아닌 것이다.
풍부한 현실 독서치료를 위해 이들 학문의 융합 과정과 그 현상을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 책, 그 중 문학작품은 강력한 치유의 역능을 가지고 있다. 독서치료는 삶에서 그 힘이 작용하는 과정을 살피고 실천하는 일이다.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공부 못하는 아이는 없다》저자
[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진정한 독서치료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