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아버지의 심리학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5.01.19 09:35
  • 어두운 방 안엔/빠알간 숯불이 피고,//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이윽고 눈 속을/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김종길 시인의 시 <성탄제>에는 자식을 긍휼히 여기는 자애로운 아비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감기에 걸려 앓아누워 있던 내 머리를 어루만지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도 자식이라면 끔찍했던 분이셨다. 고된 노동으로 피곤하실 법도 했지만 일요일이면 몸을 누이는 일없이 삼형제를 끌고 들로 산으로 좋은 체험을 하게 해주려고 데리고 다니셨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아버지를 규명한 책, ≪아버지의 탄생≫는 어째서 인간의 남성과 여성은 고릴라나 다른 유인원의 수컷과 암컷에 비해 몸집 차이가 적은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가설일 뿐이지만, 고릴라와 같은 유인원들은 짝짓기에만 열성을 보일 뿐 새끼를 기르는 일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 반면, 인간의 아버지는 자식을 키우고 보호하는 데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며, 그래서 조그만 아기를 키우기에 적당하게 몸집도 암컷과 비슷해지고, 암컷처럼 작고 섬세한 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몇 만 마리의 알을 낳은 물고기들보다 평생 몇 명의 자식을 낳을 뿐인 인류가 더 번성한 데는 아버지의 극진한 부성애가 분명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부성애가 단지 본능적이고 본성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부성애를 느끼고 사유하는 존재이다. 철학자 헤겔은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고 가족구성원을 보살피는 일은, 개인이 근대사회가 끊임없이 유인하는 자기소외에 저항해 “실체적 자기의식”을 획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헤겔은 결혼이나 양육이란 것이 얼핏 구속처럼 보이나 “진정한 해방”을 얻는 열락이라고 규정했다. 인간이 본능을 이겨내고, 진정한 자기가 되기 위해서는 참된 남편이 되어보고, 자애로운 아비가 되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간에 화제를 일으키는 영화, <국제시장>은 자식세대를 키우느라 애썼던 아버지세대에 대한 헌사라고 한다. 어쩌다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조차 이념 논쟁의 대상이 되었는지 안타깝긴 하나, 우리 아버지들이 녹록치 않은 삶의 무게와, 시대적 그림자를 등에 지고 끝내 그 시대의 가장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분명 가족이었다.

    어린 시절, 국제시장 지척에 살았던 나 역시 아버지와 국제시장에 얽힌 추억들이 많다. 가난한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우리 삼형제를 이끌고 자주 국제시장 옆 부산극장이나 명보극장에 가 영화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대개 그 영화들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보고 싶었던 영화가 아니라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같은 것이었다.

    그 아버지의 작지만 견고했던 사랑과 정성이 나를, 우리 삼형제를 키워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한데, 어리석은 인간은 그 유한성을 자주 까먹는다. 내가 인간의 유한함을 가장 통절하게 체감했던 때가 아버지의 죽음에서였다. 송강 정철의 시조,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길 다 하여라/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찌하리/평생에 다시 못 할 일이 이 뿐인가 하노라”에서처럼 나는 뒤늦은 후회에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최근 들어, 홀로 깨어 잠든 어린 자식들을 굽어볼 때마다 매번 나는 예전 내 아버지의 사랑을 돌이켜 새기고 배우게 된다.

    박목월 시인의 시 <가정>에서 “내 신발은/십구 문 반(十九文半)./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그들 옆에 벗으면/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귀염둥아 귀염둥아/우리 막내둥아.//미소하는/내 얼굴을 보아라.”라고 노래하는, 무거운 구두처럼 짓눌리는 생의 무게와 책임감 속에서 눈과 얼음처럼 살벌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언제나 자식에게 햇살처럼 따듯했던 내 아버지의 체온과 마음을 느끼고 돌이켜보는 것이다.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내가 공부를 못 하는 진짜 이유≫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