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진의 교육 성장] 공부는 왜 하는가? (19 최종회)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4.12.30 10:19
  • 우리는 세상과 사람을 소극적으로 사랑할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혹은 헌신적으로 사랑할 수도 있다.

    소극적 사랑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의 몫이다.
    소극적 사랑에는 배려나 봉사와 같은 덕목이 요구되지 않는다. 소극적 사랑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되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삶이다. 타인을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남을 미워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고, 모함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는 정도의 소양은 물론 필요하다.

    적극적 사랑은 타인의 욕망에 공감하고 협력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적극적인 사랑의 일차 대상은 가족이다. 가족은 치장을 생략하는 사이이고, 허물(persona)을 벗고 지내는 관계이다. 때문에 가족을 사랑하는 데 사탕발림과 같은 정치적 기술은 쓸모없다. 가족에게 사랑을 전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정성뿐이다.

    최초의 가족은 부부이므로 배우자는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다.
    어릴 적 들판을 자유롭게 뛰놀던 아이가 이윽고 성장하여 나의 아내나 남편이 되었고, 지금 한 이부자리에서 잠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배우자는 무조건 감사하고 소중하게 사랑해야 한다. 그는 자유의 권리로 나를 선택했고, 나 역시 그러했으므로 서로의 자유를 늘 존중해야 한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도 배우자를 사랑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
    자녀는 복종을 강요하지 말고 무조건 사랑해야 하는 존재이다. 가족끼리는 언제든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특권이 있으므로 가족이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적극적 사랑은 친구, 이웃, 동료 나아가 낯선 사람에게까지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
    칭찬, 위로, 지지, 격려, 배려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베풀 수 있는 사랑의 선물이다. 나의 노고와 재물을 기꺼이 나누는 봉사활동이나 각종 후원도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이다.

    헌신적 사랑은 자기 자신보다 상대방인 그를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즐겁고 기쁜 일은 그가 먼저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고, 힘들거나 위험한 일은 기꺼이 자신이 맡는 것이다. 헌신적 사랑은 추운 날 외투를 벗어 덮어주는 작은 일부터 그를 위한 대리 죽음까지도 가능하게 하고, 이러한 행위를 통해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랑이 젊은 날에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에로틱한 열정이 식고 생의 쓸쓸함을 인식하는 나이에도 충분히 가능하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랑하는 데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상의 대부분을 소극적으로 사랑하며 살고, 때로는 무심한 듯 은둔하여 고독을 즐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고독을 선택하는 것도 사랑을 그리워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고독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해가 저무는 이즈음, 나는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의 풍경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고, 크리스마스 캐럴의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는 사람인가? 이러한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세상과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다.

    가뭄이 들면 저수지의 수문을 열어야 하듯이, 온정이 메마른 사회일수록 우리가 품고 있는 사랑의 주머니를 활짝 열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은 주는 것만 가능하므로.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외 다수 저술 / 2012 올해의 과학교사, 2006 서울시 우수 상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