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진의 교육 성장] 공부는 왜 하는가? (17)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4.12.09 09:42
  • ‘누구를 위해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떠오르는 답은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는 왠지 정답이 아닌 것 같다. 공부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공기 성분을 몰라도 숨 쉬는 데 지장이 없고, 별 이름을 몰라도 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고, 새들의 지저귐이나 풀벌레 울음을 듣는 데에 지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겨우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산다면 여느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자부심도 함께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상상의 테이블 위에 흔히들 꿈꾸는 인생을 한 번 펼쳐 보자. 입을 즐겁게 해 줄 맛있는 음식, 몸을 근사하게 치장해 줄 멋진 옷, 안락하게 쉴 수 있는 크고 넓은 저택, 품격을 높여줄 고가의 자동차, 최고 사양 휴대폰과 컴퓨터……. 최고급 요트에 성능 좋은 경비행기도 한 대 사고, 날씨 좋은 지중해 어디쯤 별장이 한 채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이제 즐길 일만 남았다. 집사의 지휘 하에 온종일 요리사가 맛있는 음식을 내오고, 피부미용사와 건강관리사가 온몸을 관리해 준다. 전속미용사, 코디네이터, 정원관리사, 운전사, 때밀이,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수발하는 사람들만 수십 명이다. 게임을 하든지, 그냥 놀든지, 잠을 자든지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 심지어 성욕을 채워 줄 인형 같은 비서도 있다고 치자. 모든 것이 완벽하니 가히 지상 천국이다.

    그런데 돈 받고 일하는 모든 이들이 자기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명령을 거부하거나 화내는 법도 없고 온종일 무표정하게 자신의 일만 충실히 한다. 내가 좋은 말을 해도 기뻐하지 않고 화를 내도 반응이 없다. 그들은 나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내 물건을 탐내거나 빼앗으려 들지도 않는다. 이처럼 밤낮 먹고 자고 빈둥대면서, 밀랍 인형 같은 사람들과 함께 산다면 과연 행복하고 재미있을까?

    그와 같은 삶은 애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가 분류한 인간의 욕구 중에서 생리적 욕구만이 채워지는 삶이다. 안전한 삶에 대한 욕구는 이미 충족된 상태이므로 걱정할 일이 없고, 대드는 사람도 없으니 더 세우고 말고 할 자존심의 욕구도 못 느낀다. 하지만, 자신을 위협하는 그 무엇도 없는 삶이 어떤 가치가 있을까? 행복은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소중한 것이지 영원히 보장된 것이라면 그 가치를 느끼기 어렵다. 아무에게도 도전받지 않고 누구에게 도전할 일도 없는 삶은 기록할 가치 없는 백지 인생일 것이다.

    게다가 앞서 가정해 본 삶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 있다. 인간 본연의 욕구 중 하나인 사랑의 욕구를 충족할 방법이 없다는 게 그것이다. 나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이 없으니 사랑할 대상도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대상은 내가 부당한 행동을 할 때 그것은 옳지 않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또한 내가 정당한 행동을 할 때조차도 그것이 부당한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며, 자신의 견해대로 세상을 판단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와는 다른 존재를 향하는 것이고, 서로의 자유를 존중할 때 성립한다. 둘 사이의 사랑이든 모든 사람과의 사랑이든, 사랑은 서로 다르게 행동하면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희열을 불러일으키는 요술 같은 것이다.

    공부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따라서 공부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하는 것이다. (18회 계속)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외 다수 저술 / 2012 올해의 과학교사, 2006 서울시 우수 상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