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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을 한국사람만 했다는 것은 옛말이다. 만약 운동을 볼 때 어떤 노선을 담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운동자체를 보지 못하게 되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보지 못하게 된다. 지도자만으로 운동을 보아서는 안된다. 주체가 있고 운동이 생긴다는 식의 발상과 논의는 경계되어야 한다. 주체라는 것이 설정되는 것은 역사에서 항상 사후였다. 사건이 먼저 있는 것이다. 실제의 운동 자체는 어디까지나 사례이다. 운동을 볼 때 운동을 하는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의 문제를 봐야 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최장집, 후마니타스, 2006)의 저자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및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면 한마디로 한국민주주의는 위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16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투표율이 30%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만큼 한국민주주의의 자화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도 없으며,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의 참여와 정당에 의한 대표를 그 핵심으로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투표율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젊은 유권자층의 낮은 투표율 때문이고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들에게 뭔가 집단적으로 표출하고 참여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있다는 사실이며 바로 그 젊은 세대들이 투표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민주주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이 정의로운 것이고 무엇에 저항할 것인가 하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우리 사회에 제기한 문제의식은 쉽게 망각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해방공간은 무엇보다 사회의 아래로부터 민중의 자발적이고도 폭발적인 동원을 수반했고, 그것은 해방의 기쁨과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만들자는 열망의 분출이었으며, 해방공간은 비정치적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해방 후의 조건은 조선조의 전통과 식민통치에 이은 세 번째의 역사, 구조적 조건이었고, 해방을 맞이하여 독립국가 형성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함에 따라 누가 새로운 독립국가의 지도자가 되는지의 문제가 잠재적인 갈등의 요인이 되었으며 남북한간의 적대관계는 각자의 사회 내부에서 재생산되었다고 한다. 또한 저자는 우리 헌법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에서 내용을 빌려왔고, 분단국가의 이념적 기초는 다른 이념보다 우선적으로 반공주의였으며, 해방 이후 민주주의의 초기 제도화가 냉전의 심화와 더불어 민족문제를 둘러싼 격렬한 갈등과 맞물렸다고 본다.
민주화 이전까지 한국의 국가는 과대성장국가, 발전국가, 강한 국가 등 여러 가지 용어로 개념화되었고, 민주주의는 무엇보다도 선거를 통해 투표자의 다수가 선출한 정부를 핵심으로 하며, 우리나라는 건국 이후 1987년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채 40년도 안 된 기간 동안 무려 아홉 차례나 헌법을 개정했다고 한다. 저자는 민주주의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영역 가운데서 경제로부터 정치의 분리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고 ‘정치는 부패했다’, ‘정치란 비합리적이다’, ‘정부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덩어리다’라는 식의 신자유주의 논리가 있으며 대통령을 둘러싼 문제의 중심에 정당이 위치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정당과 정당체제를 민주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고, 정당은 시민사회의 영역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시민사회를 국가에 매개하는 역할을 하며 민주주의가 약한 이유는 정당이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서구에서 시민사회의 개념은 16~18세기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부르조아의 등장과 더불어 나타났고 한국의 시민사회 개념은 권위주의 국가에 대한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등장했으며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대의와 시민적 가치, 규범을 실현하는 공적 영역을 창출한 것은 서구와 같이 부르조아가 아니라 교육받은 도시중산층의 적극적인 그룹이라 할 수 있는 학생과 지식인이 주도한 운동에 의해서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저자는 오늘날 한국의 시민사회는 공익창출의 안정적 기반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민주주의의 위기는 가속화되고 있다고 본다.
해방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정치에 어떤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정치의 대표체제, 즉 정당체제의 저발전이고 민주화의 계기 앞에는 시민사회의 폭발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대중동원이 있었으며 민주주의에서의 사회적 합의는 만장일치의 개념이 아니라, 여러 대안들간의 경쟁을 통해 다수 의사를 만들어 내는 과정과 결과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저자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는 정당체제의 저발전에 그 원인이 있고 정당이란 갈등을 동원함으로써 갈등의 범위를 넓히는 역할을 할 때 민주주의에 기여한다고 본다.
배경만 보다가는 실제의 운동을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운동이 내부에서 발생했는지 아니면 외부에서 발생했는지가 중요하고 운동을 볼 때는 공간을 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서 1946년의 단계에서 좌익과 우익을 나누는 뚜렷한 기준은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을 어떻게 보는지였다. 현대사를 설명할 때 찬탁 혹은 반탁이라고만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운동이라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역사를 바라볼 때의 핵심이다. 이 책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독자가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판단할 때 관점을 마련해 준다.
이병화 /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학과 석사과정 재학
[이병화의 초,중,고 학생들과의 독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