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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제가 더 날래다고 거북과 토끼가 다투었다. 둘은 헤어지기 전에 날짜와 장소를 정해 놓았다. 토끼는 타고난 속력을 믿고는 서둘러 출발하지 않고 길가에 누워 잤다. 거북은 제가 느리다는 것을 알고는 쉬지 않고 뛰었다. 그리하여 거북은 자고 있던 토끼를 앞지르고 경주에서 이겨 상을 탔다.”
- 천병희 역,《이솝 우화》
예전 한 재기발랄한 동화작가가 이 이솝 우화를 멋들어지게 패러디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동화에서도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하는데, 이번에는 원작과 달리 토끼는 잠을 자지도 않고 열심히 뛰어 거북이를 계속 앞질렀다. 그런데 토끼 앞에 돌연 강물이 나타났다. 헤엄을 칠 줄 모르는 토끼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 뒤따라온 거북이는 선뜻 토끼에게 자신이 강물 건너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거북이 등에 올라타 토끼는 무사히 강물을 건널 수 있었다. 그런데 토끼 역시 뭍에 내려서는 냉큼 달리지 않고, 토끼를 등에 업고 결승점까지 뛰어간다. 둘은 결국 결승선을 함께 들어섰고, 지켜보던 동물들도 함께 춤추며 기뻐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교육심리학자 알피 콘의 저서《경쟁에 반대한다》는 단순히 자신의 주장만을 담은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연구된, 주어진 과제에 대한 성취 수준을 살펴보는 논문들의 분석을 통해 대체로 진정한, 그리고 효율적인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경쟁보다는 협력이 더 낫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인들은 사회에 대한 깊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유럽 학계에 파문을 일으킨《피로사회》의 한병철 교수에 따르면 과거의 규율사회가 광인과 범죄자를 양산하는 사회였다면, 긍정의 강제와 성공주의로 물든 현대의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서로 경쟁해서 더 높이 더 많이 성공하라고 주문하는 현대사회에서 대다수 구성원들은 깊은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시도 편히 쉴 수 없이 다람쥐 쳇바퀴를 돌아야 하는 까닭이다.
경쟁이 결코 효율적이지 않음에도 우리는 왜 이토록 경쟁하는 것일까? 그것은 공동체가 붕괴되며 서로가 감옥에 갇힌 죄수와 같은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두 용의자(범죄 여부와는 무관하다)에게 검사가 이렇게 제안한다. “지금부터 두 사람 모두 심문할 텐데, 둘 다 순순히 범죄 사실을 자백하면 각각 징역 5년을 구형할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은 자백하지만 다른 사람이 범죄를 부인하면 자백한 사람은 석방하나 부인한 사람은 10년 형에 처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둘 다 범죄 사실을 부인하면 두 사람 모두 징역 6개월만 구형할 것이다.”
만약 서로가 서로를 믿고, 침묵을 지킨다면 6개월만 살고, 둘 다 석방될 수 있다. 훨씬 유리한 선택인 것이다. 그러나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두 용의자는 상대방에 대해 절대 신뢰할 수 없을 테고, 결국 자신의 범행을 고백해 3년 형을 받는다. 상대는 자백하는데, 자신만 침묵했다가는 10년 형이라는 어마어마한 중벌을 받게 되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눈먼 경쟁도 이런 상황에서 빚어진다. 서로 불신하며, 경쟁하는 상태에서는 모두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선택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불신이 가중되는 한국사회 역시 사회구성원들은 용의자들이 갇힌 감옥과 같은 영향을 미친다. 경쟁의 용의자가 된 우리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한없이 경쟁한다. 그리고 불이익, 혹은 더 못한 결과를 얻고 만다. 힘만 빼고, 좋은 꼴은 보지 못하는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이다. 사회나 정치 문제를 다룬 뉴스에서는 잘 의논해 합의를 이루었다기보다는 힘만 겨루다 결국 협의가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더 자주 접한다.
2013년 작고한 세계적인 심리학자 리처드 해크먼은 21세기가 요구되는 작업 방식이 팀(team) 형식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성공적인 팀을 이끌기 위해 팀을 이루는 구성원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능력은 ‘협력지능(Collaborative Intelligence)’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식이 넘쳐흐르는 정보사회에서는 결코 한 개인이 모든 지식을 종합하고 융합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토끼와 거북이처럼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개성적 존재들이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감능력과 서로를 긍휼하게 여기는 이타심을 가진 존재들이다. 너무나 뻔한 조언이겠지만, 서로 공감하고, 협력하고, 합심할 때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정말 백일몽 같은 상상도 해본다. 만약 이 세상을 조절하고 다스리는 커다란 기계가 존재한다면 경쟁으로 찌든 각자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진정시켜, 다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게 하고,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줄 수 있도록 작동시켰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경쟁자가 아니라 선한 협력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저자
[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우리는 왜 경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