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진의 교육 성장] 공부는 왜 하는가? (10)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4.10.14 10:18
  • 사람이 고양이보다 못할까? 물론 아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꼬리를 무는 번민을 잠시 접고 공부에 몰입할 필요가 있다.

    우리 집에는 4년 6개월 전에 태어난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눈부시게 흰 털과 고운 하늘색 눈이 아름다운 이 녀석은 출생 2년 만에 스스로 삶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터득했고, 이제는 사람의 심리까지 훤히 꿰뚫고 있어서 철학자 같은 면모마저 풍긴다.
     내가 고양이 수준이 된 것은 아마 일곱 살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에 말할 줄 알고, 읽을 줄 알고, 생각할 줄 알고, 결정적으로 사람의 감정을 파악할 줄 알았으니까 지적 생명체로서 필요한 기술은 다 터득한 셈이었다.

    어린 나와 친구들은 어른들이 하는 모든 것들을 익힐 능력이 있었다. 높은 나무에 재빠르게 올라갈 능력이 있었고, 한강 다리 난간 위에서 달리기할 담력도 있었으며, 심지어 남의 손에 든 화투패가 무엇인지도 알았다. 그렇지만 결코 다른 아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구슬치기 선수, 딱지치기 달인, 팽이치기 도사, 땅따먹기 귀신 등 어린 능력자들이 동네에 즐비했기 때문이다. 이런 종목들이 올림픽에 있었더라면 모두 신동이라 불렸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 입학한 후 아이들은 모두 자기 아버지들처럼 세속적이고 평범한 사람이 되는 길을 걸었다. 학교가 이미 많은 것을 터득한 아이들을 백지상태로 포맷하고 다시 시작하도록 교육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시험 성적에 따라 높거나 낮은 등급으로 분류되면서 공부에 온전히 몰입할 수 없었고, 나이를 먹어야 걸리는 여러 심리 증상에 시달리며 어른이 되어 갔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전국 초중고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2013년)에서 관심군으로 분류된 학생이 7.2%(152,640명), 자살 충동을 느껴본 경험이 있는 우선관리대상 학생이 2.2%(46,104명)로 나타났다. 이 수치에 들지 않은 아이들도 스트레스 상황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강박, 우울, 불안, 초조, 두려움 등을 증폭시키는 각종 신경정신 증상은 마음의 할큄을 당해서 걸리는 병이다. 누가 마음을 할퀴는가? 좁게 생각하면 부모나 선생 혹은 급우나 동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편견의 사회가 모두를 괴롭히고 있다. 그러므로 부모나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화풀이한다고 해서 정서적 불편함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이자 자기 치유의 길은 지성(知性)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지성은 갑옷처럼 정서를 보호할 수 있다. 지성은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헤아리는 능력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만인이 부러워하는 골프의 황제는 구슬치기 대장과 뭐가 다른가?’
    지성은 다르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받는 상금의 차이일 뿐이다.
    ‘무대에서 벗으면 예술이 되고, 길거리에서 벗으면 변태가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지성은 돈을 내고 보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처럼 유사하거나 동일한 행위가 어떤 경우는 비범이 되고 어떤 경우는 평범이 되고, 때로는 선이 되고 때로는 악이 되는 일들이 세상에는 널려 있다. 그래서 공부 과정에서 회의나 번민에 휩싸일 때도 있겠지만, 이러한 감상의 정류장에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런 감정은 대상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세상의 이치에 대해 공부하는 행위 자체가 세상을 사랑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11회에서 계속)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외 다수 저술 / 2012 올해의 과학교사, 2006 서울시 우수 상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