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진의 교육 성장] 공부는 왜 하는가? (6)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4.09.10 11:11
  • 정신의 자유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은 공부의 중요한 목적이다. 정신의 자유도가 높아질수록 타인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지고, 자유도가 의존도를 넘어설 때부터 인생의 상전이(phase transformation of human life)가 시작된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자신만이 느낄 수 있다.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산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이 바로 그 때로서 나이와는 상관이 없다.

    사랑의 대상은 ‘사람’과 ‘세상’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은 사람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운이 좋은 사람은 어릴 적에 사랑을 경험한다. 나는 운이 좋아서 사랑을 퍼 준 외할머니와 27년 동안이나 한 방에서 살았다. 할머니는 나를 완벽한 인간처럼 대했다. 나는 할머니로부터 서운하다거나 밉다거나 하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저 선한 눈길로만 바라보셨을 뿐이다. 내 어머니는 할머니의 그런 태도에 대해서 아이 버릇이 나빠진다며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이는 어머니의 오해였다. 아이가 버릇없이 구는 것은 작은 복수와 같은 것인데, 나의 버릇없음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를 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일 때만 성립한다. 조건이 붙는 사랑은 애정 거래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사랑’은 인문학과 자연학의 공부를 통해 깊어진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라 하니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나(I)와 너(you)를 제외한 그것(it)들을 담백하게 보는 것이다. 담백한 마음에는 미움이나 증오가 스며들 여지가 없다. 민들레꽃을 보듯이 세상을 편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죄 지을 일도 없을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동물이나 식물에 대해서는 화가 나지 않는데, 가끔 사람에 대해 화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와 내가 하나의 생명체로 엮여 있기 때문은 아닐까? 137억 년 전 우주가 무에서 태어난 것이 사실일까? 내 뱃속에는 2조 마리의 세균이 살고 있다고? 걔들이 나를 배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하면 도서관에 가야 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 만나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람이다. 도서관에서 철학자, 과학자, 기술자, 문인, 예능인, 장인, 상인, 농민, 군인, 정치인 가릴 것 없이 만나야 한다. 그 중에는 허풍쟁이나 사기꾼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가릴 필요는 없다. 단어의 뜻을 잘 몰라도 즐겁게 읽을 수만 있다면 어떤 책이든 경건하게 읽어야 한다. 나는 어릴 때에 읽을 책이 없어서 보급용 불경을 읽고 또 읽었는데 제법 읽을 만했다. 그리고 이틀에 한 번 꼴로 영화를 보았다. 피터 팬에서 드라큘라, 빨간 마후라에서 채털리 부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의 영화를 초등학교 때 섭렵했는데 이해되지 않는 영화는 없었다. 책도 영화와 마찬가지다. 어린이라고 보아서 안 될 책은 없다. 작가 샤를 단치(Charles Dantizg. 1961~)는 그의 저서에서 “아이들에게 나이에 맞지 않는 책을 읽히라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다”라고 독서에 관한 의견을 피력했다.

    빼곡하게 책이 들어찬 도서관에 들락거리다보면 의문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적어도 하루에 한 권은 충분히 읽을 수 있는데, 학교에서는 왜 열 권 미만의 교과서를 밑줄 쳐가며 일 년 내내 배우는 걸까?

    만드느라 애쓴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교과서는 무엇을 공부해야 한다고 써놓은 안내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5년마다 갱신되는 교과서에 담긴 내용은 대부분 100년 이전의 낡은 지식이다. 과학의 발전 속도와 비교할 때 학교 교육은 터무니없이 느리다.

    학생들은 학교 교육의 단점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단점을 알면 정나미가 떨어질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애정이 생긴다. 학교는 건강을 위해 다니는 태권도장처럼 즐겁게 다녀야 한다. 챔피언을 만들어주겠다는 학교의 공약에 기대지 말고 소풍가듯이 다녀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하는 진짜 공부에 열정을 쏟을 수 있다.
    (7회에서 계속)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외 다수 저술 / 2012 올해의 과학교사, 2006 서울시 우수 상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