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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사랑과 성은 아름답고 더할 나위 없이 벅찬 것이지만, 때로는 파괴적이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몇 달 전 상담했던 22살 지은씨는 성과 관련된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
사건은 상담 받기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대학 신입생 때 만난 동갑 남친과 1년 넘게 연애를 했다. 남친은 2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 둘 사이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어느 날 몇 달 만에 남친이 휴가를 나왔다. 그런데 그녀는 어쩐지 그것이 불편했다. 가임기였기 때문이다. 휴가를 나온 남친이 관계를 요구할 것이 분명했고, 이번만은 어째 꺼림칙한 마음부터 앞섰다. 남친이 나온 사흘 동안 두 사람은 두 차례 관계를 맺었다. 그것도 지은씨가 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을 해서 그 정도였다. 남친이 군대로 복귀한 후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지은씨의 몸에 이상이 감지되었다. 생리가 터지지 않은 것이다. 테스트기로 진단을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임신이었다. 결국 지은씨는 혼자 중절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군대에 있는 남친에게 결별을 통보했다. 얼마 후 지은씨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나와 만났을 때, 지은씨는 자책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몇 차례 자살충동마저 느꼈다고 토로했다. 늘 생명을 중시하던 자신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파괴된 것 같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뱃속에서 잠시 지냈던 작은 생명에게 말할 수 없는 속죄의식이 든다고 가슴 아파했다. 나는 지은씨를 자책과 번민,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도록 도왔다.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은 후, 지은씨는 심한 섹스혐오증을 갖게 되었다. 어쩌다 에로틱한 영화 장면을 보고 구토감을 느꼈다고 했다. 나는 남친이나 그녀 자신에게 아무 잘못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남녀 간의 성적 사랑 자체를 혐오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일러주었다. “만약 지은씨나 내가 부모의 성적 사랑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결국 문제는 무지였다.
한국의 십대들이나 20대들은 다른 데 온통 정신을 팔려 지내다 보니, 정작 많은 준비가 필요한 성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성적 관심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현명한 성적 사랑을 유지하는 법에 대해 무지하다는 뜻이다.
“분명 남친이 콘돔을 실수 없이 꼈는데 왜 그때 임신이 되었을까요?”
라고 묻는 지은씨에게 내가 콘돔은 피임 확률이 90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그녀는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랑에는 분명 지혜가 필요하다. 성에 대해 거의 모르는 지은씨에게 권한 책은 ≪스무 살 전에 알아야 할 성이야기≫이라는 청소년 성교육서였다.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이다. 책에는 자위와 애무부터 남녀의 오르가즘까지 기초적이고 과학적인 성지식들이 잘 설명되어 있다. 특히 일반인들이 가지기 쉬운 왜곡된 성지식을 충실하게 바로잡아준다. 성에 대한 지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단지 위험해서가 아니라, 인류에게 성적 사랑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책에는 “오르가슴은 인류의 존재를 보장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렇다. 사랑과 성이 없었다면 인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숙한 사랑과 성은 한 사람을 파멸로 인도한다.
사랑을 모르는 것은 무죄이다.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니까.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멈추지 않는 한, 성을 성실히 탐구해야 한다. 성에 관해 늘 제대로 알고자 하는 호기심과 열의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자신의 사랑이 더 견고하고 풍성해질 수 있는 까닭이다.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저자
[박민근의 심리치료] 스무 살의 사랑과 성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