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듀레터] 좋은 비전 vs. 나쁜 비전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4.05.31 15:49
  • 브런치에듀 특강/좋은 비전 vs. 나쁜 비전 (어거스트 홍 조선에듀케이션 행복인성연구소장)


    (5월 23일 자 브런치에듀 특강에서 이어집니다.)

    중학생이 되면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고 비전을 키우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중학생 학부모들이 자녀의 비전 때문에 고민이 더 생기기도 한다.

    “선생님, 우리 애 비전카드를 보고 하도 기가 막혀서 왔어요. 글쎄, 예쁜 집에서 예쁜 딸 낳고 키우면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사는 게 비전이래요. 다른 애들은 노벨물리학상을 탄다, CEO가 된다, 거창하던데 우리 애는 왜 그러는 걸까요.”
    “우리 애는 간호사가 되는 게 비전이래요. 의사가 될 거라는 애들도 많던데, 왜 하필 간호사가 된다는 건지, 원. 간호사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간호사보다 의사가 낫죠. 비전은 크게 가질수록 좋은 거라면서요.”

    아이의 비전이 너무 거창해서 고민인 부모가 있는 반면, 그 반대라서 고민인 부모도 있다. 가만 보니 우리 아이의 비전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소박해 보인다, 초라해 보인다, 하면 그때부터 부모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저 녀석은 대체 욕심이 없는 거야, 생각이 없는 거야.’ 등등 혼자서 별별 생각을 다 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나를 찾아와 하소연하는 것이다.

    아이의 비전이 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부모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비전을 적는 아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직업이 의사인 어떤 부모는 아이도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교사를 비전으로 적었다며 서운해 했다. 또 어떤 부모는 아이가 교사가 되었으면 했는데 정작 아이는 연예인이 된다고 해서 고민이었다. 영화감독이 비전이라는 아이 때문에 걱정이라는 부모도 있었다.

    “비전만 설정하게 하면 자기 주도적으로 살게 된다고 해서 은근히 기대했어요. 그런데 웬걸요. 비전카드를 보니까 오히려 더 걱정이더라고요. 글쎄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잘 된다는 보장만 있다면야 좋겠죠. 하지만 잘못하면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 아닌가요?”

    이런 걱정을 하는 부모들에게 나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씀드린다.
    “아이 비전을 두고 벌써부터 되니 안 되니 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이들 비전은 수시로 바뀌니까요.”
    아이들 비전에도 소위 트렌드라는 게 있다. 아이들이 중기비전으로 가장 많이 쓰는 것은 공무원이나 교사다. 요즘 안정적인 직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만큼 아이들도 그런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또 연예인이나 엔터테인먼트 회사 CEO가 되겠다는 아이들도 많다. 이 역시 요즘 유행을 충실하게 반영한 비전들이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가 원해서, 주변에서 좋다고들 하니까, 요즘 유행하는 직업이라 그 비전을 선택한다. 모든 아이들이 심사숙고해서 비전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 여건이 바뀌거나 가치관이 변화하면 아이들의 비전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강렬한 언어로 미래가 아닌 현재를 보는 듯 생생하게 비전을 그리라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 비전이 확고부동한 것이라 생각해선 안 된다. 또한 비전이 수시로 바뀌는 것이 잘못도 아니다. 십대들에게는 오히려 당연하고도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니 아이들 비전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다른 아이들 비전과 비교하지 말고, 부모 욕심에 견주지도 말고 그냥 두고 보는 것이 현명하다. 언젠가는 아이들 스스로 더 현실적이고 자기에게 잘 맞는 비전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그러기까지 기다려주지 못하고 부모가 섣불리 끼어들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부모는 그저 아이의 비전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역할만 하면 된다.

    “아이들 비전은 뭐든 응원해주라고요? 우리 아이는 ‘로또 당첨’이라고 적었던데, 그런 비전도 응원해야 하나요?”
    물론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부모가 개입해야 하는 비전도 있다. 로또 당첨처럼 요행을 바라는 것은 비전이 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해줘야 한다. 비윤리적인 비전도 마찬가지다. 많지는 않지만 간혹 비전을 설정하면서 ‘무슨 수를 써서든지’ 식의 표현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경쟁자의 실패를 바라는 비전을 설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전이나 타인의 불행을 소망하는 비전은 부모가 제재해야 한다. “엄마가 보기에 네가 적은 것들은 비전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구나. 이런 비전들은 네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단다. 보다 긍정적이고 윤리적인 비전을 세워보는 건 어떻겠니” 하면서 다른 비전을 설정하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요행을 바라거나 비윤리적인 비전이라면 ‘나쁜 비전’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부모 마음에 안 든다고 ‘나쁜 비전’이라 할 수는 없다. 내 처남은 스물두 살 때부터 스물여덟인 지금까지 영화판을 쫓아다니고 있다. 조명부를 거쳐 지금은 조연출로 일한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조명부에서 일할 때는 영화 한 편당 400만 원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4개월 안에 끝난다는 영화가 길게는 7~8개월까지 간다고 한다. 그러니 8개월 동안 400만 원으로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소리다. 게다가 언제 입봉할지 아무도 장담 못하고, 운 좋게 입봉해도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앞날 막막한 고생길인 셈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도 매일 죽을상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에 비하면 자기 목표가 뚜렷하고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사는 처남이 훨씬 행복해 보인다. 아이가 세운 비전이 이왕이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돈도 잘 버는 일이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아이의 비전을 무조건 무시하고 부모 욕심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허황된 비전이란 없는 것처럼, 한심하고 초라하고 나쁜 비전도 없다. 아이의 모든 비전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고, 응원해줄 가치가 있다.


    모아두면 책 한 권! 오늘의 교육 명언

    삶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 이 사실에 익숙해져라.
    (Life is not fair, get used to it.)

    -미국 기업가 빌 게이츠 (59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