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심리치료] 생각 치유 - 어리석음에 대하여(1)
맛있는공부
기사입력 2014.05.19 15:37
  • These things that are pleasin' you. Can hurt you somehow(당신을 즐겁게 하는 것들이 오히려 당신에게 상처 줄 수 있다는 걸 기억해요)
    - 록그룹 이글스, <데스페라도(Desperado)>

    상담이 끝나가는 한수씨가 요즘 흥얼거리는 가사이다.

    올해 25살인 그는 IQ가 140이 넘는 높은 지력의 소유자이다.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한 학기만 다니고 휴학 중이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다른 학생들과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였다. 10여분 정도 한수씨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저렇게 된 것이 모두, 다른 아이와 놀지 않고, 공부만 한 탓이라며 통곡에 가까운 슬픔을 주체하지 못했다. 겨우 IQ를 한 번 더 재보자고 꼬셔서 상담하러 왔다고 했다.

    한수씨는 자신이 만든 우리에 자신을 가두고 있었다.

    상담이 꼭 필요했지만, 그는 지능을 알고 싶을 뿐이라고 고집을 피웠다. 조금은 불협화음을 만들며 검사가 이루어졌고, 나와 독대하게 되었다. 검사를 진행하는 임상심리사는 하도 뜸을 들여 검사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렇게 까다로운 수검자는 처음이라고.
    그런데 IQ 검사 결과가 그는 무척 당혹스러웠던 모양이다.

    내게 지능 측정과 천재성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자신이 한 IQ 검사가 과연 정확한지를 캐물었다. 그의 논리는 현학적이었지만, 나는『이솝우화』에 나오는 포도가 덜 익었을 것이라며(그리스어 원문에서는 신포도가 아니라 익지 않은 포도라고 적혀 있다) 포기하는 약은 여우가 떠올랐다.

    굶주린 여우가 나무를 타고 올라간 포도 덩굴에 포도송이들이 매달린 것을 보고 따려 했으나 딸 수가 없었다. 여우는 그곳을 떠나며 혼자 중얼 거렸다. “그 포도송이들은 아직 덜 익었어.”
    <여우와 덜 익은 포도송이>(천병희 역)


    그가 알지 못하는, 인간의 비범함을 탐구해온 하워드 가드너,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로버트 스턴버그의 사유를 나열하며, 기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처럼 실용지능이 낮은 사람은 IQ가 높아도 생활에서 능력을 발휘 못한다고 지적했다. 내 이야기에 그는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이 알던 똑똑함이 잘못된 것이라니. 

    그가 흥분한 이유는 지능지수가 10점 가까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3년 전 휴학할 때 그는 무작정 지능검사를 했다. 자신이 멍청하지 않음을 증명하려고. 그에게 지능의 쇠퇴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태였다.

    그의 논리는 이러했다. ‘나는 똑똑하다. 그래서 다른 이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시기하는 이유도 내가 똑똑하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이와 어울릴 수 없는 특별한 삶을 사는 까닭 역시 내가 더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자신이 점점 멍청해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징조는 그에게 위기로 다가왔다. 내가 <여우와 덜 익은 포도송이>를 펼쳐 조심스레 그에게 보이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몇 시간에 걸쳐 그에게 ‘인생은 똑똑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 완벽하지 않은 한 사람이 성실을 다할 때 온전한 생이 만들어지는 법’이라고 설득했다. 꼭 높은 지능을 요구하고 추앙하는 자본주의나 산업사회의 요구 때문이 아니라 해도, 시대를 불문하고 높은 지력은 인간의 ‘어리석은’ 열망이었다.

    징징거리는 한수씨를 바라보며 예전 서른 무렵의 ‘나’가 생각났다. 서른 무렵 나 역시 어리석었다. 당시 나는 ‘껍데기 나’가 빠져나간, 그래서 동굴에 갇힌 ‘나’를 채울 지혜가 필요했다. 그래서 열심히 그것을 찾아 헤맸다. 도덕경이나 장자우화, 불교의 선문답, 그리고 노예철학자 에픽테토스의『엥케이리디온』은 그 빈 ‘나’에 밀물처럼 들어찬 지혜였다.

    특별히 노예였으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에픽테토스의『엥케이리디온』은 세상에 대한 혜안을 전했다. 그는 심적 평정을 간구했고, 역경 속에서도 정념에 휩쓸리지 않는 강한 정신을 소유하려 애쓴 인물이다. 인간은 마음이 약할 때 더 어리석어진다. 강인하고 단단한 마음은 어리석음을 이기기 위해 필요하다. 그가 속한 스토아철학의 가르침은 힘든 시절의 내게도, 그리고 마음의 동요로 고통스러운 당신에게도, 그리고 공기인형 같은 자신이 사라져가는 것에 절망하고 있던 한수씨에게도 꼭 필요하다.  

    너를 모욕하는 것은 너에게 욕을 퍼붓는 사람이나 너를 때리는 사람이 아니라 모욕하고 있다고 하는, 이 사람들에 관한 너의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누군가가 너를 화나게 할 때 너의 머릿속의 생각이 너를 화나게 하는 것임을 알라. 그래서 먼저 외적 인상에 의해 사로잡히지 않도록 노력하라. 왜냐하면 일단 시간을 벌어 늦춘다면, 너는 손쉽게 너 자신의 주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외적 인상에 무감각하라,『엥케이리디온』(김재홍 역)

    에픽테토스는 자신을 둘러싼 감정과 선입견의 틀에서 자유로워질 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거듭 이야기한다.

    그는 과연 ‘천재’다웠다. 한수씨는 불과 며칠 만에 내가 내준 숙제들, 10권 가까운 책을 모조리 읽어왔다. 그는 자리에 앉자 말자 자신이 정말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고백했다. 불과 일주일 만에 일어난 생각 변화가 놀라웠다.

    특히 찬찬히 다시 읽은『이솝우화』는 최면에 걸려 있던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상담을 이끌며 내가 많이 읽도록 권하는 책이『이솝우화』이다. 간명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통찰로 가득 찬 책이다. 단, 예전 우리가 읽은 도덕교과서 같은 이솝우화는 잊어야 한다. 원래『이솝우화』는 그런 책이 아니다. 지금은『이솝우화』를 그리스어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책이 나와 있다.

    이솝우화 혹은 아이소피카(Aesopica)는 아이소포스(Αἴσωπος), 혹은 이솝이 지은 이야기를 모은 우화집이다. 이솝은 기원전 약 6세기경에 살았던 그리스인이다. 그는 전쟁포로였다고 한다. 그리고 에픽테토스처럼 그도 노예로 살았다. 그리스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기원전 6세기에 사모스라는 지역의 노예로 살다가 훗날 델포이의 신전에 있던 사제들의 탐욕을 고발했다가 그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전해진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삼라만상을 특유의 풍자와 재치로 표현한 그의 우화는 그리스, 로마시대 때부터 문학의 정수로 여겨져 왔다.
    『이솝우화』에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꼬는 내용이 많다.  

    “어떤 사람이 아이티오피아인을 노예로 샀다. 그는 노예의 살빛이 그런 것은 전 주인이 제대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노예를 집으로 데려와 하얗게 만들려고 온갖 비누로 문지르고 온갖 방법으로 씻어보았다. 그러나 그는 노예의 살빛을 바꾸지 못하고 과로로 몸져누웠다.”
    <아이티오피아인>


    어리석음은 우리가 피하고 싶은 일이다. 그런데 이 어리석음은 진실한, 인간의 속성이다. 어리석은 인간이 어리석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그래서 모순이다. 상담마다『이솝우화』몇 편으로 한수씨와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것들이었다. 우리는 어리석음을 우리 인간의 특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실수하지 않기 위해, 완벽해지기 위해, 더 나아지기 위해 지난한 심적 고통을 감수하는 또 다른 어리석음을 피하는 비교적 온당한 방법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더 큰 덫에 사로잡힌다. 나도 어리석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조금 더 현명해지는 일이 가능하다. 아이티오피아인의 살색이 원래 검은 것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이 주인처럼 세상의 본성과 실체를 알아채지 못하고 어리석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서로 친해질 즈음, 나는 어리석음에 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전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을 개척했다. 행동경제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것이라 여겼던 ‘이상적 인간’의 신화를 깬다. 어떤 면에서 인간은 대개 성급하게 판단하고 그 성급하게 내린 결론을 어쩌지 못해 늘 그럴싸한 변명을 늘어놓은 존재라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덜 익은 포도송이라며 발길을 돌리는 여우’나 ‘노예의 원래 살빛이 검은 줄 모르고 비누칠을 해대는 주인’의 심리가 오히려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이제 지금까지 자신이 벌인 일을 억지로 어떤 이유들에 끼워 맞춰 합리화했다는, 성숙한 자기 이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잘 나야 한다는 마음의 구속, 돈에 얽매이는 생활의 구속,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아집에서 사로잡히면 우리는 늘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자신을 포장하게 된다. 그런 구속과 아집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지혜가 온다.
    우리는 누구나 때로 어리석은 여우일 수 있다. 노예였지만, 가장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던 이솝이나 에픽테토스에 비해, 우리는 비록 자유로우나 수많은 생각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때로 어리석은 짓이나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반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또한 현명해질 수 있다. 

    한수씨와 상담이 꼭 그렇게 딱딱한 것만은 아니었다. 음악을 즐기는 한수씨를 위해 우리는 노래들을 자주 감상했다. 록그룹 캔자스의 ‘Dust In The Wind(바람 속의 먼지)’도 있었고, 자신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스팅의 ‘Shape Of My Heart(마음의 형태)’도 있었으며, 어리석은 방황을 이젠 끝내라고 타이르는, 록밴드 이글스의 ‘Desperado(무법자)’도 있었다. 그 중 ‘데스페라도’는 한수씨가 자신을 설명하고 다독거리는 노래로 다가왔다. 

    Now it seems to me, some fine things. Have been laid upon your table. But you only want the ones that you can't get(당신 테이블 위에 좋은 패가 놓인 것 같이 보이겠지만, 당신은 얻을 수 없는 걸 원하는 것이에요.)

    헬로스마일 심리센터 원장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