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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씨는 자신의 유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부모님도, 자라온 환경도 문제가 없고, 성장 과정도 또래들과 비슷하며, 성격마저 무난해 학창시절을 나름대로 행복하게 지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문제는 단지 지금의 남자친구라고 했다. 그녀는 남자친구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착했다. 가령 남자친구가 다른 여성과 만날 일이 있으면 괜한 트집을 잡고, 신경이 곤두선 채 만남이 끝날 때까지 예의주시했다. 남자친구가 제발 그러지 말라고 화를 내면, 이런 상황을 만든 네가 문제라며 윽박질렀다.
남자친구는 세라 씨 마음이 불편할 줄 뻔히 알면서도 늘 자기 멋대로 일을 저지른다고 했다. 몇 주 전 회사 동료들과 갔다 온 해외여행은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남자친구는 수상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일행에는 남자친구가 자주 예쁘다고 말했던 후배도 섞여 있었다. 그 후 세라 씨는 남자친구와 냉전 중이었다.
남자친구는 별로 힘들어하지 않는데, 자신은 미칠 것 같다고 했다. 불쑥불쑥 심각한 충동들이 찾아들었고, 험한 말들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오곤 했다. 남자친구와 다퉈 둘 사이에 긴장감이 생길 때마다 세라 씨는 가슴이 몹시 답답하고 때로는 숨 쉬기가 힘들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것이 문제라고 여겼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 맞지 않는 남자에게 집착할까요?”
“그건 취향이 아닐까요?”
세라 씨는 잘 기억하지 못했으나, 그녀 부모에게는 이혼의 위기가 있었다. 언젠가 한 번 딸의 마음이 궁금해 내방했던 어머니에게서 숨은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어릴 적 세라 씨가 잠시 외가에 맡겨진 적이 있었다. 세라 씨는 그 동안을 몹시 견디기 힘들어했고, 자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여러 달 후 엄마와 아빠가 다시 화해를 하고 그녀를 데려왔을 때, 어린 세라의 몸무게는 많이 줄어 있었다.
그 후 아이의 성격이 바뀌었다고 했다. 도도하던 세라는 그 이후 관계에 집착하는 아이가 되었다. 친구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고, 친구들에게 자기 시간을 바쳤으며, 이별이나 관계 단절을 괴로워하게 되었다. 아버지에게는 몹시 살갑고 다정한 딸이 되었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심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는 ‘이별불안증(분리불안 장애, Separation anxiety disorder)’을 겪고 있었다. 주로 유아기 때 겪는 분리불안은 뜻밖의 이별을 맞이함으로써 빚어지는 심리 증상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별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까닭이다.
남자친구와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유년기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그녀는 한동안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어느 날 나는 몇 가지 숙제를 내주었다.
‘아버지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생각해 보세요.’
‘많이 힘들었던 이별 기억들을 떠올려보세요.’
‘인생에서 이별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별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일 자체가 세라 씨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나는 그녀가 유년의 추억 속으로 스스로 헤집고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세라 씨에게 닫힌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기에≪리디아의 정원≫은 딱 맞는 이야기였다. 데이비드 스몰, 사라 스튜어트 부부의≪리디아의 정원≫은 그림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봤을 만한 유명한 동화책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이 부부의 따뜻한 시선은 다른 작품들인≪도서관≫, 이나 ≪돈이 열리는 나무≫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리디아의 정원≫은 어린 리디아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편지 글과 수채화와 파스텔화로 그려진 멋진 그림들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꽃 심기를 좋아하는 리디아는 당분간 외삼촌댁에서 지내야만 했다. 리디아는 홀로 기차를 타고 외삼촌댁으로 간다. 외삼촌은 무뚝뚝해서 잘 웃지도 않는 분이지만, 사랑스러운 리디아의 행동들에 점차 감화되어 간다. 리디아는 외삼촌의 빵집에서 빵 만드는 일도 능숙해지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생활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그리고 외삼촌을 기쁘게 할 양으로 몰래 일을 꾸미기도 한다. 빵집 옥상에 여기저기서 모은 꽃씨들로 정원을 꾸미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황량하던 옥상은 리디아의 정성으로 멋진 정원이 된다. 외삼촌이 깜짝 놀라는 장면은 이 동화책의 압권이다.
아빠가 취직해 집으로 돌아와도 좋다는 편지가 오고, 외삼촌은 리디아와의 이별을 위해 커다란 케이크를 준비한다.
“‘휴업’이라는 팻말을 걸고는 에드 아저씨와 엠마 아줌마와 저에게 위층으로 올라가서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외삼촌은 제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굉장한 케이크를 들고 나타나셨어요. 꽃으로 뒤덮인 케이크였어요. 저한테는 그 케이크 한 개가 외삼촌이 천 번 웃으신 것만큼이나 의미 있었습니다.”
마침내 떠나는 날, 기차역 플랫폼에서 외삼촌과 리디아는 꼭 껴안고 작별인사를 한다. 나에게는 이 장면이 늘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리디아의 정원≫가르치는 것은 이별 안에서도 기쁨을 발견하는 성숙한 감정이다.
나는 세라 씨에게 ≪리디아의 정원≫과 비슷한 기억을 더듬어보라고 주문했다. 그녀의 입에서 마음의 저편에 밀어두었던 그 시절에 대한 고백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어느 새 슬픔을 터뜨리며 오열하고 있었다. 그녀는 울면서 그때의 여덟 살 아이로 돌아갔다.
당시 세라 씨는 부산에 살았다. 외할머니 댁은 부산에서 얼마간 떨어진 어촌이었는데 하루에 다섯 번씩 부산에서 배가 들어왔다. 점심을 먹고 그녀는 늘 포구에 나가 앉아 있었다. 해질 무렵이면 마지막 배가 도착하고, 여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녀는 엄마의 그림자를 찾았다.
때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고, 때로는 그 눈물이 밤새 마르지 않았다. 그런 날들이 몇 달이나 지속되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은 이 기억을 망각하기 위해 무던히 애쓴 탓이었다.
“너무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나 가슴이 아팠어요.”
의도적 망각으로 지워졌던 쓰라린 이별의 기억이 복원되었다. 하지만 과연 고통뿐이었을까? 리디아의 정원≫에서 그려내고 있듯이, 이별은 늘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다. 나는 한 번 리디아가 되어보자고 했다. 그녀는 다시 기억의 저편으로 들어갔다.
“앞집에 순이라는 아이가 살았어요. 저랑 동갑이었는데, 그 아이와 놀았던 기억이 많이 나요. 같이 갯가에서 게랑 고둥도 잡고, 가끔 헤엄을 쳤어요. 그 아이랑 있을 때는 엄마 생각을 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외할머니도 늘 절 꼭 안고 잠을 잤어요. 외할머니가 자주 했던 “아이구, 애린 것을” 하는 말이 떠올라요. 지금도 외할머니 댁에 가면 정말 좋아요. 아니 가슴이 벅차요. 할머니는 여전히 절 꼭 안아주시거든요.”
나는 외할머니 댁에서 나올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자고 했다.
“엄마가 와서 정말 정말 기뻤어요. 그런데 순이가 많이 울었어요. 내가 또 놀러 올 거니까 울지 말라고 했는데 막무가내였어요. 외할머니도 많이 우셨어요. 그때 순이랑 외할머니 모습이 생생해요. 나도 울었어요. 그 헤어짐이 또 너무 슬퍼서…….”
만남은 이별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별 없이는 인생도 한 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헤어짐은 모든 관계의 진리이다. 이별을 만남의 전 단계로 이해하고 만남은 이별과 연결된 사건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세라 씨에게 남자친구를 사랑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용서를 비는 일을 주저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용서 역시 사랑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가 더 잘못했다고 해도 용서를 비는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불신은 불신을 낳지만, 용서는 사랑을 낳는다고 전했다.
세라 씨에게는 깊지는 않았으나 우울증도 있었다. 늘 속마음과 많이 다른 겉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해 매사에 심적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상담을 통해 그 멀어진 두 마음을 합쳐내는 우울증 치료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다섯 번째 상담에 세라 씨의 남자친구가 따라왔다. 그녀가 먼저 용기를 내어 용서를 빌었고, 남자친구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자신도 단단히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여행에 참석했던 것은 맞지만, 그 직장 여자 후배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세라 씨의 판단처럼 남자친구는 그녀와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성격 검사를 해보니 오히려 둘의 성격은 대단히 잘 맞는 편이었다. 둘 다 책과 영화를 즐기며 다분히 감성적이었다.
나는 힘껏 사랑하고 이별의 운명은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했다. 세라 씨가 ‘이 남자와 이별해도 나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괜찮을 것이다’라고 마음을 놓은 이후, 둘의 사랑은 조금 더 깊어졌다.
그리고 나는 남자친구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서울에서 멀긴 하지만 둘이서 그녀의 외할머니 댁에 갔다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남자친구는 그렇지 않아도 한 번은 찾아뵈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일은 이루어졌다.
우리는 만남 안에서 성장하기도 하지만, 이별 안에서 성장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별은 단지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별은 때로 만남의 꽃이다.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 / 퇴계문학치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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