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심리치료] 가을, 아이의 마음을 채우는 책읽기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3.10.11 16:25
  •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책을 읽겠다고 계획하시는 분들이 많다. 당연히 아이에게 좋은 책을 읽히고 싶어 하는 분들도 많다. 얼마 전『아이를 바꾸는 책읽기』라는 책을 내면서 부쩍 주변에서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히면 좋을지 묻는 분이 많다. 물론 책에서 썼던 대로 누가 권하는 책보다는 아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을 읽게 도우라는 조언을 먼저 한다.

    그런데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아이들의 독서에 대한 생각이 편향되어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독서 하면 공부를 위한 독서, 읽기능력이나 학습에 도움이 되기 위한 책읽기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 탓이다. 하지만 심리적 빈곤을 겪는 요즘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긍정적인 정서와 바른 가치관을 갖게 하는 독서 본연의 내용과 방식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도구적인 독서가 아니라 마음이 성장하고 바루게 하는 근본적인 독서가 더 절실하다. 

    아이에게 권할 책을 고르기 위해 막상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보면 수와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을 만나게 된다. 어린이책을 자주 접하지 않았고, 정보도 많지 않은 부모들로서는 곤란할 만도 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인터넷에 떠도는 추천도서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의 아동도서 베스트셀러를 읽히라고 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이의 책에 대한 고민을 접할 때마다 아이의 책을 고르고 권하는 몇 가지 원칙을 차근차근 일러준다. 

    다음은 그 중 몇 가지를 간추린 것이다.

    첫째는 역시 작품의 수준을 세심히 살피는 일이다. 책은 많지만 좋은 책은 적다. 금쪽같은 시간을 불량한 책읽기나 어울리지 않은 책읽기에 낭비할 일은 아니다. 그러자면 작품 자체의 수준은 물론이고 아이의 독서수준도 잘 고려해야 한다. 작품 자체의 수준을 따지는 많은 기준이 있다. 베스트셀러, 수상작, 전문가의 조언 등등.

    하지만 외국 명작이라고 베스트셀러라고 무턱대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외국 명작이라도 번역이 서툴다면 결코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 많이 팔리는 책은 광고나 입소문 같은 부정확한 원인에 기인하는 경우도 많다. 또 부모들이 가장 현혹되기 쉬운 것이 무슨무슨 수상작이다. 하지만 외국 수상작을 최우선으로 꼽을 이유가 없다.

    어차피 번역 과정에서 말의 힘이 상당히 죽는다. 오히려 국내 작가의 작품 가운데 말의 질감이 풍부한 것을 찾는 것이 상책이다. 세월이 검증한 국내 작가의 동화들에서 지름길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 아이의 수준도 고려해야 한다. 아이에게 맞는 수준이란 자신이 읽기에 조금 어려운 내용이 좋다는 연구가 있다.

    그러니 부모가 애써 한두 학년 위의 책을 읽으려는 아이의 욕심을 꺾을 필요는 없다. 아이들이 이미 아는 일상어보다는 고어나 사투리, 특정 집단의 말들이 섞여 있는 책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영어권에서는 세익스피어의 고어 작품을 많이 읽은 아이들의 언어능력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두 번째는 긍정적인 주제와 내용을 가진 책을 우선으로 고르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점점 부정적 세계관과 의미상실의 삶에 길들어가고 있다. 이는 현실이지만 결코 온당한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아이들이 부정적 심리나 생각보다 먼저 알고 가꾸어야 할 대상은 긍정적 덕목들이다. 몇몇 심리학자들은 24가지 긍정적 성품을 선별한 바 있다.

    호기심, 학구열, 판단력, 창의성, 사회지능, 예견력, 호연지기, 친절, 사랑, 시민의식, 공정성, 지도력, 겸손, 신중성, 자기통제력, 감상력, 감사, 낙관성, 영성, 용서, 유머감각, 진정성, 열정 등이 그것이다. 성격 강점 검사를 통해 아이가 부족한 성품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부족한 심성을 채워줄 수 있는 책을 고른다면 안성맞춤일 것이다. 가령 용기가 부족한 아이라면 마크 트웨인의 『톰소여의 모험』이, 학구열이 부족한 아이라면 최효찬의 『세계명문가의 공부습관』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부정적인 세계관을 전파하는 내용의 책은 삼가는 일 역시 중요하다. 좋은 책을 접하게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좋지 않는 내용이 든 작품을 피하는 일 또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외국 작품들 가운데는 더러 인종주의적 편견이나 서구 중심적 세계관이 스며든 경우가 많다. 또 아시아 작가의 작품에는 집단주의적인 사고나 여성 비하의 풍습이 든 내용들도 종종 발견된다.

    부모라면 아이들이 굳이 먼저 알 필요가 없는 이런 내용이 담겼는지 세심하게 살펴 가릴 의무가 있다. 가령 월트 디즈니의 작품들 가운데는 서양인, 그 중에서도 백인 중심의 가치관을 보이는 것이 있다.

    네 번째는 책의 결말이 꼭 해피엔딩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내가 긍정적 주제를 다루는 작품을 권하라고 조언하면 결말이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은 안 좋겠네요 라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다. 물론 아이가 비극적이고 우울한 작품만을 골라 본다면 문제겠지만, 세상에는 모든 일이 행복하게 끝맺지는 않는다는 진실도 알려줄 필요는 있다.

    비록 결말이 비극이나 실패로 끝났다 해도 아이들에게 좋은 가치와 의미 정립이 가능하게 돕는 작품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가령 권정생의 『엄마 까투리』는 분명 슬픈 결말로 끝맺지만 아이에게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큰 가치를 일깨워준다.

    다섯 번째, 풍부한 언어표현이 담긴 작품이면 더 좋다. 아이에게 책은 가장 훌륭한 국어교사이다. 국내 작가 가운데는 언어표현에 많은 공을 들이는 분이 상당히 많다. 또 비록 외국 작가의 작품일지라도 탁월한 번역을 선사하는 역자들이 많다. 아이보다 먼저 책의 언어미와 모국어구사력을 점검하기 바란다. 예를 들어 이주홍 선생의『메아리』는 아이들의 언어발달과 관련해 내가 자주 추천하는 동화책이다.

    여섯 번째는 부모가 먼저 황순원, 채만식, 마해송, 강소천, 윤석중, 이원수, 정채봉과 같은 아동문학의 산맥들을 잘 살펴보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 역사가 존재하지만, 우리 아동문학의 역사도 매우 크고 다채롭다. 소위 아동문학사라고 하는 특별한 문학사가 엄연히 존재한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들은 정수(精髓)나 백미(白眉)들을 가릴 때가 있다.

    인터넷 속의 정보들에 현혹되지 말고 부모 자신의 독서 기억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부모에게는 자신이 어릴 적 늘 함께 했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목록을 다시 한 번 되짚어 아이에게 숨은 보물창고를 열어줄 책임이 있다.

    일곱 번째, 위인전은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이다. 내 아이에게 좋은 롤모델을 알려주고자 많은 위인전을 읽히는 부모들이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위인전은 좋지 않다.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않은, 평범한 삶 또한 가치가 있다. 또 너무 많은 자극은 아이들의 심성을 무디게 한다. 네온사인이 빛나는 거리에서는 반딧불이의 빛은 초라해진다.

    물론 인생항로의 별을 찾기 위해 아이들에게 위인전은 꼭 필요하다. 우선 내 아이에게 좋은 위인전이란 내 아이가 따르고픈 분야와 미래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또 어려움을 이겨내고 실패를 잘 극복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기술한 것이라야 바람직하다. 위인이라고 해서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않았다는 점이 부각된 책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시중에 지나치게 많은 위인전이 나돌고 있다. 당연히 수준 차가 존재한다. 물량보다는 작품의 질을 따져야 할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여덟 번째는 때로 사회적 이슈를 다룬 책들을 아이에게 권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벌써 세상일을 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어른의 편견이다. 세상의 숱한 현상과 사건들이 아이들에게 긍정적 가치와 심성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나는 『모두가 행복한 지구촌을 위한 가치 사전』(레오 G. 린더,도리스 멘들레비치, 내인생의책)이라는 책을 자주 권한다. 아이들이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데 도움을 줄 만한 책이다. 사회적 삶에 대한 폭넓은 감각과 경험은 아이의 영성과 도덕성을 북돋우는 좋은 자양분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라면 아이에게 세계시민, 사회인의 가치와 이상을 심어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 / 퇴계문학치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