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심리치료] 아이를 바꾸는 책읽기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3.07.26 16:52
  • 책은 아이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 인류 문명사에서 책의 탄생과 전파는 인간의 정신성을 극대치까지 올려놓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인간은 책을 보게 되면서 더 인간다워졌고 더 깊어졌다. 책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뿐만 아니라, 더 높은 지력을 가지도록 이끈다.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는 인류가 책을 발명하기 전에는 거의 모든 인류가 ADHD아동 수준의 주의력을 가졌을 거라고 추측한다. 금세기 들어 인간은 대단히 높은 평균적 지성을 갖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인간의 평균지성은 최대치에 이르렀다.

    100세가 가까워서도 강의를 이어간 대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강의에는 수백 명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생들이 장사진을 이루었고, 정의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는 마이클 센델의 강의에는 수백 명의 하버드 젊은이들이 진리를 깨우치고자 자리를 채우고 있다. 어떻게 불과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이런 고도의 지혜들에 거침없이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모두 책과 독서 덕분이다. 최근 다시 독서를 아이 성장의 주춧돌로 삼는 ‘독서양육’이 붐을 이루고 있다. 영국이나 핀란드 같은 국가는 이런 독서양육이 모범적으로 정착된 사례를 보여준다. 특히 핀란드는 체계적으로 자리 잡은 독서교육과 독서문화로 정평이 나 있다.

    오래전 핀란드 사람들은 자원이 거의 없는 자신들에게 아이만큼 소중한 재산은 없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의미 있는 교육목표를 세웠다. 수십 년간의 실험으로 핀란드가 안착시킨 교육모델은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혁신적이면서도 아동친화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결론은 ‘아이들은 놀이와 독서를 통해 더 훌륭하게 성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핀란드에서는 아이들이 독서와 충분한 놀이를 하도록 국가 차원에서 배려한다. 유치원들의 경우 통상 하루 3시간 정도의 자유놀이를 배려한다. 게다가 핀란드 아이들은 우리처럼 성적에 따른 등수가 매겨지지도 않는다. 그 대신 개인마다 제시된 교육목표를 잘 수행하는가를 알려주는 특별한 성적표가 존재한다. 각자의 교육목표가 다르니 모든 아이의 성적표가 각기 다를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개성적 교육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장 요구되는 활동은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이다. 핀란드가 우리 아이들의 절반 밖에 안 되는 학습량으로 늘 우리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를 능가하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놀이로 자란 아이는 몸이 튼튼하고, 책으로 자란 아이는 마음이 튼튼하다. 아이가 책을 잘 읽고 있느냐는 바람직한 성장의 바로미터이다. 모름지기 아이는 책을 읽어야 하며, 이는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존재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불행하지만 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세상의 많은 아이들에게조차 이는 당위에 가까운 일이다.

    부모는 내 아이의 책 읽기를 늘 관심 갖고 격려해야 한다. 지금 내 아이가 어떻게 책을 대하는지 한 번 살펴보자. 혹시 벌써 아이가 책에 싫증을 내는 것은 아닌지 잘 관찰하기 바란다. 만약 그렇다면 정성과 진심을 다해 이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아직 아이가 책을 좋아하고 책읽기를 즐긴다면 내 아이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책으로 아이를 키우는 일, 이른바 독서양육은 가장 이상적이고 안정적인 양육의 형태이다.

    좋은 책은 아이가 세상을 밝고 희망차게 바라보게 하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순박한 심성을 제공하며, 살며 알아야 할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선사하고, 미래를 꿈꾸는 성장형 사고를 가르친다. 또한 책은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거리며 눈앞에 닥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돕는다. 

    나는 좋은 책들을 매개로 수많은 아이들은 상담하며 책이 가지는 놀라운 치유력을 새삼 확인한다. 상처로 시들었던 마음이 책이라는 양분과 햇살과 수분을 만나면 아이들은 어느새 싱싱하게 빛을 발하며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우리 상식 안의 독서는 사실 독서의 본령을 조금 벗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자들의 독서에 대한 이해나 독서선진국의 독서실태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빛깔을 띤다. 그들에게 책은 지식과 정보의 제공자라기보다는 치유의 대상이고, 마음 성장의 대상이다. 그런 독서에 따라 자란 아이들은 개인적 위기나 운명적인 사건들 앞에서조차 굳건한 모습을 보인다.

    사실 내가 행하는 독서치료의 실체 역시 이 본질적인 독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0세기 최고의 문학자 가운데 한 명인 해럴드 블룸은 독서가 인간의 인생에서 중요한 까닭이 책이 가진 탁월한 인생치유력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살며 수많은 상처와 시련을 겪고 견디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 상처 많은 인생이 세상의 험한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마음의 단련과 회복이 무엇보다도 필요한데, 이를 가장 성실하게 도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책이라는 것이다.  

    마음을 크게 다친 아이들과 상담할 때마다 아이의 주변에 다친 마음을 지켜줄 한 권의 책이 있었다면 하면 아쉬움을 가질 때가 많다. 좋은 책을 디딤돌 삼아 자란 아이들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 책이 아이의 인생을 구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렇게 독서의 본령을 지키는 것을 떠나 책 읽기 자체가 아이들에게 근접하기 어려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아이들의 책읽기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아이의 독서생태계는 점점 어지럽혀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보다는 참고서와 학원에 의지해야 더 좋은 평가와 등수를 받을 수 있다. 사교육과 가까워지고, 성적에 연연할수록 주변에서 잘 하고 있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아이들이 다른 나라 아이보다 두 배나 공부를 하면서도 늘 공부의 질과 깊이가 떨어지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사실 좋은 공부란 지식을 아는 것보다는 세상을 이해하는 눈과 감수성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러하다고 해서 부모가 먼저 ‘우리 현실이 이러하니 독서는 불가하다’ 하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이르러서는 안 될 것이다. 그야말로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이는 아이의 날개를 꺾고, 높이 날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일이다. 오히려 부모라면 현실이 이러할수록 아이의 독서가 더 풍요로워지도록 배려하고 격려해야 한다. 아이가 높이 나는 앨버트로스처럼, 원대한 꿈과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독서의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

    책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인류가 고안한 가장 위대한 아이 성장의 방식이다. 이 지극히 상식적인 성장을 따를수록 우리 아이의 미래는 밝고 넓을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이런 바람과 생각들을 담아 『아이를 바꾸는 책읽기』라는 책을 출간했다. 아이들이 책을 통해 더 긍정적인 성품을 가질 수 있고, 꿈과 희망을 향해 비상할 수 있기를 마음 깊이 기원한다.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 / 퇴계문학치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