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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그램 교수는 부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응답자들이 94%에 이른 것을 바탕으로 과연 그 설문조사대로 결과가 나오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일단 신문에 ‘공포감과 학습력’에 관한 연구조사를 한다며 실험 참가자를 모집하고, 찾아온 이들에게 각각 4달러를 주었다.
참가자들이 맡은 역할은 학생들이 질문에 오답을 낼 때마다 전압을 올려 전기 충격을 가하는 교사 역할이었다. 전압은 최하 5볼트에서 최고 450볼트 강도였고, 실험에 들어가기 전에 전압이 높아질수록 아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주의까지 주었다.
곧이어 실험이 진행되었고, 오답이 속출되었다. 그때마다 참가자들은 전압을 송출하는 버튼을 눌러야 했다. 시간이 흐르고 전압이 올라갈수록 학생들은 고통스러워했다. 물론 그것은 진짜 전기 충격이 아닌 사전에 약속된 연기였다.
그럼에도 무려 65퍼센트의 참가자들은 최고 450볼트의 전압까지 주저 없이 올렸다. 그들은 예일 대학교라는 권위, 제복 입은 사람들의 명령, 4달러를 받았다는 부담감에 복종하고 말았다. 방송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나치의 부당한 요구에 복종했던 군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아가 이 실험은 참가자들에게 치유하기 힘든 정신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다. 상대가 고통 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권위에 복종하고 고통을 가했다는 양심의 가책이 그들을 괴롭혔던 것이다. 나중에는 참가자들에게 별도의 심리치료까지 진행해야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사실 도덕성을 지키는 일은 한 개인의 신념만으로는 어렵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결국 개인과 사회의 양심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해온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온 것이 아니겠는가.
이 실험들이 밝히고자 했던 것은 참가자들 개개인이 정직한지 아닌지에 대한 결론이 아니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른 데 있었다. 도덕성 높은 아이들이 ‘삶의 만족도도 높고, 지능도 높고, 인생을 바라보는 낙관적인 태도 경향이 강하고, 문제해결에 대한 믿음도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결국 연구진은 아이들에게 어려움과 좌절을 극복할 힘을 주려면 ‘아이들의 도덕성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를 들어 네 살 정도 아이들은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타인도 자신과 같은 구도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이들도 일곱 살가량이 되면 ‘사회적 거짓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행동에서 의도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고, 비록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말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어린아이들은 어릴수록 사고가 유연해서 본대로 따라한다. TV를 보든 부모를 보든 마찬가지다. 비디오를 보고 공격적이거나 감성적이거나 무관심한 성향을 따라하는 아이들이 그 증거다. 부모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다. 부모가 도덕적인 행동을 하면 아이들도 도덕성이 고양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실험들에는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매 실험마다 권위에 도전하고 부당한 요구를 거부한 피 실험자들이 나왔다는 점이다. 나아가 잘못된 결정을 한 사람들조차도 실험이 끝나고 나서는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점이다. 즉 부끄러움을 느끼는 양심이 있는 이상 인간은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나갈 희망과 가능성을 가진 존재인 셈이다.
문용린 교수는 “인생의 마무리는 도덕성이 결정한다”고 말한다. 얼마나 돈을 많이 벌고 얼마나 큰 성취를 했느냐가 아닌 ‘얼마나 가치 있고 올바른 삶을 살았느냐’가 우리의 행복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도덕성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정치인, 부유층, 사회 지도자층은 물론이거니와 한 평범한 개인도 개인적·사회적 도덕성을 가져야만 온전한 행복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이 사회의 도덕성에 새 피를 수혈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젊은이들이다.
참조문헌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대구대학교, 초빙교수/ 인재개발연구소, 대표/ 커리어코치협회 부회장 정철상 제공
[정철상의 커리어관리] 우리가 마주치는 불편한 진실, 도덕성
나쁜 사람만 이득 보고 살아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