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심리치료] 명수 엄마는 어떻게 아이를 스스로 공부하게 만들었을까?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2.09.24 18:12
  • - 명수 부모님은 부부가 함께 학원을 운영했다. 6학년 명수는 시험마다 거의 올백을 받는 우등생이었다. 명수의 하루 학습량은 중학생에게도 버거운 수준이지만, 명수는 불평하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이 학원을 운영하는 탓에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2배 가량 길었다.

    하지만 명수에게서는 어떤 학업 스트레스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지식이나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강할뿐더러 학습 열의도 여느 아이보다 높았다. 게다가 무척이나 낙관적이어서 힘든 상황에도 늘 웃음과 긍정감을 잃지 않았다.

    - ADHD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창훈이는 난독증 증상까지 보였다. 자기 학년보다 한참 아래인 동화조차 읽기 힘들어했다. 뜻밖에도 부모님은 고학력에 사회적 명망이 있는 분들이었다. 창훈이의 과잉행동증후군은 전두엽의 미성숙 때문에 빚어지는 일반적인 ADHD와는 달랐다. 심리문제와 스트레스가 주원인이었다.

    여러 명의 과외선생님을 두고도 창훈이는 숙제를 못해가기 일쑤고, 수업을 자주 방해해 선생님들 역시 두 손 두 발을 다 든 상태다. 창훈이 본인도 이런 자신의 문제점을 느끼고 있고, 최근 들어 자존감이 급격히 떨어졌다.

    시차는 있으나 내가 만난, 학습태도가 서로 너무 다른 두 아이의 사례이다. 왜 아이들은 공부를 싫어하기도, 또 좋아하기도 할까? 사실 문제의 원인은 대개 아이 본인이 아니라 부모의 양육태도와 학습 환경에 있다.

    특히 아이들 공부에 있어서는 심리 문제가 절반 이상, 아니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아이의 두뇌프로파일을 아는 일 역시 무척 중요하다. 내 아이를 스스로 공부하는, 혹은 열심히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라면 먼저 학습심리와 뇌과학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체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명수는 논리수학 지능과 언어지능이 뛰어났지만, 공부를 스스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지능 때문만은 아니었다. 명수의 엄마는 칭찬의 달인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함박웃음 지으며 아이가 성취한 일에 칭찬을 아낌없이 하는 부모였다. 다만 아무 근거 없이 아이의 기분을 우쭐되게 하는 공수표 칭찬은 하지 않는 부모였다.

    칭찬은 아이를 망칠 수도, 멋지게 자라게 할 수도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아이의 노력이 아닌, 지능이나 재능을 칭찬하면 오히려 아이를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많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똑똑하다’는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자신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과제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즉, 자신이 똑똑하다는 믿음을 깨뜨릴 수 있는 위험한 과제를 시도하지 않았다. 평소 똑똑하다는 칭찬을 자주 들어온 아이들이 왜 공부를 미루거나 과제 앞에서 주춤거리는지 알 수 있는 연구결과이다. 칭찬은 아이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그 노력과 열성에 한정해 해주어야 한다.

    명수를 면담하며 발견한, 또 하나의 미덕은 아이의 실수에 대처하는 부모님의 관용적 태도이다. 문제를 틀리거나 백점을 맞지 못해도 명수 아빠는 화내는 일이 없었다. 나 역시 명수 아빠가 입버릇처럼 하는 ‘괜찮아, 사람은 다 실수할 때가 있지’라는 말을 명수에게 하는 것을 직접 들은 바 있다. 하버드대 신입생을 상대로 부모에게 가장 자주 들은 말이 무엇인지 알아봤더니 ‘괜찮아’라는 위로와 관용의 말이었다고 한다.

    창훈이의 과잉행동 증상은 크게는 자신이 겪어온, 그릇된 교육 이력에 기인했다. 창훈이의 증상이 나타난 지는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다소 느리긴 했지만, 부모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군말 없이 따르는 아이였다고 한다. 

    창훈이는 과학습, 선행학습의 폐해를 알게 해주는 전형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기주도 학습 습관을 길러주지 않았을 때 아이에게 생기는 문제점도 여실히 드러냈다. 3살 무렵 우리말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창훈이는 영어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 7-8시간 정도를 영어유치원에서 보내곤 했는데, 언어지능이 뛰어나지 않은 창훈이에게 이런 환경은 무척 부담이 가는 일이었다. 또 영어유치원에서 창훈이가 주로 했던 것은, 본인의 기억으로는 즐겁게 영어를 배우는 일이 아니라, 주로 매일매일 힘겨운 과제를 해내는 것과 단어외우기였다고 한다.

    6학년이 된 창훈이는 여전히 한글을 구사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한글로 된 책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영어책 역시 그 또래의 외국아이들이 읽는 것들보다는 한참 수준이 떨어지는 책을 읽고 있었다. 조금 어려운 내용이 나오는 영어책은 한글동화처럼 기피했다. 안타깝지만, 영어, 국어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언어난민이 돼버린 것이다. 

    게다가 현재 다니는 사립초등학교는 학습수준이 높아, 창훈이가 뒤처지지 않으려면 매일 과중한 학습을 감당해야 했다. 게다가 창훈 엄마는 아이의 뒤처진 수학실력을 높여주겠다는 마음에 수학 선행학습을 벌써 2년째 시키고 있다.

    더욱이 안타까웠던 것은 엄마가 창훈이의 다중지능 프로파일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창훈이는 신체지능이 남달리 뛰어난 아이이다. 가장 즐기는 것도, 가장 잘하는 것도 운동이지만, 창훈이의 주간 스케줄에는 신체활동이나 운동코칭이 가물에 콩 나는 수준이었다.

    한 달에 몇 번 나가는 골프라운딩과 승마가 신체활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잘하지 못하는 일에 온 힘을 쏟다보니 아이는 자존감도 높이기 어려웠고, 공부 앞에 항상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창훈이의 경우 공부혐오증이 ADHD로 나타난 사례였다. 

    치료를 시작하며 창훈이는 자신의 다중지능 프로파일에 따라 신체활동량을 대폭 늘렸다. 수학이나 국어, 영어의 학습 수준과 양도 새롭게 조정했다. 특히 창훈이가 가장 하고 싶어했던 방과후 축구연습을 매일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몰입해서 운동하는 시간이 늘면서 창훈이의 과잉행동 증상은 급격히 호전되었고, 학업 수행능력도 빨리 회복되었다. 숙제를 미처 못해가는 횟수도 현저하게 줄었다.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를 바란다면 엄마가 먼저 아이의 심리와 뇌를 이해하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아래는 엄마들이 놓쳐서는 안 될 아이의 공부심리, 뇌과학 원리 몇 가지를 추려보았다.
     
    - 바른 학습태도를 심어주려면 노력에 대한 정확한 칭찬과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질적 보상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으니, 심리적 보상, 시간활용 자유, 여가 제공과 같은 건강한 보상기제를 마련한다.

    - 아이의 두뇌프로파일을 안다. 심층적인 다중지능 검사를 꼭 받고, 폭넓은 체험을 통해 아이가 몰입 취미와 스트레스 관리방법을 체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몰입 취미를 가진 아이의 학업 열의와 능력은 보통 어린이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

    - 전반적인 학습 습관과 학습 수준, 학습량을 아이의 특성과 능력에 맞게 조정한다. 특히 지루하지 않은 반복학습(복습) 훈련이 꼭 필요하며, 항상 자신이 성취감을 느끼고 감당할 수 있는 적정 학습량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아이가 학습 내용을 이해하며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인간의 뇌는 이해하지 못한 내용은 기억하기 어려워한다. 내용 이해를 동반하지 않는 반복 학습은 무용지물이며, 배운 지식을 이해하더라도 복습을 통해 장기기억으로 저장하지 않으면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 된다.

    - 아이마다 기질에 맞는 학습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이가 좌뇌 우세형인지, 우뇌 우세형인지, 시각적 학습을 즐기는지, 청각적 학습을 즐기는지 등에 따라 학습 방식을 재구성해야 한다. 또 기질에 맞는 학습법도 중요하지만, 기억술이나 마인드맵 그리기와 같은 학습법 자체의 이해와 숙달도 무척 중요하다. 최근에는 과목마다 모든 아이들에게 공통 적용되는 학습법이 있다는 이론이 주목받고 있다.

    - 긍정적인 덕성을 길러준다. 도덕성이 높은 아이, 정서지능이 높은 아이들의 학업성취도가 더 높다. IQ보다 정서지능이 학습능력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똑똑한 아이보다는 착실한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어릴 적부터 만족지연 능력이나, 끈기와 노력의 성격강점과 같은 공부덕성을 길러주는 양육이 필요하다.

    -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수면의 질을 잘 관리하자.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은 학습능력 저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이가 나쁜 스트레스를 덜 받을수록, 충분한 수면을 취할수록 공부에 임하는 자세나 컨디션은 좋아진다. 아이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법을 익히도록 돕고, 적정 수면시간을 유지하는 생활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 독서와 체험을 통해 학습 동기를 진작시킨다. 최근 아이들에게서 가장 부족한 점이 힘든 학습과정을 이겨낼 만한 강한 내적 학습동기이다. 이는 평소 부모의 가치교육이나 진취적인 성향을 키워줄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학습동기 유발 독서를 통해 꾸준히 길러주어야 획득할 수 있는 덕성이다. 아이가 미래의 꿈과 직업을 구체적으로 세우면 세울수록 학습열의도 높아진다. 

    - 중독은 뇌를 망친다. 최근 아이들의 게임이나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하다. 담배와 술 같이 직접적으로 뇌에 손상을 주는 중독물질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독은 뇌의 회로를 편파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건강한 두뇌활동을 막는다. 지나치게 오래 시각적인 자극만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이다. 아이들이 TV, 컴퓨터, 스마트폰을 보는 스크린타임을 하루 1시간 이내로 통제하라.

    - 최근 아이들의 두뇌영양 공급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소아비만, 성조숙증, 영양결핍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의 몸을 망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뇌의 바른 성장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소아비만 어린이의 경우 수학 성적이 떨어지고, 대학 진학률도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 아이의 두뇌에 맞는, 심리적으로 평안한 학습환경을 만들어준다. 가령 간접조명에 초록색 벽지를 한 방에서 뇌는 보다 활성화된다. 앉는 자세에 따라 집중력이나 학습시간이 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 우리 뇌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스토리텔링 학습법에 주목하라. 어려운 수학이나 과학도 이야기를 덧입히거나 이야기로 풀어내면 더 높은 이해와 장기 기억에 도움이 된다.

    헬로닥터브레인 연구소 소장/ 서울ND의원 우리아이 몸·맘·뇌 성장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