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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서 컨설팅을 위한 미팅을 하려는데 마땅한 공간이 떠오르지 않았다. 젊은 직원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민들레영토’를 추천했다.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참에 잘됐다. 한번 가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로 예약하고 약속 날짜에 사람들을 민들레영토에서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십 수 명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숍 형태의 미팅 공간이라고 들었는데, ‘줄까지 서서 기다리고 있다니. 어리석은 시간 낭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멋스런 입구가 마음에 들긴 했다. 공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늑함과 고풍스러우면서도 밝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더불어 유럽풍의 옷을 입고 양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아주는 종업원들을 보면서 마치 동화 속에 빠져든 느낌마저 들었다. 그제야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이유를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즐겁게 사람들과 미팅을 한 후에 민들레영토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러던 차에 민들레 영토의 대표인 지승룡 소장의 강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즉각 세미나를 신청하고 그 자리에 참석했다.
"안녕하세요. 다방 마담 지승룡입니다." 라고 해맑게 자신을 낮춰 소개하면서 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는 원래 목회자였다. 성직자의 길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이혼을 한 후에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졌다. 결국 목회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그는 좌절과 방황으로 헤맨다.
생활도 궁핍해져 쪼들리자, 이젠 남을 위로해줄 처지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도움을 구해야하는 절박한 처지가 되었다며 신세를 한탄해야만 했다. 그때 그가 발견한 탈출로는 책이었다. 그렇게 3년 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생활하면서 무려 2,000여 권의 책을 봤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일을 구상하느라 인사동의 한 카페를 찾았다. 자리만 차지하고 오래 앉아 있다고 해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나와야만 했던 적이 있었다.
이때 지승룡 소장은 ‘외로운 도시인들을 위해 고향의 집과 같은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도시 속 휴식공간을 만들어야겠다.’라는 비전을 세웠다고 한다.
그는 “가장 안 좋을 때가, 가장 좋을 때다.”라고 말한다. 정말 공감 가는 말이다. 어려울수록 더 좋은 기회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지승룡 소장은 시종일관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유머도 있고, 열정도 있고 그리고 가슴을 흔드는 감성과 감동도 있었다. 다음은 그가 들려준 우스개 같은 에피소드다.
지소장은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손님들이 종종 대화 도중에 자신의 얼굴에 난 점에 관심을 보여 말이 끊기곤 하자 점을 뽑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무려 113개의 점을 뽑았는데 그는 얼굴로 아기를 낳은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살이 타는 듯했지만 고객을 생각하면서 참았다고 한다. 고객을 위해서 전기불로 얼굴을 지진 사람은 자신밖에 없을 것이라는 유머에 청중들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승룡 소장은 최근에 많은 CEO들이 고객만족 경영을 중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라, 좋은 현상이긴 하지만 실제적인 고객감동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더 마케팅(Mother marketing)’의 배경을 들려줬다.
처음에 그가 목회 일을 접고 다방 같은 것을 운영한다고 하니 그의 어머니는 상심이 컸다 한다. 그래도 어머니는 내색하지 않았다. 하루는 직접 밥상을 차려 머리에 이고 가게로까지 찾아왔다. 거동도 불편하신 노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먼 길까지 찾아왔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에 메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가져온 그 밥을 먹으면 어머니가 다시 찾아올 것 같아서 밥 먹는 것을 거절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다시 식사를 권했다. 그는 좀 더 매몰차게 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도대체, 왜 이런 것을 가져오셨어요. 다시 가져오지 마세요. 여긴 젊은 사람들 많은 곳이에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몇 번의 실랑이가 벌어지면서 끝내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다. 불효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그는 가슴이 미어졌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승룡아, 그래도 딱 한 숟가락만 먹어.”라고 말했다. 지소장은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눈시울을 적시며 밥을 다 먹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대하듯 자신도 고객에게 그만한 정성을 들였는가!’ 하는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만일 보통 사람이 그토록 거절당했다면 누구든 모욕으로 느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상대를 원수로 여기고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떤가. 어머니의 절대적 사랑에 비춰본다면 요즘 기업들이 언급하는 고객감동 서비스 수준은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의 사랑이나 관계 역시 상대적 관점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강연을 듣는 내내 ‘문화’와 ‘감성’이라는 두 코드가 머리에 맴돌았다. 그는 처음에 ‘도시 속에 문화 공간 창조’라는 비전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젠 ‘마더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 어머니의 감성을 살리려는 아름다운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는 리더로 생각됐다.
역경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당신은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토대를 이미 마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구대학교, 초빙교수/ 인재개발연구소, 대표/ 커리어코치협회 부회장 정철상 제공
[정철상의 커리어관리] 외로운 도시인의 문화전도사로 우뚝 선 지승룡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