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책] 스마트한 세상! 가슴을 열어 주세요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2.06.11 17:17
  • 벌써 십 년도 더 된 이야기네요. 1999년 말, 2000년이 되면 세상이 망한다고들 얘기하며, 밀레니엄 버그를 걱정하고 21세기는 영영 오지 않을 듯 종말론을 떠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소란스러움을 비웃기나 한 듯 세상은 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편리하고 ‘스마트’한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2012년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세상은 정말로 더 좋아진 듯, 가상현실에서만 가능했던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만나고, 만나기조차 힘들었던 유명 인사들과 트위터에서 대화도 나누고, 그들의 일상을 함께할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We are the world인 세상인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좋은 세상에 태어나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야 할 아이들은 세상을 저버리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현란하게 스마트하게 무장된 세상에서, 하루에도 수십 명 수백 명과 연결된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아이들은 자기의 아픈 마음과 그 어찌할 수 없는 안쓰러움을 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할 공간이 많은데도 정작, 즐겁게 밥 먹고 얘기 나눌 식탁과 서로의 목소리가 담긴 투덜거림을 담아낼 곳이 없네요. 뿅뿅뿅 날아다니는 아이콘 대신, 삭제시켜 버리면 그만인 얄팍한 위로와 공감 대신, 한 꺼풀 더 벗겨 내 서로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우리 마음의 창을 두드려 줄 세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 가시고백(비룡소)
    ▲ 가시고백(비룡소)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로 십 대의 마음뿐만 아니라 어른 세대까지 사로잡은 작가 김려령의 소설입니다. 『가시고백』 은 제목에서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인데요, ‘가시고백’은 바로 우리 마음속 외로움, 결핍, 빼내지 않으면 곪아버리는, 그런 고백입니다.

    고백이란 단어는 자백이나, 독백과는 또 다르지요. 고백은 혼자서만 성립되지 않지요. 믿어 주고, 들어 주고, 받아 주는 이가 있을 때, 비로소 그 고백은 받아 줄 그 누군가에게 자연스레 성립됩니다.

    일곱 살 이후로 도둑질을 해온 주인공 소년의 “나는 도둑이다.”라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해일의 일기 속 ‘독백’이 ‘고백’으로 나아가기까지의 여정입니다. 작가는 누군가가 그런 고백을 뽑아서 건넬 때, 그것을 뿌리치는 대신, 고백 속에 담긴, 인간이 끝내 지켜야 할 염치와 순수성을 봐주라고 얘기합니다.

    이 소설은 마치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들어선 어느 친구네 집에서 받는 뜻밖의 따듯한 밥상처럼, 소박하면서도 푸짐하기 그지없는 온기가 이야기에 가득합니다.

  • 개 같은 날은 없다(비룡소)
    ▲ 개 같은 날은 없다(비룡소)
    제목이 약간은 과격한 느낌을 주는 『개 같은 날은 없다』는 『키싱 마이 라이프』,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내 사랑 사북』,『킬리만자로에서, 안녕』과 같은 청소년 소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옥수 작가의 신작입니다.

    제목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오히려 속이 시원해지는 카타르시스마저 느낄 수 있는데요, 이 소설은 형제남매 간의 폭력을 소재로, 폭력으로 얼룩진 가족 내에 잠재된 진한 눈물을 일깨우는 이야기입니다. 눈물 없는 가족은 없지요.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아픔이 있지만 문제는 가족이기에,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거예요.

    형제간의 폭력은 가족 내의 응어리로 남게 되고 그 응어리는 학교로 이어져 학교 폭력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멍든 모습은 뭉크의 그림 『절규』를 새삼 떠오르게 합니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서로 필요한 건 교감交感이라고 합니다. 공감이 그저 머리로만 끄덕끄덕거리는 행위라면, 교감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눈빛을 나누어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애니멀커뮤니케이터란 독특한 소재가 등장하는 소설 안에는 여러 가지 모습의 교감이 등장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간에 이루어지는 세대 간의 교감, 인간과 동물 간에 일어나는 교감,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감, 의사와 환자 간의 교감,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자기의 과거와 현재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감이 가장 의미 있는 교감이 아닐까요.

  • 명탐정의 아들(비룡소)
    ▲ 명탐정의 아들(비룡소)
    세 번째 함께 나누고픈 책 역시, 누군가에게 손길을 건네는 책입니다. 블루픽션상 수상작 『그냥, 컬링』의 작가 최상희의 신작인데요,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둔 주인공 소년 고기왕이 의뢰인의 사건을 맡아 해결해 나가는 가운데 우리 삶의 어두운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는 추리 형식의 소설이에요.

    아름답기만 한 세상은 지독히도 어두운 터널을 숨기고 있지요. 하지만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라는 격언도 있습니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면 밝은 빛도 함께 할 수 있지요.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터벅터벅 걸어서 그 터널을 나가야 하는 일이지요.

    이 책은 추리 소설의 재미, 시종일관 유머가 넘치는 이야기의 진행, 그 속에 담긴 삶의 진실, 그리고 혼자만의 발걸음이 아님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토닥임이 어우러져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을 이끌어냅니다. “거기에 있어. 내가 갈게.” 너무나 쉽지만 건네기 힘든 말, 오늘은 입속에서 한번 되뇌어 보면 좋을 듯합니다. 

    스마트기기에서 잠시 눈을 떼서 다른 사람의 눈을 한번 보면 어떨까요?            

    비룡소 편집부장 박지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