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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서울시와 경기도에 거주하는 초등 1년생과 4년생은 일제히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와 우울증 등 정신건강 검사를 받게 된다. 어린이 정신질환 환자를 미리 진단하고 치료해 자살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마련된 조치다.
실제로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어린이는 해마다 느는 추세다. 어린이 정신질환은 최근 급증하는 청소년 자살률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소년조선일보는 창간 74주년을 맞아 ‘마음이 아픈 어린이’를 진단하는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3대 어린이 정신질환’으로 불리는 ADHD·우울증·틱장애(Tic disorder)를 질환별로 꼼꼼히 살피고 치료법도 알아보는 지면이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 ADHD 편이다.
초등 2년생 승준이(가명)는 툭하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팀별 학습 시간에도 반 친구들은 아무도 승준이와 같은 조에 배정되려고 하지 않았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는 승준이와 함께 있는 게 불편했기 때문이다. 승준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 외엔 좀처럼 집중하지 못해 실수도 잦았다. 결국 승준이는 늘 혼자 조별 활동을 소화해야 했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내준 과제도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고 번번이 남아서 하는 바람에 ‘퇴근조’란 별명까지 얻었다. 승준이 엄마는 고민 끝에 아들과 병원을 찾았다가 ‘ADHD’란 진단을 받았다. -
최근 승준이처럼 ADHD로 병원을 찾는 어린이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최근 6년간(2003~2009년) ADHD 환자는 5~9세 그룹에서 113%, 10~14세 그룹에서 376% 각각 증가했다. 환자를 나이별로 분석한 결과, 5~9세 그룹(54.7%)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도 ADHD 관련 질문이 빗발치고 있다. “아이가 집중력이 떨어지고 주의가 산만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 병원을 찾았더니 ADHD라고 합니다. ADHD가 아주 나쁜 병인가요?”(llan***), “제 딸이 여덟 살인데 무척 산만하고 감정 변화가 큽니다.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거나 따돌림받기도 해 속상합니다. ADHD로 의심되는데 어떤 치료가 도움이 될까요?”(비공개) 등 자녀를 걱정하는 학부모의 글이 대부분이다.
◆‘산만하고 과격한 행동=ADHD’는 잘못된 공식
ADHD 증상은 ‘주의산만·과잉행동·충동성’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 셋 중 하나의 증상만 나타나도 ADHD라고 볼 수 있다. 주의산만형 ADHD 환자는 상대방의 얘길 끝까지 못 듣거나 해야 할 일을 금세 까먹는다. 가만히 앉아 있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자기 차례를 못 기다리는 경우,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경우는 각각 과잉행동형과 충동형 ADHD에 해당한다.
김봉수 ADHD 학습클리닉 원장은 “행동이 산만한 건 아닌데 주의력이 떨어지는 어린이도 진단을 해보면 ADHD 환자인 경우가 많으므로 학부모의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TV 등 방송매체에서 ADHD의 대표적 유형으로 행동이 산만하거나 과격한 아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곤 합니다. 하지만 조용하고 소극적이면서 집중력이 또래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어린이도 ADHD 환자일 수 있어요. 실제로 우리 병원을 찾은 초등 3년생 재훈이(가명)는 행동이 산만하진 않았지만 매사에 의욕이 없고 공부할 때 집중하지 못해 짜증을 자주 부리던 친구였어요. 진단 결과, ADHD였죠. ADHD를 방치(放置·내버려둠)하면 훗날 어른이 돼서도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등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부모와 선생님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뇌기능 장애’가 원인 약물+교육 병행해야
ADHD가 생기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뇌기능 장애’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박형배 하이퍼포먼스 브레인 연구소장(정신과 전문의)은 “ADHD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이 전두엽(前頭葉·뇌의 앞부분)에 원활하게 전달되지 않아 생기는 병”이라고 말했다. 박 소장은 “전두엽은 두뇌의 CEO(최고경영자) 역할을 도맡아 하는 곳으로 계획·예측·집중 등 ‘실행 기능’을 담당하는데, (신경전달물질이 전달되지 않아) 이곳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자연히 해당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애를 일으킨 뇌기능을 정상화하려면 약물치료가 기본이다. 하지만 약물치료 못지않게 중요한 게 인지행동 치료다. 조수철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약물치료로 ADHD 증상의 약 80%는 회복시킬 수 있지만 나머지는 가족과 함께 진행하는 학습치료·놀이치료·사회성치료 등으로 보완해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오인수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 교수는 “가장 중요한 건 약을 먹으면서 어떤 교육적 치료를 함께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어린이 ADHD 환자 캠프 참가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한 적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진짜 약과 가짜 약을 섞어주곤 교육을 통해 행동이 얼마나 바뀌는지 분석했죠. 그런데 가짜 약을 준 어린이도 캠프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통해 증상이 점차 나아졌어요. ‘교육을 통한 ADHD 치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결과죠.”
ADHD, 이런 치료 방법도 있어요!
― 뉴로피드백 -
ADHD 치료법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게 ‘뉴로피드백’이다. 여러 개의 센서를 신체 각 부위에 연결해 뇌파를 잡은 후, ‘집중하는 뇌파’가 나올 때 우주선이 앞으로 움직이도록 만든 게임 형태의 치료다. 졸음을 일으키는 뇌파나 긴장하는 뇌파가 나올 땐 우주선이 움직이지 않는다. 놀이 방식을 적용해 어린이들이 거부감 없이 치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게 특징.
― 역할놀이 -
인지행동 치료 중 하나인 역할놀이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손꼽힌다. ADHD 장애로 친구들과 자주 다투는 어린이들이 친구의 입장에 서보는 활동이다. ADHD 증상을 겪는 어린이들이 실제 학교 현장에서 친구들과 겪을 수 있는 상황을 돌아보며 해결법을 찾아나가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 하루 일과법 -
학부모가 집에서 간단히 실천할 수 있는 치료법도 있다. ADHD 증상을 보이는 자녀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했을 경우 ‘타임아웃의자’에 앉혀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 하루 일과를 촘촘히 짠 후 하나씩 실천하도록 도와주는 ‘하루일과법’이 대표적 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치료 도중 ‘꾸중’보다 ‘칭찬’을 자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봉수 원장은 “어린이 ADHD 환자는 학교에서나 집에서 자주 혼이 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돼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잘하는 친구들과 섣불리 비교하지 말고 아이 자체를 한 달 전과 후 등으로 비교해 칭찬할거리를 찾아주세요. 아이가 저지른 사소한 잘못은 모른 척 넘어가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창간 특별기획] "산만하고 집중력 약한 우리 아이··· 혹시?"
김지혜 기자
april0906@chosun.com
'마음'이 아픈 어린이들 - ①ADHD
어린이 ADHD 환자 6년새 245%폭증
주의산만·충동성·과잉행동 주요 증상
주의력이 또래보다 떨어져도 의심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