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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친구들, 만나서 정말 반가워. 내가 누구냐고? 아차, 인사가 늦었어. 난 소년조선일보라고 해. 오늘은 내가 태어난 지 74주년이 되는 날이야. 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세상에 나왔단다. 운 좋게도 너희의 사랑과 관심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어린이신문인 나의 일흔네 번째 생일을 맞아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을 너희에게 소개할까 해. 귀 기울여 들어봐.
내가 처음으로 세상을 구경한 날은 1936년 1월 13일이야. 당시만 해도 우리 민족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울분(鬱憤·답답하고 분한 마음)을 터뜨리고 있었지. 하지만 처음부터 지금처럼 온전한 하나의 매체였던 건 아냐. 석간(夕刊·매일 저녁에 발행되는 신문)이었던 엄마(조선일보)의 월요일자 3면을 통해 어린이 친구들을 만났거든.
내가 엄마 품을 벗어난 건 그 이듬해인 1937년 1월 10일이었어. 이날이 바로 내 ‘정식 생일’인 셈이지. 지금의 ‘조선경제’나 ‘맛있는공부’처럼 섹션 형태로 제작됐던 당시의 난 4개 면짜리 타블로이드판으로 첫선을 보였어. 타블로이드판이 뭐냐고? 일반 신문의 딱 절반 만한 크기를 말해. 독특한 생김새 덕분에 ‘우리나라 언론 사상 최초의 특수지’로 기록되는 영광도 얻었단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어. 우리 민족을 탄압하려는 일제의 움직임이 갈수록 심해졌거든. 그 첫 번째 수단이 신문이었고 말이야. 결국 1940년 8월 10일, 엄마가 강제로 폐간(廢刊·신문이나 잡지 따위의 간행을 폐지함)되면서 덩달아 나도 사라져버렸어. 하지만 폐간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도 난 손기정 선수(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의 화보를 통해 어린이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노력했지.
그로부터 15년 후인 1955년 1월 23일, 난 다시 꿈에 그리던 어린이들 곁으로 갈 수 있었어. 하지만 이때도 엄마의 부록 형태를 벗어나진 못했지. 내가 엄마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건 1965년 2월 21일이야. ‘어머니도 함께 보는 새 어린이 신문’이란 구호로 매일 2개 면에 걸쳐 다양한 뉴스를 소개했단다.
그로부터 수많은 시간이 흘러 이 순간까지 온 거야. 오늘 너희가 받아든 신문은 놀라지 마. 무려 1만4122번째 호거든! 어때, 대단하지? 어쩌면 내 역사는 우리나라의 역사이기도 해. 앞으로도 난 너희 곁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어린이 신문’으로 기억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거야. 앞으로도 내 활약을 응원해주겠다고 약속해줘. 꼭이야!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한 가장 오래된 '어린이 신문'
글=김명교 기자
kmg8585@chosun.com
그래픽으로 보는 소년조선일보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