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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댈 보면 얼굴이 빨개지고/그댈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지난달 22일 서울 예일뮤직아카데미(양천구 신정5동)의 녹음실. 인기 밴드 ‘씨앤블루(CNBLUE)’의 곡 ‘사랑빛’ 반주가 헤드폰을 통해 흘러나오자, 박상현 군(서울 영도초 6년)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첫 소절이 시작되자 왼손을 가슴에 올리며 노래를 부르는 자세가 가수 저리 가라다. 아직 변성기(變聲期·사춘기에 성대에 변화가 일어나 목소리가 변하는 시기)가 오지 않아 목소리는 가늘고 높은 편이다.
◆‘슈스케2’ 성공 이후 학부모 문의 전화 잦아져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 마음 반, 가수가 되고 싶은 마음 반”이란 박 군은 한 달 전부터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이곳을 찾아 한 시간씩 개인·그룹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밤마다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 혼이 날 만큼 노래가 좋아 시작한 학원 생활이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점도 있다. “학원에 다니기 전엔 노래를 잘 따라 부르기만 하면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호흡·박자·발음 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엄청 많고 복잡했어요. 혼자 노래할 때랑은 전혀 다르던 걸요.”
지난 2009년과 2010년 한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된 가수 발굴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시리즈가 큰 성공을 거둔 이후 ‘미래의 슈퍼스타K’를 꿈꾸는 어린이가 늘고 있다. 특히 최근엔 가수 데뷔 나이가 점점 어려지면서 초등생 때부터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우려는 학생이 많다.
박준수 예일뮤직아카데미 대표는 “공부 외에 다른 진로를 염두에 둔 부모님의 문의 전화가 잦은 편”이라며 “원래 초등생은 잘 받지 않는데 상현이는 노래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해 예외적으로 뽑은 경우”라고 전했다. -
◆변성기 전 무리한 노래 연습은 ‘약’보다 ‘독’
보컬 트레이닝 학원은 대개 한 차례 오디션을 통해 수강생을 선발해 주 2~3회씩 개인·그룹별로 수업을 진행한다. 월평균 수강료는 30만~50만원 선. 예술고등학교나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실기반은 따로 있어 초등생이 들어갈 수 있는 건 대부분 취미반이다.
1차 관문인 오디션은 가수 지망생의 선천적 능력을 확인하는 절차다. 박은정 클라이믹스 아카데미 실장은 “좋은 노래 실력은 타고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오디션 지원자는 아직 본격적으로 노래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어서 부족한 점이 많아요. 당장 노래를 잘 못 부르더라도 타고난 음색이나 음정을 잡는 능력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죠. 직업으로서의 가수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주된 평가 대상이에요.”
보컬 트레이닝 과정은 나이에 관계없이 △조성·음계 등 음악이론 △발성과 발음 △호흡 △실기 순(順)으로 이뤄진다. 초등 수강생의 최대 고비는 아무래도 변성기다. 물론 변성기 전에 노래를 시작하더라도 음악을 통해 감정 표현에 일찍 눈떠 감수성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남학생의 경우, 변성기 이후 목소리 높이가 한 옥타브 이상 낮아질 수 있어 이전까지의 훈련이 수포로 돌아갈 위험이 있다. 또한 개인에 따라 변성기가 짧으면 6개월에서 길면 2~3년까지 지속되기도 하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허각·존박 등 ‘슈퍼스타K2’가 배출한 스타들의 보컬 트레이닝을 맡았던 가수 박선주 씨는 “초등생 시기의 성대는 완전히 자란 상태가 아니므로 변성기 전의 지나친 노래 연습은 금물”이라고 조언했다. “목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 발성과 호흡 위주로 연습하세요. 당장 노래를 잘하려고 하기보다 다양한 노래를 들으며 음감(音感·높이·강도·길이 등 음의 구성 요소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게 효과적이에요. 많이 따라 불러보며 스스로의 한계를 점검한 후, 그 부분을 보컬 트레이너와 상의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학부모 역할 중요 목표 정하고 기다려줘야
전문가들은 “어릴수록 연예인을 선망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노래를 배우기 전 선택에 특히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윤종 보컬 트레이너는 “가장 먼저 할 일은 본인이 원하는 게 연예인인지, 가수인지 구분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부분의 수강생이 부모님 앞에선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막상 제 앞에선 기본 실력을 갖추기도 전에 ‘(대중에게 관심받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털어놓는 아이들이 적지 않아요.”
김해연 서울 신학초등학교 음악 선생님은 “요즘은 초등생도 노래방 문화에 익숙해져 있고 학부모님 역시 자녀가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걸 지원하는 분위기”라면서도 “실제로 수업을 해보면 가창력이나 성량 등을 감안해 가수가 될 만한 학생은 전교를 통틀어 한두 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자녀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선 학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특히 노래 공부를 시작한 아이에게 공부를 닦달하거나 일찌감치 자녀의 진로를 결정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녀가 원해서 노래 공부를 시킬 땐 명확한 연습 기간과 목표를 정해 구체적으로 약속하는 게 좋다.
6개월 기한(期限·미리 한정해 놓은 시기)으로 초등 6년생 딸을 보컬 트레이닝 학원에 보내고 있는 이미희 씨(가명)는 “노래를 배우게 하느라 아이를 영어·수학 학원에 보낼 시간이 없지만 후회하진 않는다”며 “공부 부담이 적은 초등생 시기에 아이가 좋아하는 걸 시켜 보니 자신감이 느는 등 오히려 긍정적 효과가 크더라”고 귀띔했다. “나중에 기회가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잖아요. 비록 본인이 원하는 가수가 못 돼도 중학교 입학 전에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러려면 엄마인 저부터 맘을 편안하게 가져야죠.”
다양한 노래 들으며 감수성을 키워라
김정욱 인턴기자
uga@chosun.com
미래의 '슈퍼스타K'를 꿈꾼다면 - 전문가 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