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폭력·욕설… "TV는 부모님과 함께 보세요"
성서호 인턴기자 bebigger@chosun.com
기사입력 2010.12.29 15:58

TV, 15세 등급도 '위험수위'… 건전하게 시청하는 법은?

  • 초등 2년생 아들을 둔 김은정 씨(37세)는 요즘 부쩍 TV 앞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횟수가 늘었다. 온 가족이 모여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지나치게 사실적인 여주인공의 샤워 장면, 혹은 흉기와 핏자국으로 얼룩진 등장 인물의 싸움 장면이 나올 때마다 서둘러 아들의 눈을 가리곤 한다. 김 씨는 “요즘엔 TV 프로그램에 욕설과 폭력 장면이 너무 자주 등장해 아이와 함께 시청하기가 곤란하다”며 “맞벌이 가정이어서 아이 혼자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아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TV 화면 오른쪽 위 숫자 ‘12’는 뭘 의미할까?

    2010년 12월 현재 뉴스, 다큐멘터리, 공익성 프로그램을 제외한 모든 TV 프로그램은 방송프로그램 등급표시제(이하 ‘등급표시제’)에 따라 의무적으로 시청등급을 표시하도록 돼 있다.

    등급 표시 대상은 2001년 이전까지만 해도 영화와 성인 프로그램 등 일부에 불과했지만 2002년 드라마와 만화, 뮤직비디오로 확대됐다. 지금은 오락, 예능, 교양, 시트콤, (격투기·프로레슬링 같은) 폭력적 스포츠 프로그램까지로 범위가 늘어났다. 어린이와 청소년 시청자에게 끼칠 해로운 영향을 고려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각 방송사는 프로그램별 등급을 방영 시작 전과 중간, 화면 오른쪽 윗부분에 7·12·15·19 등의 숫자로 표기하고 있다. 각 숫자가 가리키는 건 시청 가능한 최소 연령이다.

    ‘7세 이상 시청가’ 등급에 해당하는 요건은 △주제와 내용에 7세 미만의 어린이에게 정신적·육체적으로 유해한 표현이 있어 보호자의 시청지도가 필요한 것 △폭력 장면이 가상의 세계에서 다뤄지더라도 그 방법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것 △일상적 애정 표현을 넘어서는 신체 노출 등의 장면이 없는 것 △어린이의 바른 언어습관 형성을 방해할 수 있는 은어(隱語·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특정 조직의 구성원들끼리만 사용하는 말), 비속어, 유행어 등이 사용되지 않은 것 등이다.

  • 일러스트=나소연 인턴기자 sywithone@chosun.com
    ▲ 일러스트=나소연 인턴기자 sywithone@chosun.com
    ◆‘15세 관람가’ 드라마 폭력·선정성 ‘위험수위’

    그렇다면 실제 TV 프로그램들은 등급표시제를 잘 지키고 있을까? 사단법인 밝은청소년은 지난 22일 여성가족부의 지원으로 실시한 ‘2010 방송물 모니터링’(8월 21일~11월 28일) 결과를 발표했다. 집중 모니터 대상은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 방송사가 제작하는 TV 드라마, 영화, 예능오락, 음악방송. 대부분 어린이와 청소년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들이었다.

    문제는 심각했다. 상당수의 프로그램이 폭력적이고 선정(煽情·이성의 신체에 대해 자극을 일으킴)적인 장면을 포함하고 있었다. ‘15세 이상 시청가’ 등급으로 방영되는 드라마 중 일부에선 등급과 어울리지 않는 내용과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모니터링 기간 중 방영된 드라마의 폭력성과 선정성 지수를 살펴보면 그 결과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폭력성 지수의 경우, ‘비폭력적(0점)’부터 ‘매우 폭력적(3점)’까지 4단계로 평가한 결과 △욕망의 불꽃(MBC, 2.5점) △도망자 플랜비(KBS2, 2.4점) △자유인 이회영(KBS1, 2.33점) △자이언트(SBS, 2.06점) △즐거운 나의 집(MBC, 2점) 등이 높은 순위에 올랐다. 같은 방식으로 평가한 선정성 지수에선 △욕망의 불꽃(2.25점) △즐거운 나의 집(2점) △성균관 스캔들(KBS2, 1.56점) △글로리아(MBC, 1.2점) △대물(SBS, 1.13점)이 1~5위를 기록했다.<표 참조>

    케이블 채널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밝은청소년이 지난 9월 5일부터 11일까지 주요 케이블 채널의 심야 프로그램 50여 개를 조사한 결과, 범죄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거나 신체 훼손(毁損·헐거나 깨뜨려 못 쓰게 만듦) 등의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등 문제가 되는 장면이 다수 발견됐다.

    신서정 밝은청소년 간사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아직 TV를 가려서 볼 수 있는 판단력이 흐린 상태”라며 “최근 이들의 심야 활동이 늘어나 24시간 방영되는 케이블 TV에 쉽게 노출되는 점은 그래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일일이 규제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행 방송법에 따르면 TV 프로그램의 등급은 각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정한다. 김형성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지상파방송팀장은 “별도 심의를 거쳐 제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방송 내용을 간섭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 ◆TV는 온 가족이 함께… “시간 미리 정하세요”

    TV는 신체적·정신적 측면에서 청소년의 성장과 발달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올바른 TV 시청이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자녀가 연령에 맞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하려면 부모님의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린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과 주무관은 “밤 10시 이후엔 어린이와 청소년이 보기에 부적합한 프로그램이 많다”며 “특히 자녀가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을 볼 땐 부모님이 시청 지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은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최근 TV 프로그램의 폭력성과 선정성이 지나치다보니 아이들이 점점 폭력과 성적 자극에 무뎌진다”며 “이런 현상이 심해지면 실제 생활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받아들이는 경향을 갖게 될 수 있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나 교수 역시 “TV 시청 교육에서 부모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TV를 볼 때 가능하면 아이 혼자 내버려두기보다 부모님이 함께하는 게 좋습니다. 미리 정해놓은 시간 동안만 시청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스스로 시청을 멈추도록 해 ‘내 스스로 끝냈다’는 통제감(統制感·상황이나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할 때의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효과적입니다.”


    올바른 TV 시청을 위한 10가지 규칙
  • 1. 몰입해서 시청하면 안 돼요(가족과 대화하면서 시청하기)
    2. 어린이 혼자 보지 마세요(부모님과 함께 시청하기)
    3. 습관적으로 TV 보면 안 돼요(정해진 프로그램만 시청하기)
    4.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마세요(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 시청하기)
    5. 똑바른 자세로 봐야 해요
    6. 방송용 은어나 속어는 따라 하지 마세요
    7. 되도록 어린이에게 리모컨을 주지 마세요
    8. 식사할 땐 TV를 켜지 마세요
    9. TV를 안 볼 땐 꺼놓으세요
    10. ‘TV 안 보는 날’을 정하고 꼭 지키세요 
    ※자료: 미디어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