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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희망을 버리지 맙시다.”
지난 14일(이하 현지 시각)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65세₩사진) 여사가 7년 만에 대중앞에 섰다. 전날 미얀마 군사 정부의 가택연금(家宅軟禁·살고 있는 집 밖으로 못 나오게 통제함) 조치 해제로 ‘자유의 몸’ 이 됐기 때문. 야당인 민주주의 민족동맹 (NLD)을 이끌어온 수치 여사는 이날 낮 12시 미얀마의 옛 수도 양곤에 있는 NLD 사무실 앞에서 1만여명의 지지자를 향해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민주주의의 기본 바탕은 언론의 자유이며, 국민이 정부를 감독할 때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정부 당국은 언론의 자유를 허용하라.”
국제사회는 이번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 조치 해제를 일제히 환영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영웅의 석방을 환영한다” 고 말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수치 여사의 석방은 이미 오래전 이뤄져야 했을 일” 이라며 “그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분” 이라고 치켜세웠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수치 여사에게 깊은 존경과 진심의 인사를 보낸다” 고 말했다. 우리 정부도 김영선 외교통상부 대변인을 통해 “미얀마 정부의 수치 여사 석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며 “미얀마 정부가 앞으로도 민주화와 국민화합을 위한 조치를 취해나가길 기대한다” 고 밝혔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났다. 영국 유학중 만난 남편(티베트 문화 연구학자 마이클 아리스)과 인도에서 살던 수치는 1988년 위독한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미얀마로 돌아왔다. 수치 여사는 당시 미얀마에서 한창이던 군사독재 항의시위와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정부를 본 후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1989년 첫 가택연금을 당했고 1995년에 풀려난 이후에도 2000~2002년,2003년부터 최근까지 등 15년 정도를 집에 갇혀 지냈다. 1990년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 NLD가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지만, 당시 군사정권은 권력을 넘겨주지 않았다. 수치 여사는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미얀마 국민들은 그를 ‘귀부인(the Lady)’ 이라고 부르며 존경해왔다.
한편, 미얀마 군사정권이 지원한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지난 7일 치러진 총선에서 야당 주요 인사의 출마를 막는 등의 방법으로 약 75%의 의석을 확보했다. NLD는 이 선거를 불공정 선거로 판단, 참여하지 않았다. 수치 여사는 14일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총선에서 많은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들었다” 며 “현재 부정행위의 구체적 형태를 조사 중이며 조만간 보고서가 나올 것” 이라고 말했다.
[국제뉴스] “영웅의 석방”세계가 그를 반겼다
김지혜 인턴기자
april0906@chosun.com
미얀마 민주화운동 상징 수치 여사 연금 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