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획 | 아주 특별한 '어린이 도서관'] "손과 마음으로 즐겁게 책 읽어요"
기사입력 2010.11.18 09:46
  • 2010년 11월 현재 전국의 어린이도서관은 120여 곳이다. ‘어린이’ 를 앞세우진 않지만 실제 관객 대다수가 어린이인 소규모 도서관과 새마을문고까지 합하면 4000여 곳으로 늘어난다.

    어린이도서관이 많아지면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어린이 수도 덩달아 증가했다.

    이에 따라 단순히 책을 읽고 빌려갈 수 있는 기본 기능 외에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실내 디자인과 다양한 교육 콘텐츠까지 갖춰지며 도서관들도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최근엔 분야별로 특화된 ‘전문 어린이도서관’ 도 느는 추세다.

    소년조선일보는 오늘부터 5주간 매주 목요일 테마기획 ‘아주 특별한 어린이도서관’ 을 연재한다. 갈수록 진화하는 어린이도서관의 현주소를 살필 수 있는 뜻 깊은 기회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 ①한국학생점자도서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해 영어 참고서를 읽고 있다. 일반 책을 점자책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컴퓨터에 저장된 점자 파일을 점자정보단말기에 옮겨놓으면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다. ②점자로 변환된 책의 일부분. ③점역사가 일반 참고서 내용을 점자로 변환하고 있다. 일일이 점자로 옮겨 적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 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 ①한국학생점자도서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해 영어 참고서를 읽고 있다. 일반 책을 점자책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컴퓨터에 저장된 점자 파일을 점자정보단말기에 옮겨놓으면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다. ②점자로 변환된 책의 일부분. ③점역사가 일반 참고서 내용을 점자로 변환하고 있다. 일일이 점자로 옮겨 적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 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①한국학생점자도서관

    서울 종로구 누하동 64번지. 북악산과 인왕산이 마주한 이곳에 한 도서관이 있다. 6층짜리 건물을 빙 둘러봐도 간판조차 찾기 힘들지만 매일 수십 명이 꾸준히 방문하는 ‘숨어 있는’ 도서관이다.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은 대부분 특별히 제작된 책을 읽는다. ‘눈’ 으로 볼 수 있는 책이 아닌 ‘손’ 과 ‘마음’ 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전국 40여 곳의 시각장애인용 도서관 중 유일한 어린이 전용 도서관, 한국학생점자도서관(이하 ‘점자도서관’ )이다.

    ◆점자책·오디오북 등 4000여 권 보유

    점자도서관은 시각장애 어린이학교인 서울맹학교로부터 걸어서 5분 남짓한 거리에 있다. 원래 서울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관악구 은천동)에 있던 시설을 올1월 이곳으로 옮겼다. 최삼기 관장은 “이용 어린이 대부분이 맹학교 주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복지관까지 오기 힘들었던 게 사실” 이라며 “이왕 어린이 전용 점자도서관을 운영하려면 찾기 쉬운 게 우선이겠다는 생각에 이사를 오게 됐다” 고 말했다.

    점자도서관의 내부 면적은 약 132㎡(40평). 별로 크지 않은 규모지만 장서량(藏書量·책을 모아둔 양)은 여느 어린이도서관 못지않다. 점자책만 2000여 권에 오디오북(일반 책을 녹음해 귀로 들을 수 있도록 한 책)도 2000권가량 된다. 각각의 책은 세 곳의 열람실에 나뉘어 보관 중이다. 조미경 팀장은 “어린이도서관은 대부분 책을 주제별로 분류하지만 여기선 그렇게 나누면 아이들이 오히려 불편해 한다” 며 “같은 책을 두세 권씩 점자책으로 만든 후 열람실에 관계없이 골라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고 말했다. 점자책은 일반 책에 비해 10배 이상 두껍다. 점자가 찍힌 종이 자체가 일반 종이보다 두꺼운 데다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볼록하게 튀어나온 점자의 특성을 반영하다 보니 부피가 늘 수밖에 없는 것. 조 팀장은 “영한사전을 점자책으로 만들어봤는데 일반 책 100권 정도의 분량이 나왔고 1년이나 걸렸다” 고 설명했다.

    ◆소설보다 참고서 인기… 교구 수업도

    수업이 끝나면 서울맹학교 어린이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점자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착 시각은 보통 오후 3시 전후. 어린이들은 가방을 내려 놓자마자 손을 더듬어 책장 위치를 확인한 뒤 보고 싶은 점자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특이한 건 이렇게 선택되는 책 대부분이 참고서란 점. 최삼기 관장은 “요즘은 영어·수학 참고서의 인기가 가장 높다” 며 “최근 점역사(일반 책을 점자책으로 변환하는 사람)들의 손이 바빠진 이유도 어린이들이 공부하기를 원하면서 참고서가 늘었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오후 5시, 참고서에 집중하던 어린이들이 책을 덮고 한곳에 모였다. 교구 수업이 시작되는 시각이었기 때문. 교구 수업은 시각장애 어린이들의 손 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꾸며진 특별 프로그램이다. 예민한 손 감각을 유지해야 점자책을 잘 읽을 수 있는 만큼 교구 수업이 이들에게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다. 가장 인기 있는 건블록 놀이를 이용한 수업. 수업 때 사용한 놀잇감은 대여(7일까지)도 가능하다.

    ‘창의 블록 만들기3 교구 수업을 맡고 있는 백재연 선생님은 “놀이 자체의 즐거움은 물론, 손 감각 유지 효과도 뛰어나 시각장애 어린이에겐 가장 필요한 수업” 이라고 밝혔다. 교구 수업 교실에서 만난 김혜선 양(11세)은 “일주일에 두 번 블록 놀이수업에 맞춰 도서관을 찾는 다 며 “책도 읽을 수 있고 재밌는 수업에 참여할 수도 있어 무척 즐겁다” 고 말했다.

    ◆“비장애 어린이 방문도 환영합니다”

    아직까지 점자도서관 방문객 대부분은시각장애 어린이들이다. 하지만 이곳엔 일반 책도 400권 정도 있다. 점자책을 만들기 위한 용도이긴 하지만 누구나 방문해 이용할 수 있는 책들이다. 최삼기 관장은 “점자도서관이란 명칭 때문에 비장애 어린이들이 스스럼없이 찾긴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린 언제든 환영” 이라며 “보다 많은 비장애 어린이들이 이곳을 찾아 시각장애 어린이들과 책으로 친구가 된다면 정말 좋겠다” 고 말했다. 개관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공휴일과 토·일요일은 쉰다. (문의 02-738-0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