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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드라마 타이틀, 앨범 재킷 타이틀, 제품 패키지 타이틀 등 캘리그라피는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파고들어 왔다. 이뿐만 아니라, 거리의 수많은 광고 현판과 플래카드에도 아름다운 우리의 말, 문자가 자태를 뽐낸다. 단순한 문자에서 상업디자인, 예술로 승화된 아름다운 우리 문자를 만드는 사람, 캘리그라퍼 이상현을 만나 캘리그라피의 세계에 대해 들었다.
◆캘리그라피와 서예는 개념이 다르다 -
"캘리그라피 하면 대부분 아름다운 문자 또는 서예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캘리그라퍼는 우리 글씨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예가 전통방식의 우리 글씨라면 캘리그라피는 좀 더 감성적 이미지, 붓으로 표현하는 회화 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내 1호 캘리그라퍼로 불리는 이상현씨는 캘리그라피를 단순히 흰 종이에 묵으로 쓴 글씨를 뛰어넘는 하나의 감성문자라고 설명했다. 서예의 기본기와 디자인의 창의성, 색감, 구도를 이해하고 글자의 의미를 표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상업적 캘리그라피는 정확한 대상이 있는 문자다. 무엇을 쓸까, 어떻게 쓸까, 누가 볼까를 생각하고 그에 맞게 표현하기 때문이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캘리그라피는 영화·드라마 타이틀, 앨범 재킷 타이틀, 제품 패키지 로고 및 타이틀, 북커버 등 문화산업은 물론 다방면에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예술적 캘리그라피는 조금 다르다. 글자 속에 숨은 감성적 이미지를 이끌어 예술로 형상화하기 때문이다. 한글 고유의 이미지를 표현해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이끌어낸다.
"캘리그라피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글인 한글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는 점이죠. 외국인들이 우리의 글을 알지 못하더라도 그 글에서 표현되는 감정과 느낌을 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죠. 우수한 한글의 매력과 감성을 세계에 알리는 한글 세계화의 첫발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씨는 캘리그라피가 서예와는 개념이 다르지만 서예가 기본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캘리그라피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통의 문자, 예를 들어 세종대왕이라는 글자를 쓸 때도 세종대왕에서 느껴지는 근엄함과 위엄, 힘과 바름 등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 서예의 전통성을 기본으로 갖춰야만 제대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캘리그라피는 붓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붓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서예의 기품과 기본기가 바탕이 되어야 원하는 개성을 제대로 담을 수 있다. 기본기를 갖추되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을 잃지 않는다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캘리그라피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다"고 조언했다.
◆"바른말, 긍정적 표현력이 좋은 캘리그라퍼 만들 것"
"단순히 글씨를 쓴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한 번에 휙 쓰면 글씨가 완성되는 줄 알죠. 하지만 저는 스스로를 붓을 잡은 연기자라고 소개합니다. 우울한 단어를 표현할 때는 슬픈 음악을 듣고 슬픈 기억을 꺼내 감정이 최고조가 될 때까지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반대로 행복한 단어를 쓸 때는 즐거운 음악을 듣고 행복한 생각을 하며 최고의 감정이 되었을 때 비로소 글을 완성시키죠. 며칠, 몇 주에 걸쳐서 하나의 글이 완성됩니다."
그는 청소년들이 캘리그라퍼가 되고 싶다면 지금부터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맛있다. 감사합니다. 행복해요. 좋아요. 이런 감정들을 그때그때 표현하고 그 느낌을 잘 기억해둬라. 그런 다음 행복이나 사랑이라는 단어 등을 써보면 글자에 생명력과 표현력이 담겨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고 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서는 원하는 느낌의 문자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감정 표현과 더불어 거짓말도 캘리그라퍼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했다.
"감정을 속이는 모든 것들이 표현력을 떨어뜨리죠. 많이 체험하고 느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도 하나의 문자를 완성하기 위해 제품을 먹어보고 발라보고 기획 의도와 마케팅 목적 등을 세밀히 연구합니다. 감정 역시 느껴보기 위해 추운 곳에서 떨어도 보고 난생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관찰을 하기도 합니다. 캘리그라퍼가 되고 싶다면 표현력을 기르고 바른말, 제대로 된 한글을 공부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는 앞으로 캘리그라피산업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올릴 신흥산업이라고 소개했다. 국내는 물론해외에서도 한글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다양한 스타일의 캘리그라피를 의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캘리그라피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활용해 자신의 글에 색감과 구조를 변형시키기도 하고 붓의 강약으로 감정을 담기도 하고 한글에 담긴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이자 한글에 힘을 부여하는 일이죠. 캘리그라피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이라면 한글과 서예에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갖기 바랍니다. 자신의 감정을 붓에 담아 연기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악필이어도 좋습니다. 나만의 개성이 있다면 얼마든지 도전해보세요."
[직업탐색] 한글에 감정 불어넣는 '붓을 잡은 연기자'입니다
김소엽 맛있는공부 기자
lumen@chosun.com
국내 1호 캘리그라퍼 이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