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흥~ 어딜 넘봐? 사파리의 왕은 바로 나야!
용인=김재현 기자 kjh10511@chosun.com
기사입력 2010.10.21 09:49

에버랜드 사파리의 '가을 전쟁'

  •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경기 용인 에버랜드 내 ‘동물의 왕국’ 사파리의 기류(氣流·일이 진행되는 추세나 분위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가 심상찮다. “사파리의 주인은 바로 나!”라고 외치듯 벵갈호랑이와 백호(白虎) 간 세력 다툼이 시작된 것. 평화롭다는 느낌마저 주는 낮과 달리 호랑이들은 어둠이 드리워지면 서서히 야생의 본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선을 사이에 두고 묘한 긴장감마저 자아내는 에버랜드 사파리의 하루를 조련사의 눈으로 들여다봤다.


  • 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 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어딜 넘봐?” 챔피언 벵갈호랑이

    사파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건 올해 세 살이 된 어린 벵갈호랑이 ‘킹호’와 ‘범호’예요. 큰 바위를 베개 삼아 관람객에게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죠? 하지만 속사정은 좀 달라요. 다른 벵갈호랑이들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면 언제 어디서 공격당할지 모르거든요. 덩치도 작아 멋모르고 덤벼들었다간 호되게 혼나기 십상이고요. 그 때문에 이들은 항상 긴장과 경계를 늦추지 않는답니다.

    벵갈호랑이는 무척 개인적인 동물입니다. 그래서 같은 벵갈호랑이끼리도 서로의 영역은 절대 침범하지 않아요. 킹호와 범호도 자기 영역이 따로 있어요. 사파리를 잘 둘러보세요. 벵갈호랑이들이 저마다 바위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아롱이는 올해 다섯 살이에요. 그런데 바위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다른 벵갈호랑이들과 달리 틈만 나면 바닥을 어슬렁거리곤 해요. 왜냐고요? 식탐이 유난히 많거든요. 사육사가 닭고기를 던질 때 혹시 실수해 바닥에 떨어지면 낚아채려는 속셈이죠. 그래서 늘 사육사가 던져주는 닭고기를 먹어치운 후에도 호시탐탐 사파리 차량 주변을 기웃거린답니다.

    식탐으로 따지자면 산호도 아롱이 못지않아요. 산호는 아예 사파리 차량에 올라타 먹이를 달라고 조르거든요. 사육사가 닭고기를 집어 보여주면 산호의 시선도 사육사 손끝을 따라갑니다. 입가엔 침이 고이다 못해 흐르죠. 닭고기가 바위에 던져진 후 차량이 이동해도 산호는 어느새 다시 차량 지붕 위에 올라가 있어요. 그새 게 눈 감추듯 닭고기를 먹어치우곤 또 먹을 걸 달라고 보채는 거예요. 산호의 몸을 자세히 보세요. 군데군데 상처투성이죠? 유난히 장난이 심해 다른 호랑이를 골려주다 공격받은 흔적이에요.

    새강이는 벵갈호랑이 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커요. 사파리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사파리의 주인’이죠. 그 때문에 새강이는 다른 호랑이의 도전을 자주 받아요. 먹이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다른 호랑이와 달리 새강이는 꼼짝하지 않는답니다. 주인 자리를 언제 뺏길지 몰라 불안하거든요. 덕분에 새강이의 먹이는 고스란히 여자친구 호리의 몫이 된답니다. 그나마 ‘동물의 왕’ 사자 무리가 우리 안에 갇혀 있어 새강이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는 건 참 다행이죠?

    ◆“올해는 나의 해!” 도전자 백호

    여러분은 어른들이 올해를 가리켜 ‘60년 만에 찾아온 백호의 해’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어본 적 있나요? 백호는 맹수이면서도 성격이 비교적 온순한 편이지만 올해는 예외랍니다. 유난히 벵갈호랑이와 신경전을 벌이는 일이 잦아졌거든요. 백호들도 올해의 주인공이 자기들이란 걸 눈치 챈 걸까요?

    호랑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몸 곳곳이 상처예요. 서로를 공격하다 생긴 흔적이죠. 벵갈호랑이뿐 아니라 백호의 몸에도 상처가 많아요. 하지만 ‘싸움의 기술’ 면에선 아직 백호가 한 수 위예요. 두꺼운 앞발을 싸움에 활용하는 벵갈호랑이를 당해낼 재간이 없거든요. 여러분, 벵갈호랑이의 앞발을 본 적이 있나요? 굉장히 커서 상대를 공격할 때 특히 유리하답니다. 그래도 에버랜드의 백호 10마리는 틈날 때마다 새강이가 버티고 있는 ‘사파리의 가장 높은 곳’을 노리고 있어요.

    백호가 모인 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유비·관우·장비입니다. 친자매 사이인 이들은 늘 사이좋게 바위 위에 나란히 앉아 있어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맏이인 유비는 의젓하고 막내 장비는 장난꾸러기예요. 그래서일까요? 산호처럼 장비 몸도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어요. 장난기 많고 남에게 시비도 많이 거는 사람이 공격받는 일도 잦잖아요. 호랑이 세계도 마찬가지인가 봐요.

    현재 백호의 왕은 시저예요. 덩치로 따지면 새강이보다 한 수 위죠. 몇 차례나 새강이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아직 한 번도 이기진 못했대요. 그래도 서로의 실력이 막상막하인 만큼 언젠간 시저에게도 기회가 오겠죠?

    호랑이들이 왜 하필 요즘 이렇게 으르렁거리느냐고요? 날씨가 추워지면서 예민해져 서로를 공격하는 성향이 강해져서라고 하네요. 강한 생존 본능이라고나 할까요? 당사자들은 피곤하겠지만 이들의 ‘불안한 동거’를 바라보는 우리에겐 이들의 싸움이 흥미진진하기만 합니다. 아, 참! 이들의 ‘전쟁’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에요. 우리 안에서 느긋하게 이들을 바라보는 사자의 왕 ‘아이디’도 빼놓을 수 없답니다.


  • (위)전 세계에 100여 마리밖에 없는 희귀 동물 라이거와 (아래)아프리카의 '무법자' 하이에나. 남정탁 기자
    ▲ (위)전 세계에 100여 마리밖에 없는 희귀 동물 라이거와 (아래)아프리카의 '무법자' 하이에나. 남정탁 기자
    사파리의 또 다른 '스타 동물'

    에버랜드 백호 사파리에 호랑이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섭섭해요. 이곳엔 전 세계를 통틀어 100여 종밖에 없다는 라이거(수사자와 암호랑이 사이에서 태어난 동물) 한 마리와 하이에나 네 마리, 수리부엉이 등이 한 가족처럼 살고 있거든요. 한때 이들과 함께 지냈던 사자는 호랑이와의 세력 다툼이 거세질 것을 우려해 다른 쪽으로 잠시 비켜나 있어요.

    백호 사파리를 지나면 곰 사파리에 도착합니다. 유럽에서 온 불곰과 반달가슴곰 가족을 만나볼 수 있어요. 먹이를 얻으려는 곰들의 ‘재롱잔치’는 사파리의 또 다른 볼거리랍니다. ‘비나이다’ 동작을 연상시키는 양손 맞붙이기,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려 짓는 ‘살인미소’, 혀를 반쯤 내빼며 상대를 약 올리는 동작 등을 구경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