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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7년 강원도 진부령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자동차 경주의 역사가 올해로 23년을 맞았다. 한국모터스포츠클럽이 주최한 국내 첫 자동차경주는 제1회 한국자동차경기대회였다. 특별한 규정 없이 랠리(일반 도로의 정해진 구간을 규정 시간과 속도로 달려 실점 차이로 승부를 겨루는 경기) 형태로 열린 이 대회부터 23년 한국 모터스포츠의 서막이 열렸다. 변변한 서킷 하나 없는 상태에서 자동차 경주의 새 장르가 개척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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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포장 서킷은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영국·독일 등 모터스포츠 선진국에 비하면 초라한 역사지만 우리나라 모터스포츠는 짧은 기간에도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일반 차와 다름없는 초기 경주차는 고성능 차로 진화했고, 인천 영종도나 서해안 몽산포·청포대 해수욕장 등 임시 트랙에서 치르던 레이스는 지난 1994년 용인 에버랜드에 길이 2.125㎞의 ‘스피드웨이’가 문을 열며 포장 서킷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호회가 주최하던 이벤트는 전문 프로모터가 운영하는 챔피언십 시리즈로 이름표를 바꿔 달았고, 국제자동차연맹(FIA)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한국자동차경주협회가 대회 공인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굵직한 국제 자동차 경주 유치 실적은 높아진 국내 모터스포츠의 위상을 대변한다. 지난 1999년부터 5년 연속 경남 창원 시가지 서킷을 달군 F3 코리아 수퍼프리를 비롯해 아시안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AFOS), 인터텍 내구레이스, 포뮬러 BMW 아시안 등의 대회는 국내 드라이버들에게 한 차원 높은 자동차 경주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줬다. 서킷 대회 외에 금강산과 평창 랠리, 스노 레이스 등을 통해 경주 코스도 다양해졌다.
외형적 완성도와 달리 모터스포츠의 저변은 여전히 열악한 편이다. 국내 대회가 안정을 찾아가고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와 경남 창원, 강원도 태백 레이싱파크 등에서 국제 자동차경주가 펼쳐지지만 모터스포츠계 기반은 초창기와 큰 차이가 없다. 일반인의 무관심도 여전하다.
◆정상급 레이싱팀 연간 예산도 10억 원에 불과
우리나라 시장은 아직 모터스포츠 마케팅이 활발하지 않다. CJ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등 프로 자동차경주 리그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행사여서 참여기업 수나 투입 자본의 규모는 F1 그랑프리와 비교되지 않는다. 게다가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보수공사 등으로 대회를 열 수 있는 경기장이 많지 않아 기존 모터스포츠 대회는 올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국내 레이싱팀 역시 대부분은 동호회 수준에서 약간 발전한 정도에 머물러 있다. 예를 들어 CJ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에 참가하는 ‘성우 인디고’는 자동차 부품 기업 성우에서 만든 팀이다. ‘GM대우 레이싱팀’ 역시 GM대우자동차가 직접 운영한다. 비슷한 예로 ER팀 106이나 ‘KT dom’, ‘킥스파오’, ‘에쓰오일팀’ 등은 특정 기업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나머지 팀은 대부분 동호인 클럽이 준(準)프로 레이싱팀의 형태로 발전한 경우다. 한국 정상급 프로 레이싱팀의 연간 예산은 10억 원 정도. 다른 프로 스포츠팀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
카레이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는 카레이서는 200명가량이다. 이 가운데 팀으로부터 순수하게 연봉을 받는 드라이버는 극소수다. 나머지 대부분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자신이 직접 스폰서를 찾아 팀을 조직해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이다. 레이싱팀 중 일부는 이 같은 드라이버들의 경주차를 관리하는 사업을 하기도 한다.
◆23년밖에 안 된 역사로 F1 그랑프리 유치 ‘기적’
이처럼 모터스포츠 분야의 불모지(不毛地·현상이 발달되지 않은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한국에서 모터스포츠의 꽃 F1 그랑프리가 개최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랄 만한 변화라 할 수 있다. 국내 모터스포츠 개척을 위해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현재 F1 그랑프리 준비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이르면 5년 내에 우리나라 모터스포츠도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꿈의 레이스 F1 그랑프리] 레이스 볼모지에서 23년만에 '기적'을 일구다
오늘 22일 'F1 코리아 그랑프리' 개막
초기엔 임시 트랙에서 레이스 진행
1994년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로 옮겨
F1 개최 통해 5년 내 눈부신 성장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