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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갖고 있는 친구들 많지? 너희는 휴대전화를 주로 어떤 용도로 쓰니? 평소엔 통화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지만 심심할 땐 게임을 즐기거나 셀카(셀프카메라의 준말)를 찍기도 한다고? 세진이(서울 태강삼육초등 3년)도 처음엔 너희와 비슷했어. 하지만 이제 휴대전화는 세진이에게 특별한 의미가 됐단다. 휴대전화로 미래의 꿈을 찍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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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데 동영상이나 찍어볼까, 누나?”
지난해 봄이었어. 어느 무료한 일요일, 집에서 뒹굴뒹굴 시간을 보내던 세진이는 갑자기 큰 소리로 누나를 부르기 시작했어. 아빠 휴대전화가 눈에 들어오면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거든.
“우리 동영상 한번 찍어보자.”
닌텐도 게임을 즐겨하던 남매는 게임을 소재로 한 동영상을 찍기로 결정했어.
“우린 닌텐도 중독자들이다!”
게임에 몰두하는 장면을 찍은 남매는 번갈아가며 휴대전화 카메라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지. 물론 그 짧은 동영상을 찍는 데도 몇 번씩 NG가 났어. 그런데 말이야, 세진이 눈엔 편집도 안 돼 거친 그 동영상이 꽤 근사해 보였어. 소재도, 자신의 연기도 마음에 들었거든.
△3주 만에 9분30초짜리 영화로 뚝딱
엄마의 생각도 세진이와 비슷했나 봐. 동영상을 보더니 “영화로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라고 말씀하셨거든. 세진이는 엄마의 제안에 무척 기뻤어. 연극을 전공한 엄마의 안목을 믿었으니까.
영화 작업은 척척 진행됐어. 우선 영화를 전공한 엄마 주위 분들에게 영화 제작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 친구들을 불러모아 배역도 나눴지.
영화 한 편을 만들려면 각자 역할을 나눠야 하잖아. 사실 세진이는 감독에 욕심이 많았어. 작품 소재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으니까. 하지만 여러 명의 배우와 스태프를 거느리기엔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결론이 났어. 결국 감독은 누나 몫이 됐지. 대신 세진이는 주연배우 역을 맡았어.
하지만 세진이는 영화 전반에 걸쳐서 누나 못지않은 활약을 했어. 시나리오를 쓸 때도, 장면장면 연기를 할 때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지. 그 의견은 대부분 받아들여졌어. 세진이의 의견이 워낙 구체적이고 그럴듯했거든.
10~20초에 불과하던 휴대전화 동영상이 상영 시간 9분31초짜리 단편영화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3주. 촬영이 주로 방과 후에 이뤄져 밤 12시를 넘길 때도 많았어.
△남다른 예술 감각은 ‘조기교육’ 덕분
남매가 만든 이 작품은 곧바로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에 출품됐고, 당당히 2위를 차지했어. 심심풀이로 찍은 동영상에서 출발한 것치곤 대단한 결과라고? 이야기를 좀더 들어 봐.
어릴 때부터 세진이는 누나와 함께 사진·만화·연극 등을 배웠어. 일곱 살 땐 짧은 애니메이션도 만들었고 연극 무대에 오른 적도 있지.
영화도 또래보다 많이 봤어. 무엇보다 세진이는 영화를 본 다음 아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 이런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닝텐도 중독자’란 근사한 영화가 나온 거야.
올해 세진이는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캠프에 참가해 다양한 영화 공부를 했어. 지난해 수상자 자격으로 심사단으로도 참여했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이 한 뼘 더 자라난 계기가 된 거야.
△“재미와 교훈 전하는 영화 만들래요”
세진이는 평소 좀 엉뚱한 편이야. 나무 한 그루를 보더라도 ‘저 나무엔 뭐가 살고 있을까?’, ‘잎은 몇 개나 될까?’ 상상하거든. 휴대전화로 사진 찍기도 좋아하는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쓰레기 봉투 같은 것들을 주로 찍곤 해.
세진이는 교훈과 재미가 가득한 작품을 만드는 영화감독이 되는 게 꿈이야.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도 대략 마친 상태지. 학교 숲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지 영화인데, 우정이라는 묵직한 교훈을 담고 있대. 감독이 누구냐고? 당연히 최·세·진이지.
효자동 이발사 임찬상 감독이 세진이에게 -
-영화감독의 역할이 궁금해요.
“영화 한 편을 만들 때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고 보면 됩니다. 구상·촬영은 물론이고 홍보까지도 관여하지요.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경우도 많아요. 영화를 어떻게 찍을지 생각하면서 쓰기 때문에 전문 작가가 쓰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거든요.”
-영화 한 편을 완성하려면 보통 얼마나 걸리나요?
“작품마다 달라요. ‘효자동 이발사’는 꼬박 2년 만에 완성한 작품이지요. 시나리오 작업에 1년, 촬영·편집·녹음을 거쳐 상영관에 걸리기까지 다시 1년. 그나마 이 경우는 무척 빨리 진행된 거예요.”
-왜 영화감독이 되셨어요?
“원래는 소설이나 시를 쓰고 싶었어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좋은 영화를 많이 보면서 셰익스피어가 지금 살고 있다면 영화감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선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쉬우니까요.”
-연기를 해본 경험이 있어요. 영화감독이 되는 데 도움이 될까요?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연기 연출’이었어요. 연기에 대한 이미지는 있는데, 그걸 배우에게 말로 설명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연기로 보여주면 배우의 상상력이 닫혀버릴 염려가 있거든요. 카메라 앞에 서는 배우의 입장을 잘 안다는 건 감독으로서 대단한 장점이에요.”
-지금부터 사진과 동영상을 많이 찍어야 할까요?
“영화가 영상예술이다 보니 보통 사진과 동영상, 미술 분야에 대해서들 많이 말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기본은 이야기예요. 상상력의 기반 역시 연극과 소설, 시에서 나옵니다. 고전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고전영화는 소설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게 중요한 거지요. 또 영화감독은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해요. 인류가 살아온 기록 속에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으니까요.”
△임찬상 감독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연출부를 거쳐 직접 시나리오를 쓴 ‘효자동 이발사’로 감독 데뷔를 했다. 이 작품으로 ‘제17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단편영화 ‘사라지는 모든 것에 보내는 노래’, ‘터널’을 감독했으며, 현재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물을 준비 중이다.
[꿈을 좇는 인터뷰] 영화 '닝텐도 중독자' 만든 최세진 군
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재미ㆍ교훈 전하는 영화 감독 될래요"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단편영화 제작…'부산어린이영화제'서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