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레이스 F1 그랑프리] 936조 원 거대 자본 싣고 더 빠르게 달린다
김병헌 자동차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0.10.08 09:50

F1 특급 팀 1년 예산 '약 4000억 원'
세계적 파급력 높아 기업 후원 줄이어

  • 자동차 경주는 마케팅 개념을 가장 먼저 도입한 스포츠 종목 중 하나다. 돈이 있어야 빠르고, 빨라야 돈을 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F1의 세계에선 헝그리 정신, 즉 ‘피나는 노력으로 가난을 극복하고 성공한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 1 올 시즌 개막전
인 바레인 그랑프리에
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메르세데스GP팀.
2 스페인 그랑프리에 출전한
메르세데스GP팀 N. 로즈버그. 메르세데스 벤츠 제공
3 싱가포르 그랑프리 출발
장면. 서킷 광고판과 머
신은 다국적 기업의
광고 전쟁이 펼쳐
지는 무대다. 페라리 제공
    ▲ 1 올 시즌 개막전 인 바레인 그랑프리에 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메르세데스GP팀. 2 스페인 그랑프리에 출전한 메르세데스GP팀 N. 로즈버그. 메르세데스 벤츠 제공 3 싱가포르 그랑프리 출발 장면. 서킷 광고판과 머 신은 다국적 기업의 광고 전쟁이 펼쳐 지는 무대다. 페라리 제공
    ◆대회당 후원금 936조 원 세계 4위 부자국가 수준

    페라리·맥라렌 등 F1 특급 팀의 1년 예산은 약 4000억 원이다. F1 한 개 팀의 예산으로 야구·축구·농구를 포함한 한국의 모든 프로 스포츠 구단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다. F1 팀들은 어떻게 이런 거금을 만들 수 있을까? 우승 상금이 걸려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이다. 운영자금의 99%는 기업의 투자로 메워진다.

    F1에서 스폰서의 개념이 처음 등장한 건 지난 1968년이었다. 당시 순위에서 선두를 달리던 영국 로터스팀은 담배 회사 골드리프와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이후 로터스는 팀 고유 색인 녹색을 포기하고 차체를 흰색과 붉은색으로 칠했다. 팀 이름도 ‘골드리프 로터스’로 바뀌었다.

    이후 F1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마케팅 수단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전 세계의 주요 다국적 기업이 끊임없이 F1으로 몰려들고 있다. 과거 F1 팀의 타이틀 스폰서(sponsor·후원자) 자리를 차지한 건 대부분 담배회사들이었다. 한때 F1 스폰서 금액의 약 15%가 담배회사에서 나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2005년 7월 이후 유럽에서 담배광고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전자회사와 이동통신회사, 보험사들이 새로운 스폰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F1에 참가하는 200여 개 스폰서의 재정적 거래 합산 총액은 7870억 달러(약 936조 원)에 이른다. F1을 하나의 국가에 비유하면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4위에 이르는 경제 대국에 오르는 셈이다. F1의 경제적 가치는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료를 기준으로 할 경우 중국에 조금 못 미치고 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지난해 17억 명 경기 시청 올림픽·월드컵 부럽잖다

    F1 관련 산업도 번창하고 있다. 단지 모형 경주차나 장난감, 의류 등을 파는 시장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영국의 경우 자동차경주 자체가 어엿한 하나의 산업군이다. 자동차경주 관련 기술이나 부품을 개발하는 영국 회사는 2000개가 넘는다.

    F1으로 돈이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F1의 파급력을 이용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F1을 관람하기 위해 서킷을 찾는 관중과 TV 화면을 통해 경기장면을 접하는 시청자 수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난 한 해 F1 시청자 수가 17억 명에 이른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한편에선 F1을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행사로 정의하기도 한다.

    F1의 가치가 급상승한 건 대회의 상업적 권리를 가진 영국 포뮬러원매니지먼트(FOM)의 버니 에클레스톤 회장이 1970년대 들어 F1 TV 생중계 제도를 도입하면서부터다. 현재 F1 경기를 생중계하거나 녹화 방송하는 채널은 150개 이상이다. 이들 중엔 여러 나라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위성채널도 있어 실제 F1을 시청할 수 있는 나라는 180개국에 이른다. 경기를 현장에서 취재하는 인쇄 매체도 500개가 넘는다. 전 세계를 상대로 자사의 상표를 알리거나 물건을 팔고 싶은 기업들에 이보다 효과적인 마케팅 기회는 없는 셈이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이나 올림픽과는 달리 F1은 매년 19차례나 치러진다. 많은 돈을 지급해 후원사가 되더라도 손해 보지 않는 게임인 것이다.

    자동차 관련 기업은 특히 F1 경기 후원을 통해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그랑프리 팬들은 자동차 엔진오일 하나를 교체할 때도 F1 공식 후원사 제품을 선호한다. 판매용 제품과 경주에 쓰이는 제품이 100% 일치하진 않지만 대리만족을 느끼기엔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동차 경주 마케팅은 그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그 때문인지 모터스포츠 세계에서 금과옥조(金科玉條·꼭 지켜야 할 법칙)처럼 지켜지는 말이 있다. ‘일요일은 레이스, 월요일은 판매’가 그것. 일요일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차에 사용된 제품은 이튿날 곧장 판매 증가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올해 F1은 이미 패스트푸드 체인 버거킹과 거대 금융서비스 기업 에이온 등 26개의 새로운 스폰서를 유치했다. 스폰서 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F1의 성공적 운영이 모터스포츠 산업은 물론, 서비스·물류·자동차 등 연관 산업의 발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