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말투로 신문 만드니 너무 재밌어요"
조찬호 기자 chjoh@chosun.com
기사입력 2010.10.03 00:22

대구 운암초 디지털 신문부

  • “우리 1년 동안 멋진 신문사 놀이 해보지 않을래?”

    지난 3월 대구 운암초등학교(교장 김찬길) 5학년 1반 담임을 맡은 여한기 선생님이 학생 29명에게 제안했다. ‘웬 신문사 놀이?’ 어린이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뭔가 재밌는 놀이인 모양’이란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운암초 온라인 어린이 신문사 ‘누리안’ 은 그렇게 첫발을 내디뎠다.

    여 선생님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을 그냥 공부만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머물긴 아쉬웠는데 때마침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운영하는 에듀넷 온라인 어린이 신문을 알게 돼 ‘신문사’ 문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 누리안 기자들이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발행할 3호 신문 편집회의를 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매력적인 대한민국 소개하기’. 어린이들은 김연아 선수, 여자 축구 선수단 인터뷰, 1000년 고도 경주,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직지심경 소개 등의 기획을 제안했다(왼쪽). 지난 9월 25일 발행된 누리안 2호. / 운암초등학교 제공
    ▲ 누리안 기자들이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발행할 3호 신문 편집회의를 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매력적인 대한민국 소개하기’. 어린이들은 김연아 선수, 여자 축구 선수단 인터뷰, 1000년 고도 경주,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직지심경 소개 등의 기획을 제안했다(왼쪽). 지난 9월 25일 발행된 누리안 2호. / 운암초등학교 제공
    사실 여 선생님은 지난해에도 6학년 어린이 다섯 명과 함께 온라인 신문에 도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적은 인원이 제대로 된 신문을 만들려다 보니 힘에 부쳤다.

    그래서 올해는 ‘부담 없는 신문’을 목표로 디지털 신문부를 만들고 반 어린이를 모두 참여하게 했다. ‘편집장’ 여 선생님은 ‘어린이 기자’ 들이 글 쓰는 걸 어려워하지 않도록 일기를 쓰거나 대화할 때의 말투로 기사를 쓰게 했다.

    ‘짱’ ‘웃음 배틀’ 등 어린이들이 평소 쓰는 단어도 마음껏 쓰게 했다. 어린이 특유의 글맛을 살리기 위해 맞춤법을 고쳐주는 정도 외엔 기사에 손을 대지 않았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기사 쓰는 부담이 사라진 어린이들은 두 세 줄짜리 단신에서 긴 기사까지 술술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발행된 두 차례의 신문을 위해 이들이 써낸 기사만 200여 건에 이른다. 소재도 ‘위험한 우리 학교 스쿨존’ 과 같은 고발 기사부터 교장 선생님·부모님 인터뷰, 박물관 견학기, 여행기, 천연 비누 만드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조인수 군은 “2010 남아공 월드컵 땐 어떻게 하면 내 기사가 채택될까 고민하다가 교내 설문조사를 거쳐 대표팀 인기 순위 기사를 썼는데 반응이 좋았다” 며 “취재를 위해 여러 곳을 방문하며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에듀넷에서 ‘열혈 기자상’ 을 받은 이시은 양은 “예전엔 TV나 인터넷에서 뉴스를 봐도 그냥 지나쳤는데 기자가 된 후론 궁금한 게 생기면 자료를 찾아보며 상식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여 선생님은 “아이들이 직접 기삿거리를 찾아 취재하고 글 쓰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힘이 자라는 게 눈에 보인다” 며 “요즘은 편집회의 때 자신이 낸 기획안을 기사화되게 하려고 파워포인트 자료를 활용하는 등 나보다 열성적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