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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흥미로운 뉴스 하나가 발표됐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미라(mummy·썩
지 않고 건조돼 원래 상태에 가까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사체)로 알려진 15세기 학봉장군 부부 미라 연구 결과가 나온 것. 육류와 채소류를 골고루 먹었지만 민물 생선회를 즐겼다, 남편은 폐질환을 앓았고 아내는 렙토스피라균에 감염된 흔적이 있다…. 500년도 더 된 미라를 통해 알아낸 사실은 놀라웠다. 이집트에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미라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국내에선 불모지(不毛地₩어떤 현상이 발달되지 않은 곳)나 다름없었던 고병리학(古病理學)이 최근 부쩍 발달한 덕분이다. 그뒤엔 10년 넘게 미라 연구에 매달려온 김한겸(55) 고려대 병리과 교수가 있다.
학봉장군 부부 미라 발견 당시부터 분석 작업을 총지휘해온 김 교수가 들려주는 신비하고 놀라운 미라의 세계3를 지면에 옮긴다. -
—고병리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병리학은 질병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고병리학은 그 앞에‘옛날’을 뜻하는 고(古) 자를 붙이지요. 풀이하자면‘오래전 질병을 연구하는 학문’이란 뜻이 됩니다. 예전 질병을 연구하려면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관찰해야 하는데 그 대상이 미라가 되는 거예요. 특히 우리나라는 미라의 보존 상태가 매우 훌륭하기 때문에 고병리학의 미래 또한 밝습니다.”
—미라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인 장묘(葬墓·장례를 치르고 묘를 씀) 방식인 회격묘〈키워드 참조〉덕분에 미라가 만들어졌습니다. 회격묘 방식으로 시신을 묻으면 사체가 산소와 세균으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됩니다. 실제로 회격묘를 발견한 뒤 미라를 수습할 때 포클레인이나 공사용 드릴로 몇 시간 이상 두드려야 바깥쪽 회(灰)가 깨질 정도지요.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외국 미라도 마찬가집니다. 산소와 세균이 차단되면 오랫동안 시신이 보관되는 거죠.” -
—2004년 발견된 학봉장군 부부 미라를 연구하셨죠?
“학봉장군 미라는 현재까지 한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미라입니다. 분석 결과,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근거는 장례가 치러진 곳의 묘비명과 족보 등이에요.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을 사용한 결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이산화탄소 결합이 끊겨 몸속 탄소가 일정 주기로 줄어들거든요. 이를
이용해 그 사람이 살았던 연대를 추정하는 방법이 탄소연대 측정법이에요. 오랜 세월
이 흘렀지만 보존상태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그래서 내시경 검사를 통해 질병이나
식습관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답니다.”
—검사 결과를 해석하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학봉장군이 심각한 폐질환을 앓았을 거란 추측은 몸속에서 발견된 다량의 애기부들 꽃가루였어요. 동의보감에서 피를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약품이거든요. 폐질환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가 피를 토하는 객혈(喀血)이고요. 학봉장군 부부가 민물 생선회를 즐겨 먹었을 거라고 생각한 이유는 간디스토마 기생충이었습니다. 날생
선을 먹었을 때 생기는 기생충이지요.”
—왜 미라를 연구하세요?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와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흔히 역사는‘과거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거울’이라고 하잖아요. 미라도 똑같습니다. 예전 질병을 연구하다 보면 현재나 미래의 질병을 더 잘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미라 연구는 고병리학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족보, 장묘 방식 등 전문가의 연구를 종합했을 때 비로소 선조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미라 연구는 곧 과거로 돌아가 조상들과 만나는 타임머신을 타는 행위라고도할 수 있습니다.”
→회격묘
조선 전기에 유행했던 사대부 집안의 장묘 방식. 소나무 관을 이중으로 포개어놓고 그 둘레를 석회·황토 등의 회(灰)질로 채워 굳힌 것이다. 회가 워낙 두껍게 둘려 있어 쉽게 파낼 수 없고 물이나 습기에 강하다.
[The 인터뷰] 600년 전 학봉장군 부부 미라 분석한 김한겸 교수 "미라 연구는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 같아"
'희격묘' 장묘 덕에 시신 그대로 보존
내시경 통해 사망 원인·식습관 분석
선조들의 생활상 한눈에 알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