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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94학번 키릴입니다.”
24일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에서 만난 예르마코브 키릴(33세·러시아 모스크바국립대 한국학국제센터 연구원) 선생님은 한국 대학생처럼 자신을 ‘94학번’이라고 소개했다. 훌쩍한 키에 짧은 금발, 새하얀 피부의 전형적인 러시아인이 건넨 한글 명함 속 이름은 서양식 표기(이름+성)가 아닌 한국식 표기(성+이름)로 적혀 있었다.
예르마코브 선생님은 대학(모스크바대, 한국사 전공)에 다니던 1997년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다시 한국을 찾은 건 2001년. 석사·박사과정을 마치기 위해서였다. 요즘은 모스크바대학과 현지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사와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가히 ‘한국 전도사’라고 할 만하다. 며칠 전 그는 오랜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26~28일 충남 공주시 공주대학교 백제교육문화관에서 열리는 ‘2010 세계 한국어 교육자 대회’에 초청받은 것. 이번 대회엔 러시아·몽골·미국·베트남·아르헨티나 등 18개국 한국어교육기관에서 활동하는 선생님과 학생 130여 명이 참석한다. -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역사 선생님이었던 외할머니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열두 살 때 우연히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만든 영화 ‘홍길동’을 봤는데 이소룡 영화처럼 액션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때부터 한국사와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한국어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의성어와 의태어가 다양해 재미있어요. 두근두근, 허둥지둥 같은 단어는 영어나 러시아어엔 없거든요. 과학적이면서도 어렵지 않아 외국인이 익히기 쉬운 언어란 점도 인상적이에요. 또 다양한 속담엔 국민성과 문화가 잘 녹아 있어 배우는 재미가 있죠.”
-얼마 전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했는데요. 한글의 세계화가 가능할까요?
“그럼요. 언어마다 고유의 발음이 있기 때문에 한글로 모든 표현을 하긴 어렵지만, 발음 표기에 큰 문제가 없다면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 한글은 무척 매력적인 글자입니다.”
-러시아에선 어떤 학생들을 가르치시나요.
“대학생부터 중년의 직장인까지 다양해요. 1990년대에 한국 대기업들이 러시아에 진출하면서 한국어 붐이 일었거든요. 한국 기업에 취직하려는 러시아 젊은이도 많아졌고요. 특히 김기덕·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한류에 관심 있는 여자 수강생이 많이 늘었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동포(고려인)보다 러시아인 학생이 더 많아요.”
-한국사와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가끔 한국 방송을 보면 러시아에서 한류가 굉장히 인기인 것처럼 과장돼 비칠 때가 있어요. 러시아인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중국·인도 등 여러 나라 문화에 고루 관심이 많거든요. 한 예로 5~6년 전부터 모스크바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일본 초밥집 숫자가 이젠 러시아 전통음식점보다 많을 정도죠. 러시아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수 있도록 앞으로 한국과 한국어를 더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
☞ 신상옥 감독(1926~2006년)
1960년대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영화감독. 1978년 부인 최은희 여사와 함께 북한에 납치됐다가 198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감시원의 눈을 피해 탈출했다. 북한에 붙잡혀 있는 동안 ‘홍길동’ 등 17편의 영화를 만들어 큰 인기를 얻었다.
"러시아에 '한국 붐' 일으킬래요"
조찬호 기자
chjoh@chosun.com
'파란눈의 한국사·한국어 전도사' 예르마코브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