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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경북 김천중앙초등 6년)는 연필과 책보다 칼과 프라이팬을 더 좋아해. 물론 하루의 대부분은 학교에서 보내. 하지만 방과후 너희가 수학학원에서, 영어학원에서 책과 씨름하는 동안 현지는 요리학원에서 칼과 프라이팬을 벗 삼아 열심히 요리를 한단다. 어린 나이에 무슨 요리냐고? 그런 소리 마. 현지는 벌써 요리 관련 자격증을 여섯개나 갖고 있는 요리사거든.
열 살 소녀, 요리의 매력에 풍덩~
3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야. TV 리모컨으로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던 현지는 한 채널에서 눈을 떼지 못했어. 대학생 언니·오빠들이 나와 요리 실력을 겨루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머리가 갑자기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대. ‘이거다!’ 싶었던 거지.
그날 저녁 현지는 부모님께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어. 부모님은 이튿날 현지를 요리학원에 데리고 가주셨지. 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부엌일을 곧잘 돕던 둘째딸이었거든. 무엇보다 현지 부모님은 “초등학생 땐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멋진 교육철학을 갖고 계신 분이었어.
그런데 요리학원 원장 선생님은 좀 당황하셨나봐. 그럴 법도 하지. 현지가 학원 역사상 최연소 학생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런저런 얘길 나눈 후 원장 선생님은 입학을 허락하셨어. 아직 어리지만 열정과 재능만큼은 어른 못잖은 현지를 인정하신 거지. -
어떻게 자격증을 여섯 개나 땄냐고?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6개월쯤 지났을까? 원장 선생님은 현지에게 제과·제빵 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해보면 어떠냐고 제안하셨어. 현지의 야무진 손끝에서 충분한 가능성을 내다본 거지. 하지만 부모님은 좀 망설이셨어. 재미있게 요리를 배우고 있는데 괜히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다가 혹시 흥미가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하신 거야. 하지만 현지는 한번 해보고 싶었어. 부모님 염려와 달리 오히려 시험에 합격하면 더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하지만 시험 준비는 쉽지 않았어. 무엇보다 필기시험이 너무 어려웠어. 대학에서나 배우는 조리 이론과 낯선 단어들이 열한 살 꼬마에겐 버거웠던 거지. 결국 세 번이나 쓴맛을 보고 나서야 합격할 수 있었지 뭐야. 물론 실기 시험도 만만찮았어. 안 그래도 손이 작아서 빵 반죽하는 게 힘들었는데, 하필 가장 만들기 어렵다는 ‘데니쉬 페이스트리’가 시험 문제로 나왔지 뭐야. 결국 반죽하느라 두 시간을 끙끙대던 현지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시험장을 나오고 말았지.
하지만 실패가 오히려 보약이 됐나봐. 그다음부턴 일사천리였거든. 제과 시험은 단 한 번에, 제빵 시험도 다음번 도전에서 무사히 합격했지. 양식·한식·중식·바리스타(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 시험을 모두 통과하는 데 채 2년이 안 걸렸어. 요즘은 일식 조리기능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단다.
실력의 비밀은 ‘매일 꾸준히 요리하기’
사실 요리는 어른이 하기에도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야. 계속 서 있어야 하고 늘 날카로운 칼이나 뜨거운 불을 다루니까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해. 어린 현지에겐 더 말할 나위가 없지. 매일 방과후 학원에서 두세 시간씩 요리에 몰두하다 보면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쑤시기 일쑤야. 칼에 베고 불에 데는 일도 잦아. 하지만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학원엔 꼭 나가. 열이 펄펄 날 때도 예외가 아니지. 누워 있어도 머릿속은 온통 요리 생각뿐이니 차라리 학원에 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나?
그래도 음식은 ‘엄마표’가 최고! -
현지는 가족과 친구 생일에 직접 만든 케이크나 쿠키를 선물하곤 해. 그야말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이지. 하지만 학교에서 요리 실습을 할 땐 절대 나서는 법이 없어. 친구들도 요리의 즐거움을 느껴봤으면 하는 속내 때문이지. 외식을 할 때도 음식이 맛있으면 칭찬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무 말도 안 해. 요리가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래. 참, 웬만한 요리는 척척 해내는 현지에게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뭔지 아니? 바로 엄마가 해주시는 음식이야.
요즘 현지는 영어 공부에 한창이야. 세계적인 요리사가 되려면 영어는 기본이라고 생각하니까. 물론 나중에 전공 요리가 정해지면 그 요리를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언어도 배울 생각이야. 지금 생각 같아선 모양이 그림처럼 예쁜 서양 요리를 전공하고 싶지만 말이야. 그림 공부도 곧 시작하려고 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들 하잖아. 맛뿐 아니라 모양과 색감까지 최고인 요리를 만드는 게 현지의 최종 목표거든.
'꼬마 요리사' 강현지가 '스타 셰프' 박찬일에게 묻다 -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를 만들어보렴!"
-너무 빨리 요리 공부를 시작한 거 아니냐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선 중학교 때부터 직업 교육을 시작해요. 만 16세가 되면 사회에 나가고, 30세가 되면 마스터가 되는 거죠. 대학에 가서야 직업 교육을 시작하는 우린 그들에게 한참 뒤질 수밖에 없어요. 전 직업 교육은 어릴 때 시작할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일식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자격증을 여러 개 갖는 게 좋을까요?
“자격증 공부는 요리에 대한 단기적인 이해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어요. 하지만 아직 어리니까 그보단 창의성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창의성이야말로 좋은 요리를 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니까요.”
-창의성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창의성은 하루아침에 뚝딱 키워지는 게 아니에요. 꾸준히 노력해야 하죠. 우선 요리책이나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국내·외 유명 요리사들의 작품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세요. 특히 음식 재료에 대한 이해는 정말 중요해요. 좋은 채소는 어떻게 자라는지, 농부의 어떤 손길을 거치는지, 또 어떤 유통과정을 거쳐 식탁에 올라오는지 등을 찬찬히 공부할 필요가 있어요.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건 좋은 요리를 위한 기본이니까요.”
-좋은 요리사란 어떤 요리사일까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를 만드는 사람, 마음과 에너지를 담은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좋은 요리사가 아닐까요?”
-타고난 미각이 중요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미각은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발달시킬 수 있어요. 요리는 수학과 똑같아요. 공식을 이해하고 문제를 많이 풀어봐야 수학을 잘할 수 있듯이 요리도 많이 먹어보고, 만들어보고, 배울수록 실력이 쑥쑥 는답니다.”
박찬일 셰프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후, 30대 초반 이탈리아로 건너가 3년 동안 요리와 와인을 공부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청담동에서 스타 셰프(chef·주방장)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되도록 수입품 대신 우리 땅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를 즐겨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각종 언론 매체에 칼럼을 쓰면서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여러 권의 요리책을 펴냈다. 현재 서울 홍익대학교 앞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꼼마’의 셰프로 일하고 있다.
[꿈을 좇는 인터뷰] 13살 '꼬마 장금이' 강현지 양
김천=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베이고 데어도 요리 생각뿐이에요"
열 살부터 시작… 자격증 6개 따내
요리왕 되기위해 영어·미술공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