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형 인재 길러야 미래 열려"
오현석 기자 socia@chosun.com
기사입력 2010.08.11 02:42

연세대 교수로 변신한 이기태 前 삼성전자 부회장 인터뷰
우리나라 명문 대학들은 똑같은 인재만 찍어내
IT 전공하는 학생들에도 인문학·경영학 가르쳐야

  • "대학이 만날 똑같은 인재만 찍어내면 뭐합니까. 미래의 먹을거리를 찾아낼 수 있는 융합형 인간을 길러내야죠."

    연구·개발(R&D) 혁신을 통한 '명품 전략'으로 삼성 휴대폰 애니콜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낸 이기태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번에는 '명품 대학' 신화(神話)에 도전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 1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 전 부회장은 지난 7월 연세대 공대 교수로 부임해 연세대가 내년 인천(송도) 국제캠퍼스에 신설하는 '글로벌융합공학부'의 설계를 주도하고 있다.

    이 전 부회장은 9일 인터뷰에서 "10년 안에 글로벌융합공학부에서 미래의 먹을거리를 찾아내고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융합학부에서 목표로 삼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연세대 공대 교수로 부임한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융합형 인간을 길러내 10년 안에 미래의 먹을거리를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 연세대 공대 교수로 부임한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융합형 인간을 길러내 10년 안에 미래의 먹을거리를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요즘 사람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따라가자고 난리인데, 제가 볼 때는 스마트폰은 원오브뎀(one of them·여러가지 중 하나)입니다. 전 스마트폰도 아직 스마트하지 않다고 봐요. IT를 더 선도하려고 해야지, 스마트폰을 갖고 '이게 IT의 파이널이다' 이러면 안되죠. 더 연구해서 새로운 4세대·5세대 IT를 만들어야죠. 그런 것을 글로벌융합학부·글로벌융합연구소에서 하겠단 겁니다."

    1973년 입사해 지난해까지 36년간 삼성전자에서 일해온 이 전 부회장은 현재 대학 교육에 불만이 적지 않았다. "제품 하나에는 기술, 디자인, 철학, 인문학 등 다양한 개념이 들어가는데, 대학은 아직도 전자공학과, 화학공학과, 경영학과로 나뉘어 기성품처럼 똑같은 인재만 찍어내고 있어요. 그런 교육으로는 창조적인 것을 못 만듭니다."

    이 전 부회장은 "이제는 융합형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품질관리전문가라고 하더라도 품질에만 갇혀서 일하지 않고, 자동제어·디자인·품질관리 등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인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융합공학부는 에너지환경·나노·정보전자융합 등 3가지 전공이 있지만 모든 학생들에게 인문학과 경영학까지 가르쳐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섭렵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설계 중이다. 그는 "기술자도 협상 실력이나 리더십이 없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스타 CEO'가 대학으로 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전 부회장은 "산업계에서 대학을 바라보는 관점과 대학에서 산업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많이 다른데, 이것을 잘 융합(融合)해 연구와 교육을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하대를 졸업하고 국내 최대 대기업 경영진에 오른 이 전 부회장은 "간판과 상관없이 인재를 중용하는 게 삼성이 만든 시스템"이라며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국내에서 치고받으면 뭐하느냐. 어차피 똑같은 인재를 찍어내는 것은 경쟁도 아니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들이 '우물 안 경쟁'에서 벗어나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는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세대는 이 전 부회장이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전교적(全校的)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이 학부에만 올해 9명의 교수를 신규 임용하고, 내년엔 12명을 더 임용하는 한편 연구원도 30명을 뽑을 예정이다. 이 전 부회장의 월급은 50호봉 수준. 김한중 연세대 총장과 같은 대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