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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A여고 3학년 조모(19)양은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수시모집 때문에 고민이 많다. 수능모의고사 성적보다 내신 성적이 높고 봉사활동과 문예반 활동도 꾸준히 해온 조양은 "수능시험 보기 전 수시모집에서 승부를 건다"는 전략이지만, 수시모집 전형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건국대의 예를 들면 조양이 지원할 수 있는 전형은 5가지에 달한다. 내신성적 위주로 평가하는 '학생부우수자 전형'에 지원할 수 있고, 글쓰기 경험을 살리면 '논술우수자 전형'과 '문예창작특기 전형'에 지원할 수 있다. 봉사활동 경험으로는 '자기추천 전형'에 지원할 수 있고, 지난해 받은 토익 성적으로는 '글로벌 전형'을 노릴 수 있다.
조양이 중앙대를 지원하려 해도 학업우수자·어학우수자·논술우수자·글로벌리더·입학사정관제·학생부우수자 전형 등 6가지를 살펴봐야 한다. 조양은 "관심 있는 대학 7~8곳만 들여다봐도 30개 전형을 따져봐야 한다"며 "수시 모집에 '올인'한다고 해도 수능공부를 안 할 수도 없어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
수시전형 올해 처음으로 대학 전체 모집인원의 60% 이상을 수시모집을 통해 선발하지만, 수시전형의 종류가 너무 많아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달까지 발표된 전국 4년제 대학 143곳의 수시전형 유형을 취재팀과 입시기관 스카이에듀가 분석한 결과, 수시전형 종류가 1873개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4년제 대학이 200여개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수시전형의 종류는 2500여개에 이른다고 입시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대학당 평균 13개의 수시전형을 운영한다는 얘기다.
◆대학, 의도적인 전형 세분화
숫자도 많지만, 매년 수시 전형의 유형과 방법이 달라져 수험생 혼란이 더 크다. 수도권 한 사립대학의 경우 2002년 수시 모집의 11개 유형이 있었지만, 2011년에는 21개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실제 취재팀과 스카이에듀가 135개 대학의 2011학년도 수시 모집을 분석한 결과 전형 유형과 방법이 지난해와 동일한 경우는 47%에 지나지 않았다. 올해 수시 전형 절반 이상이 지난해에 없던 것이거나 전형 방법이 달라진 것이다. -
인천지역 고교교사 B씨는 "같은 전형이라도 작년에는 논술을 중시했다가 올해는 영어를 중시한다고 해서 학생은 물론 교사인 우리도 혼란을 겪는다"고 말했다.
대학이 수시모집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학업능력이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으로 해석된다. 서울 C대학 관계자는 "수시모집 전형을 다양하게 구성해 놓으면, 정시모집보다 우수한 인재들을 뽑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합격생 커트라인을 높이기 위해 전형이 세분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수도권 D대학 관계자는 "'성적우수자 전형'으로 뽑다가 이를 '수학 우수자' '영어 우수자' '과학 우수자' 등으로 세분화해서 뽑으면 전형별 경쟁률이 높아져 우수 학생이 입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중상위권 이상 대학에서는 논술우수자 전형과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수능 ○등급 이내'와 같은 최저 학력 기준이 신설되는 추세다. 진학교사들 모임인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조효완(은광여고 교사) 공동대표는 "일부 상위권 대학들의 논술특기자 전형은 수능 1~2등급만 갈 수 있는 사실상 '수능·논술 전형'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뒤에서 웃는 사교육업체들
수시모집은 오는 9월 8일부터 원서접수를 시작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여름방학 중엔 어느 수시 전형에 응시할지 결정해야 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이미 입시 상담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십 개의 전형을 놓고 선택을 해야 하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매년 입시가 바뀌어 어느 대학에 무슨 전형으로 지원해야 할지 판단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재수생 자녀를 둔 고교 교사 김모씨는 "지난해 딸이 7개 대학에 지원했는데 이렇게 입시제도가 복잡한지 교사인 나도 잘 몰랐다"면서 "학교가 대학입시 전형을 정확히 이해해 지도하기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경북 E고교의 한 학생은 "그래도 대도시 학생들은 사교육업체의 입시상담을 받을 수 있지만 지방 학생들은 수시전형 지원 전략을 짜기 힘들다"고 말했다.
게다가 수시 모집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아직 100개 이상의 대학들이 학과별 모집 인원 등 세부 전형안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로, 이 같은 틈새를 사(私)교육업체들이 파고들고 있다. 한 사교육업체는 "방학 중엔 지방학생들도 많이 올라와 상담을 하고 간다"면서 "전형이 복잡한 수시모집은 무엇보다 정보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조효완 대표는 "대학은 수시전형의 전형유형과 방법을 단순화하고 입시 세부 내용도 적어도 몇달 전에는 예고해 수험생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시전형
수능성적만 보지 말고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과 재능을 보고 뽑으라는 취지에서 10여년 전 도입된 입시제도. 정시모집과 달리, 수능 성적표가 나오기 전에 학생들의 원서 접수를 받고 9월부터 단계적으로 입시전형을 진행한다. 올해 수시모집 선발 인원은 23만1035명으로, 4년제 대학 총 모집인원(37만9215명)의 60.9%에 달한다.
올해 대학 수시전형 2500개 넘는다
안석배 기자
sbahn@chosun.com
매년 바뀌는 입시전형 따라 올 첫 모집인원 60% 넘어
수험생·학부모 큰 혼란… 교사들도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