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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KAIST) 총장에 연임돼 지난 14일 총장으로 취임한 서남표 총장<사진>은 "젊은 교수들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며 "이런 분위기 조성을 위해 카이스트는 조만간 20대 석좌교수 10명을 뽑겠다"고 말했다. 서 총장은 "한국 대학에서는 군복무 등 이유로 초임교수가 되는 나이가 30대 중반 이상으로 너무 늦다. 자연과학 연구의 절정기는 20·30대인데 우리는 세계의 학계추세와 비교해 뒤떨어졌다"며 이 같은 계획을 말했다. 그는 새로 뽑는 20대 석좌교수는 연구비 등에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할 것이며 국적을 불문하고 채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임 총장이 됐다. 한국에서 대학총장 4년을 역임하고 새 임기를 시작하는 소회는.
"미국의 경우 4년 만에 총장직을 중단하는 경우는 드물다. 4년이란 시간으론 대학개혁이 참 힘든 것 같다. 학교의 타임 스케줄상 4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카이스트는 해당되지 않지만 한국의 많은 대학들은 교수와 교직원 직선(直選)으로 총장을 뽑는다.
"만일 선거로 총장을 뽑는다면 (총장 당선 직후부터) 선거운동이 시작될 것이다. 교수들이 선거로 총장을 뽑는다는 것은 학교의 주인이 교수라는 인식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내 생각은 다르다. 돈을 낸 사람이 주인이다."
―한국대학에서는 요즘 직선제 총장 존폐(存廢) 논란이 활발하다. 미국의 경우는 어떤가.
"총장을 직선으로 뽑는다는 미국 대학을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교수들의 영향력이 큰 대학이 있긴 하다. 예컨대 위스콘신대학 등이 그런 곳이다. 하지만 그곳도 총장을 대학교수들이 뽑지는 않는다. 구성원들에게 편안한 방향으로만 대학이 운영된다면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본다."
―지난 4년간 카이스트 개혁을 이끌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무엇인가?
"카이스트에서 진행했던 개혁 중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동안 구성원끼리 (대학이 잘 되기 위해) 알고 있으면서도 못했던 부분들이다. 테뉴어(정년보장) 심사의 경우도 교수가 한 학교에서 불명예스럽게 떠나면 다른 대학으로 옮겨갈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제대로 실시하지 못한 것이다."
―대학개혁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나.
"대학이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대학 운영도 달라질 수 있다. 구성원들의 '안정'을 위한다면 대학 운영도 그런 방향으로 갈 것이다. 하지만 목적이 세계 최고의 대학, 최고의 교육을 만드는 것이라면 다르다. 학생들에게 도전의식을 심어주고 세계 최고의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제도개혁과 교육개혁을 해야 한다."
―미국 대학과 비교해 한국 대학문화의 특징은.
"교수들이 학문 외에 한눈팔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예컨대 정부에서 일하는 교수도 많고 국회의원 된 사람도 많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대학교수가 정부나 정치에 기여하는 부분이 매우 큰 편이다. 이게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 대학사회의 문화다. 하지만 난 교수는 연구에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연구결과를 내려면 연구에 빠져들어야지, 딴 것 다하고 나서 연구한다면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없다."
―카이스트는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는데.
"교수들은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교육을 시킨다. 연구중심대학에서 제일 중요한 게 아이디어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나? 어려운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나온다. 그런데 교수가 오랫동안 한 분야만 있으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융합 연구가 중요하다. 연구자는 자기와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과 수시로 만나고 함께 연구를 해야 한다."
―젊은 석좌교수를 영입하겠다고 했다.
"카이스트 교수님들의 절반이 55세 전후다. 10년 후면 이분 중 절반이 정년퇴임한다는 얘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정년이 되는 교수 중 20%는 정년 이후에도 연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 연구성과가 뛰어난 분들이다. 두번째는 지금부터 젊은 교수들을 뽑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교수들이 20대 말에 자리를 잡고 연구를 시작한다. 우리가 너무 늦다."
―20대 석좌 교수는 파격인데.
"자연과학 연구의 절정기는 20·30대 때다. 과학기술자는 젊었을 때 큰일을 한다. 젊은 석좌교수를 위한 재정은 정부 예산과 기금 양쪽을 다 이용하겠다. 봉급도 많이 주려고 한다."
―학위과정을 단축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나.
"5년 안에 석·박사를 마치는 '르네상스 Ph.D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세종시가 원안으로 추진된다. 카이스트는 세종캠퍼스로 가나.
"우리는 계획대로 캠퍼스를 조성한다. 30만평의 부지가 확보돼 있다. 캠퍼스 조성에 최고로 좋은 곳이다. 우선 생명공학 대학원이 먼저 간다. 이어 '친환경 교통대학원'을 만들 것이다. 현재 연구 중인 전기자동차와 모바일 하버(이동하는 부두) 등은 '친환경 교통대학원'에서 연구할 것이다. 이 대학원들에서는 전기공학과 무선통신, 토목·기계 등의 학문이 긴밀히 협력해 연구할 것이다."
―연임과정에서 총장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왜 이런 논란이 있었다고 보나.
"카이스트가 추진하는 전기자동차와 모바일 하버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다. 일부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안 된다고 공격을 했다. 두고봐야 하는데. 이 두 프로젝트는 기술적으로 진보하고 있다. 전기자동차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대통령도 놀라워했다. 일본 신문에도 성공적이라는 기사가 나지 않았나."
―카이스트를 세계 10대 대학으로 키우겠다고 했다.
"우리는 40여년밖에 안 된 대학이다. 카이스트가 톱 10에 들겠다고 했을 때 정신이 나갔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난 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카이스트에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경쟁력을 갖춘 학생들이 있다. 내가 MIT(매사추세츠공대)에서 가르쳤는데 카이스트 학생들이 그들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다. 유명한 대학의 역사를 보면 몇몇 사람이 그 대학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뉴턴이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MIT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레이더 기술 등 세계사에 획을 긋는 연구를 했기 때문이다. 카이스트가 세계적인 대학이 되려면 세계적인 연구를 하면 된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보면 불과 2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와 LG전자는 1등 회사인 노키아를 추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면서 전혀 다른 시장이 형성됐다. 총장의 전공분야는 아니지만 이런 현상은 왜 나타나나.
"LG의 문제도, 삼성의 문제도 아니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의 문제다. 한국은 그동안 새로운 기술개발에 리스크(위험)를 가지고 도전한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실패를 해도 기회를 주며, 리스크를 택하는 것에 대해서 서포트(지원)를 한다. 교육도 리스크를 택하도록 가르친다."
―교육에서 리스크를 가르친다는 의미는.
"젊은 학생들이 성적만 생각하지 말고 큰 꿈을 꾸도록 가르쳐야 한다. 한국 대학생들은 너무 안정지향적이다. 교수들은 일년에 논문 몇 개 쓰면 큰일 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쓸데없는 논문도 많다. 중요한 논문을 써야 하지 않나?"
[글로벌 명문 카이스트] "과학은 젊음이 경쟁력… 20대 석좌교수 채용"
안석배 기자
sabhn@chosun.com
연임 후 첫 인터뷰 서남표 총장
학교의 주인은 교수가 아니다 교수는 연구에 미쳐야 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