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명문 카이스트] '세계 톱10' 향해… 1만명의 연구실엔 해가 지지 않는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기사입력 2010.07.23 06:33

서남표 총장표 개혁 단행 4년… 세계대학평가 198→69위로 껑충
기부금액도 1400억원 넘어

  • 2009년 8월, 서전농원 김병호 회장이 평소 이쑤시개까지 아껴 쓰며 모은 300억원어치의 부동산을 기부했다. 2010년 5월, 강원랜드에서 7억6680만원의 잭팟 행운을 안았던 안승필씨가 당첨금 전액을 기부했다. 6월, 은행감독원 부원장을 지낸 조천식씨 부부가 1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키로 했다. 7월, 신원을 밝히지 않은 80대 할머니가 현금 100억원의 기부 의사를 밝혔다. 불과 1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이들이 거액을 쾌척하기로 결심한 곳은 모두 한 학교, 바로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선도할 인재를 양성해 주기 바란다. 모든 국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를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평생의 꿈을 담은 그 돈을 아낌없이 기부한 카이스트에서 그들이 본 것은 '국가의 미래'였다.

    고급 과학기술 인재를 키우기 위해 1971년 개교한 이공계 대학기관 카이스트는, 2006년 서남표 현 총장의 취임 이후 커다란 변혁의 물결에 올라탔다. 교수 정년보장(테뉴어·tenure) 심사를 강화해 4년 동안 148명의 카이스트 교수 중 24%가 탈락했다. 이는 '철밥통'으로 불렸던 전체 한국 대학교수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입학만 하면 모든 학생이 무상교육을 받았던 전통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 2007년부터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등록금의 일부나 전액을 부담하게 됐기 때문이다. 반드시 글로벌 대학으로 가야 한다는 목표하에 영어강의 전면 도입도 밀어붙였다.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해 일반고 출신 학생에게도 입학의 문을 넓혔다.

    개혁은 가시화(可視化)된 수치로 나타났다. 지난 4년간 카이스트에는 1400억원이 넘는 기부금이 모였다. 기부 건수는 2006년 1000여건에서 지난해 3304건으로 세 배 이상 커졌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와 글로벌 대학 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가 실시한 세계대학평가에서 카이스트는 2006년 세계 198위였지만, 지난해에는 69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 이제‘국내 최고 대학’이 아닌‘세계 최고의 과학기술대학’이 목표다. 고급 과학두뇌의 산실(産室)인 카이스트 캠퍼스에 최근 새로 완공한 첨단 건물 ‘류근철 스포츠 컴플렉스’ 앞에서 카이스트 학생들이 책을 펴든 채 활짝 웃고 있다. /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 이제‘국내 최고 대학’이 아닌‘세계 최고의 과학기술대학’이 목표다. 고급 과학두뇌의 산실(産室)인 카이스트 캠퍼스에 최근 새로 완공한 첨단 건물 ‘류근철 스포츠 컴플렉스’ 앞에서 카이스트 학생들이 책을 펴든 채 활짝 웃고 있다. /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평가'에서는 지난해 아시아 전체 7위, 국내 1위에 올랐다. 올해 평가에선 '의대 없는 중소 종합대학' 순위에서 3위였다.

    학계 평가에선 분야별로 모두 상위권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공학·IT분야 아시아 10위, 자연과학 분야 13위, 생명과학 분야 26위를 차지했고, 인문·예술(43위), 사회과학(56위)에서조차 수준을 인정받았다. 이제 카이스트는 세계 '톱 10'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국가의 '신(新) 성장동력'을 이끄는 수많은 프로젝트가 카이스트 캠퍼스에서 시작되고 있다.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받는 '온라인 전기자동차', 이동하는 부두 '모바일 하버', 지구를 살리는 녹색기술 연구 'EEWS(에너지·환경·물·지속가능성)'가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대학, 인류 최고의 연구중심대학으로 비상(飛上)한다'는 구호가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화돼가고 있는 것이다.

    몰아치는 반발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성과를 인정받아 최근 연임에 성공한 서남표 총장은 "세계적인 연구로 성공하면 카이스트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할 것을 확신한다"며 "이는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도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외골수가 아니라 '창의적으로 행동하는 과학 인재'의 양성을 지향하는 카이스트의 교육은 세계에서 활동하는 숱한 졸업생을 낳았다. 1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하버드의대 교수로 임용된 윤석현 박사, 38세에 한국 여성 처음으로 MIT 종신교수가 된 김주리 박사, 세계 최초로 물에 녹은 단백질 모양의 변화를 실시간 관찰하는 데 성공해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잇달아 논문을 게재한 이효철 박사,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현재·김태민 박사….

    지금 카이스트에는 그들의 뒤를 잇고 선배들이 이룩한 업적을 뛰어넘어 '과학 한국'의 이름을 세계에 화인(火印)처럼 남기려는 1만명의 두뇌가 있다. 그들은 깊은 밤에도 연구실과 기숙사마다 대낮처럼 불을 켜 놓은 채 젊은 날의 열정을 학문과 실험에 쏟고 있다. 그 인재들은 시정(市井)에 넘치는 수사(修辭)가 아닌 과학과 행동으로 미래를 바꿔놓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명운(命運)이 바로 그들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