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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
작년에 호화청사 건립으로 국민들로부터 지탄받았던 성남시가 모라토리엄(moratorium), 즉 지급유예를 선언했다. 국내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 있는 일이고, 상대적으로 지방재정이 건전한 단체에서 발생한 일이라 매우 충격적이다. 성남시는 전임 시장 시절에 판교지구 토지매각 대금으로 이루어진 판교특별회계에서 5400억원을 빼내 3200억 정도를 새로운 청사 건립에 유용하면서 회계 사정이 경색됐다고 발표했다. 국토해양부와 행정안전부는 지금 당장 갚아야 할 돈이 그렇게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재정난을 지나치게 부풀렸다고 비판했다. 성남시 이외에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도 지방 재정에 빨간 불이 켜지면서 지급유예 신청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 붙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외국의 사례와 지방정부의 재정 상황
미국은 연방법에 주정부가 파산 선언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대신, 1929년 발생한 대공황 이후 주 이하의 지방정부에 대해서는 파산이 허용되면서 지금까지 500여개 지방자치단체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파산 신청이 이뤄지면 공공요금이 올라가고, 공무원을 감원시키며 복지를 축소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실시된다. 마치 우리나라가 1997년 IMF로부터 지원을 받는 대가로 선진국과 다국적기업이 원하는 대로 우리나라 법을 바꾸고 서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세 대비 지방세 비중이 21%에 불과하다. 자체 수입으로 인건비조차 해결 못하는 지방자치단체가 246개 중 40여곳에 이른다. 지방채 발행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17조에서 19조로 완만하게 상승했지만, 2009년에는 25조 이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서 지방재정의 건전성이 매우 악화됐다. 1995년 63.5%였던 평균재정자립도가 올해 52.2%로 떨어졌다. 작년 지자체통합재정수지는 7조 이상의 적자가 발생했다. 국제신용평가 회사인 무디스는 북한의 위협, 저출산문제, 공기업 및 지방정부의 부채 증가를 우리나라 경제의 3대 위협요인으로 꼽았다. -
◆모라토리엄 선언은 정치적 쇼이다
재정자립도가 68% 정도로 전국 8위이면서 경기도에서는 가장 높은 지역이 중앙 정부와 아무런 협의 없이 지급유예선언을 한 것은 무책임한 행위이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정도면 자신과 공무원들의 월급통장부터 구조조정을 하고,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함에도 자신의 공약 실행은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아직 판교 신도시 개발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정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음에도 서둘러 자신의 구미에 맞추어 자료를 부풀리고 확대해 시민들과 국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는 호화청사 건립으로 비난이 쏟아졌던 전임 시장의 무능함과 불성실을 더욱 드러내어 비판하기 위한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 백년지대계인 교육 분야보다 기간은 짧을지언정 행정 분야도 최소 십년지대계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전임자가 자신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전의 각종 정책을 도려내고 잘라 버리는 것은 그동안 투자된 금액을 무의미하게 해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게 된다.
◆모라토리엄 선언은 빚 탕감의 합리적 절차이다
시민은 자신이 속한 단체의 재정 상황을 정확히 알 권리가 있다. 재정이 건전한 기업도 언제든지 부도가 날 수 있는 게 시장의 현실이다. 위급한 재정 상황을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알리고, 빚을 갚기 위한 합리적 방안을 제시한 것은 오히려 시민들을 안도하게 한다. 전임 시장이 호화청사를 짓는데 판교특별회계에서 예산을 전용한 잘못은 엄정하게 비판받아 마땅하다. 행정안전부는 이런 전횡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면서 지방채 발행을 독려해 지방재정을 악화시킨 주범이다. 무상급식으로 600억 정도의 예산이 들어가는 것을 시행하지 않고 빚 갚는데 사용해야 한다고 비판하지만 신임 시장은 무상급식을 주요 공약으로 당선됐기 때문에 다른 개발 정책들보다 친환경 무상급식을 우선 시행하는 것은 주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당연하다. 예산을 적정하게 분배해 효율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단체장의 중요한 업무로 중앙정부가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 -
◆지방재정 악화 원인과 해결책
첫째, 재정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선심성 공약 남발, 각종 개발 정책을 추진한다. 이번 6·2지방선거에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들과 교육감들의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우리나라 1년 예산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분석이 있다. 2004년부터 지방자치단체 예산은 중앙정부 예산을 훨씬 넘어섰다. 지방자치단체 예산의 50% 이상을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시스템 속에서 지방정부의 방만한 경영은 국가 재정을 파탄시킨다.
역으로 정부의 감세정책이나 4대강 사업 같은 대형 개발 프로젝트는 지방재정을 악화시킨다. 단기적 성과를 앞세우고, 정당성과 효율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일단 하고보자는 지방과 중앙정부의 개발 우선 정책은 서로 간에 재정 악순환의 고리를 맺게 한다. 지역주민, 지방의회, 지역 언론매체가 지방정부 예산 집행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지방 재정 상황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공시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수입에 견준 빚 수준을 뜻하는 지표인 '지방채무 잔액지수', 한 해 빚 원리금 상환액이 일반 재원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채무상환비율' 등 빚의 상황을 단계에 따라 알려주는 조기경보시스템을 마련해 즉각적으로 조치해야 한다. 호미로 막지 않으면 가래, 혹은 굴삭기로도 막기 힘들어지게 된다.
셋째, 유럽의 선진국처럼 국세 대비 지방세 비중을 높여 재정 분권을 마련한다. 지방채에 신용 등급을 부여해 시장에서 자유로운 거래를 활성화하면 지방 정부는 자율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예산 분배 시스템을 통해 가장 바람직하고 건전한 정책 집행을 실시할 것이다.
[시사 이슈로 본 논술] 지방자치단체 "지불유예" 파장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 정치 쇼냐, 빚 탕감 몸부림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