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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 '투자'해본 펀드 수익률이 반 토막 나면서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자녀들에게 금융교육을 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충고한다. 대한YWCA의 '싱크머니' 청소년 경제교육을 자문하고 있는 KDI(한국개발연구원) 천규승 경제교육 전문위원은 "자녀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가계 구성원이자 경제적 인격체로서 대우하면서 그들이 거품과 환상 속에서 자라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천 위원으로부터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경제교육 지침을 들었다.
◆경제교육의 핵심은 '절제'
천규승 위원은 "경제교육의 핵심이자 모태는 절제교육"이라고 단언한다. "금융교육, 신용교육은 단순한 돈 관리 교육이 아닙니다. 품격 있는 생활교육이자 정직교육이지요." -
천 위원은 우선 "부모가 일희일비하지 말고 손해 본 내역을 솔직하게 아이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고금리 사회에서는 저축만으로도 재산 형성이 가능했지만 저금리 사회에는 고수익 금융상품을 통한 금융자산 불리기가 필요하다는 점 ▲그러나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수반되므로 펀드의 손실은 엄마 아빠가 재테크에 실패한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펀드나 주식 등 금융자산 가치의 등락은 장부상 손익에 의한 착시 현상일 뿐 실제로 팔지 않는 한 손해가 아니며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는 제로섬 게임(누군가가 따면 누군가는 잃는 게임)이지만 경기 사이클(자기 회생 원리)이 작동하므로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가격이 오르게 돼 있다고 설명해 준다. "'빚을 내서 투자하지 말라'는 워런 버핏의 금언도 일러주면서 합리적인 투자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죠."
◆우리 집 부풀려진 소비는?
현재 가계저축률이 2.3%. 절제는 잊혀진 지 오래다. 천 위원은 우선 자녀들과 신용카드의 지혜로운 사용에 대해 토론해보라고 권한다. "신용카드란 상품을 구매한 뒤 한 달 뒤에 현금을 내도 된다는 '기한의 이득'을 활용하라는 장치인데, 이걸 마구잡이로 쓰게 되면 빚내서 돈 쓰게 하는 맛만 들일 뿐이죠." 카드 사용내역서를 보며 불필요한 데 쓰인 돈, 우리 집에서 부풀려진 소비가 무엇인지 꼼꼼히 가려내 보는 것도 의미 있다.
◆'홈 아르바이트' 목록을 작성하라
시험 잘 봤다고, 심부름했다고 용돈 주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가족 구성원의 의무와 홈 아르바이트를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니까요." 또 일기장과 달리 용돈기입장은 100% 부모가 관리 감독하라는 충고. "정부가 국민에게 예·결산을 보고하듯 자녀들도 돈을 어디에 얼마만큼 썼는지 부모에게 보고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미리 '홈 아르바이트' 항목을 자녀와 상의해 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철 지난 옷장 정리, 냉장고 정리, 신발장 정리, 구두 닦기, 서류 정리, 번역 등 부모의 일인데 자녀가 도울 경우 보상해주는 식이다. 저축하는 데도 요령이 있다. "흔히 '거스름돈은 저축하라'고 가르치는데, 원칙은 저축할 돈을 먼저 떼어놓고 그 다음에 쓰는 것이 맞습니다." 저축한 돈을 모두 기부하게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인센티브, 즉 '돈을 모아 무엇을 사겠다'는 동기 부여가 사라지기 때문. 대신 기부용 저금통장이나 나눔통을 따로 마련해 저축액의 일부를 기부하는 방법이 좋다.
◆신문 읽기와 병행하세요
천 위원은 경제교육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모의주식투자 게임은 권하지 않았다. 경제활동을 게임이나 도박처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 차라리 성장산업의 우량주를 5~10주 정도 구입하거나 소액으로 '어린이 펀드'를 들어서 자녀 스스로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체크하게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단, '돈을 벌어봐라'는 취지가 아니라 경제공부를 하기 위한 목적이란 걸 분명히 일러줘야 합니다."
이때 반드시 신문 읽기를 병행해야 한다.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이 다 나오니까요. 정치적, 국제적으로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주가가 뛰어오르고 곤두박질치는지 상관관계를 살펴볼 수 있지요. 경제면은 부모가 해설자가 되어 읽어주세요. 해외 금융시장, 환율, 교역조건까지 그 범위를 넓혀갈 수 있습니다." 천 위원은 "10대를 위한 경제교육에는 반드시 정직이 들어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영화나 음악을 불법 다운로드받는 것은 도둑질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 스스로 회사용품이나 공공용품을 집에 가져와 쓰는 일도 삼가야 하고요. 대여한 비디오나 책, 물품을 늦게 돌려주는 습관은 대물림됩니다." -
경제교육 실천지침
■ 가계부를 함께 작성, 수입·지출·저축·신용거래·부채 내역을 공유한다.
■ 시장보기에 자녀를 동참시킨다. 물품 구입 계획서를 직접 작성하게 한다.
■ 옷장, 냉장고, 창고 등에서 쓰지 않는 물건 목록을 작성하게 한다.
■ 가사노동 분담 목록과 '홈 아르바이트' 목록을 협의해 실천한다.
■ 효율적인 시간 관리 습관을 들인다.
■ 나눔과 봉사 계획표를 작성하고 실행에 옮긴다.
■ 신문기사를 함께 읽는다. 경제도서를 함께 읽고 독후감을 교환한다.
■ 가입 금융상품과 세금영수증, 연말소득정산표 등을 통해 금융과 조세의 기능을 설명한다.
■ 정기적(주급 형태)으로 용돈을 지급하고 내역을 꼼꼼히 점검한다.
"시험 잘 봤다고 용돈 더 주면 애 망쳐요"
김윤덕 기자
sion@chosun.com
금융위기를 '산 경제교육'의 기회로
'돈이면 뭐든 해결된다'는 환상 심어주면 안돼
"부자가 되어라" 아닌 "정직하고 절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