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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복을 개조해 만든 검은색 원피스에 ‘빨간 마후라’를 연상시키는 스카프, 그리고 가슴에서 자랑스럽게 빛나는 공군 조종사의 상징인 은빛 흉장 ‘윙(wing). 대한민국항공회 김경오 명예총재(76세)에게선 여전히 군인다운 기개가 넘쳐흘렀다. 60년 전, ‘여자는 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우리나라 최초 여성 공군 비행사가 된 그는 최근 ‘극동지구 여성비행사기구’ 총재로 임명돼 아시아 여성 비행사들을 대표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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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60주년의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그럼요. 여고 2학년이던 1949년 공군에 입대해 여성 최초의 비행사로서 6·25에 참전했으니까요. 지난 8일에는 60년 전 입대했던 여자 조종사들과 공군사관학교 1기생들에게 새로 ‘군번 줄’을 수여하는 행사에 참가했는데, ‘공군 50611 김경오’라고 쓰인 군번 줄을 보니 어찌나 감격스럽던지요.”
휴대전화 통화 연결음이 ‘애국가’일 정도로 나라 사랑과 군인 정신으로 똘똘 뭉친 김 총재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군인이 될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조용한 학생이었다. 여고시절엔 오페라 가수를 꿈꾸기도 했고, 수학과 물리 성적이 우수해 과학자가 되려고도 했었다. 그런 와중에 교장 선생님 추천으로 15명을 뽑는 여자 공군 비행사 선발 시험을 보게 됐고, 수천 명 지원자 중 합격을 했다.
“아버지 반대가 심했죠. 그런데 왠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입대 당일 몰래 창문을 넘어 도망치듯 집을 나왔어요. 훈련이 고돼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통신·기상·역학·정비 교육을 받고 맨 마지막으로 조종 교육을 받았는데, 처음 조종 교육을 받았을 때는 무서워서 정신을 못 차렸어요.”
-공군 여자 비행사 1호가 되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함께 입대한 여자 비행사들은 대부분 장교 진급을 못 하고 6·25전쟁 중 군을 떠났어요. 저 혼자 남았죠. 그런데 남자 공사생도들과 똑같이 학과교육과 비행교육을 마쳤지만, 제겐 전투기를 몰 기회를 주지 않았어요. 여자라는 이유로요. 전투기 정비나 기상 상황 보고 같은 임무만 떨어졌죠.”
그는 군에 끊임없이 비행기 조종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군인으로서 목숨을 버릴 각오가 돼 있었기에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결국 제 뜻이 받아들여졌고, 1952년 50시간 단독 비행 성공 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비행을 할 수 있었어요.”
1956년 대위로 예편한 김 총재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이듬해 선진국의 민간항공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이다. 1963년 귀국 후 여성항공협회를 만든 그는 지금까지 수백명의 여성 조종사를 배출했다. 또 공군사관학교 여생도 입학을 추진해 1997년부터 공사에서 매년 여생도 20명씩을 뽑도록 만들었다.
-바람이 있다면요.
“사람들이 제 인생을 통해 도전하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합니다. 또 많은 사람이 ‘비행기 조종’이라는 멋진 스포츠를 배웠으면 합니다.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다 보면 꿈도 커지고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기니까요.”
[The 인터뷰] 여성 공군 비행사 1호 김경오 총재 열정적으로 도전하라…꿈은 이루어진다
김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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